키류 씨는 좀 남지. 며칠간의 야근에서 해방되는 순간 들린 직속 선배의 사형선고였다. 그 자리에서 못해요, 안 해요, 나를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애인이 있는데! 라고 외칠 수 없는 건 철저하게 센토를 불러 세운 사람과의 관계 탓이다. 그는 센토가 속해있는 동도첨단물질학연구소의 첨단물질 제1연구팀의 팀장이며 대학 시절부터 지긋하게 알고 지내온, 학연이란 무시무시한 것에 얽혀있는 선배이기도 했다. “저요?”“키류는 너 말고 없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확인 좀 해봤어요. 돌아가지 않는 목을 돌려 억지로 뒤를 보니 그는 늘 그렇듯 서류와 서류 사이에서 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 이제 일 끝났는데….”“그러니 잠깐 남아. 나도 곧 마무리 지을 테니까, 같이 나갈 수 있잖아.” 아악. 대체 왜?! 마지막 희..
인간 센토 x 용 류우가 환생AU 요운님의 글과 이어집니다 ▶ https://sdcgfh.postype.com/post/1621589 1. "류우가, 이녀석 어디갔어!!" 사와타리의 벼락같은 호령에도 이제 익숙한 궁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일을 묵묵히 해낸다. 눈을 감고 귀를 닫는 것이야 말로 이런 곳에 사는 그들의 지혜이며 현명함이다. 물론 보통의 경우에는 뒤에서 휘몰아치는 모략에서 살아남기 위한 행동이겠지만 이곳은 조금 다르다. "대장, 여기는 없는 모양이야.""류우가도 대단한데? 대장 눈 피해서 하계로 도망가는 건 선수가 다 됐어.""괜히 몇백년만에 태어난 청룡(淸龍)이 아닌가…. 자 잠깐, 대장! 여기서 변화하지 마! 대장!!" 아카바의 말은 이미 들리지 않는 듯 갈색의 구름들이 허공에서 모여든다. ..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류우가는 문을 열면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를 떠올리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호대상의 억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리 길지 않은 경호원 생활에서도 현재의 대상, 키류 센토는 정말로 어렵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은 3개월부터 적당히 익숙해진다는데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 달하고도 3주의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전혀 알 수가 없건만 고작 남은 한주로 익숙해질까. 류우가는 그간의 키류 센토의 기행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벼락같은 기적이 있을 리 없다. 있다면 지금 제 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정도다. 류우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류우가의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며 끼이끼이 울었다. “네 부모도 이렇게 알기 쉬우면 얼마나 좋겠냐.” 그의 경호담당..
* 현대 AU - 판도라박스는 있지만 딱히 분단이 되지도 않았고 그냥 존재만 함. 화성에서 가져온 블랙박스일 뿐이며 현재도 연구중인 미지의 개체 정도.- 동도, 서도, 북도는 임의상 부르는 구역일 뿐이지 스카이월같은건 존재하지 않음. - 애초에 이런거 별로 안중요함- 그냥 두 사람이 별 일 없은 세상에서 사랑하는 내용이 보고싶어서 씀- 학생시절부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사랑하는 토끼용일 뿐임 “깼어?”“깨운 게 누군데.”“나지.” 평소 같았으면 뭘 잘했냐고 한마디 해주겠지만 아직 새벽에 가까운 시간임에도 외출복을 그대로 입은 걸 보면 아마 옷을 갈아입거나 씻으려고 잠깐 집에 들렀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타박을 주기도 뭐하지만 그것보다도 오랜만에 만난 기쁨이 더 컸다. 함께 살고 같은 침대를 쓰지만..
한 송이, 유채. 이어받은 가게는 자리가 미묘하다. 벌써 몇 년째 운영하고 있는 자신의 꽃집에 대해 센토는 이렇게 분석했다. 모든 가게는 비단 사람의 유동성이 중요하건만 이 자리는 시장과는 거리가 있으면서 근방의 고등학교와 가깝다. 학생은 주 수입원도 아닌데 말이다. 물론 근처 밀집해있는 거주지역의 특성에 따라 어느 정도 상점가가 형성되어있긴 해도 꽃집이 있을 만한 곳은 아니다. 전 주인과 달리 센토는 주로 인터넷에서 판매를 주 수입으로 하고 있기에 특별히 한적해도 상관은 없지만 왜 이런 자리에 꽃집을 냈는지 알 수 없다. 뭐, 아무렴 어때. 센토는 오늘도 느긋하게 흐르는 공기를 만끽하며 읽던 책을 폈다.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면 기본적으로 이 골목은 조용하고 소란스러운 것을 즐기지 않는 센토에게 이 곳은..
착륙보단 추락에 가까웠다. 그나마 바닥에 닿기 직전 붙잡아주던 팔이 저를 쳐올렸기에 망정이지 맨 몸으로 부딪쳤다간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류우가는 등을 타는 식은땀과 함께 차오른 숨을 뱉었다. 단단한 아스팔트 위에 자비 없이 내던져진 몸은 당장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센토.” 그래도 자신은 그 정도였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폭력을 대신 맞고 도망쳐 여기까지 날아온 장본인은 류우가만큼 움직이지도 못했다. 숨은 쉬니 죽진 않았지만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깨진 변신과 무너진 몸 그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류우가는 이를 악물고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 대신 팔로 아스팔트를 기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 걸을 수 있다면 그저 몇 걸음 정도의 거리가 멀었다. “센토!” “반죠, 시끄러워.”..
전부 꿈인가 하노라 1. 쾅. 버둥대는 몸을 감당하기에 침대는 작았고 행동은 컸다. 류우가는 왼팔의 격심한 통증에 눈을 떴다. 가뜩이나 부러져 아픈 팔 쪽으로 떨어졌으니 말할 필요가 있을까. 아침부터 운이 없으려니. 떠지지 않는 눈을 멀쩡한 오른손으로 비비자 잠에 퉁퉁 부었던 눈이 떠졌다. 구겨진 옷들, 어지럽게 쌓인 스포츠 잡지들과 작고 낡은 텔레비전. 먹고 남은 컵라면. 류우가는 한숨을 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 어딘가 청결하지만 온기 없고 딱딱한 과학실 같은 곳이 아니라 작고 생활감 넘치게 꼬질꼬질한 이 방이 제 집이고 제 생활이며 일상인 것이다. 잠에서 깬 순간, 류우가는 지금까지 본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알았다. 2. “때려눕혔다고? 그 스매시라는 괴인을? 류우가가? 맨손으로?” “당연하..
1.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고싶다. 그렇게 말하며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세상 모든것을 가졌다고 하는 황제, 제갈량이었다. 마녀는 황제의 얼굴을 한참이나 빤히 바라보고는 손에 있던 약초들을 놓아두고 일어났다. - 마녀, 서서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2.서서는 제갈량을 데리고 숲의 이곳저곳을 보여줬다. 안개를 만들어내는 꽃밭이나 노래가 들리는 풀숲, 움직이는 나무와 모두가 잠드는 안식의 호수까지. 그 모두가 지금껏 본 적 없는 광경이었고 절경이고 아름다웠으나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 아름답지 않나요? -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장 아름답다고는 생각되지 않군. 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있을 것 같다. - 꼭 본 적이 있는 것 같네요? - 본 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