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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륙보단 추락에 가까웠다. 그나마 바닥에 닿기 직전 붙잡아주던 팔이 저를 쳐올렸기에 망정이지 맨 몸으로 부딪쳤다간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류우가는 등을 타는 식은땀과 함께 차오른 숨을 뱉었다. 단단한 아스팔트 위에 자비 없이 내던져진 몸은 당장은 도저히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센토.”
그래도 자신은 그 정도였다. 거침없이 밀고 들어오는 폭력을 대신 맞고 도망쳐 여기까지 날아온 장본인은 류우가만큼 움직이지도 못했다. 숨은 쉬니 죽진 않았지만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깨진 변신과 무너진 몸 그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류우가는 이를 악물고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 대신 팔로 아스팔트를 기었다. 숨은 쉬고 있었다. 걸을 수 있다면 그저 몇 걸음 정도의 거리가 멀었다.
“센토!”
“반죠, 시끄러워.”
전혀 움직임이 없던 몸에 비해 돌아온 대답은 제법 선명하다. 그리고 들리는 건 허약하게 달그락거리며 흔들리는 소리. 류우가 자신도 몇 번이나 흔들어 부수는 풀 보틀의 소리였다. 평소처럼 힘차게 들리지 않는 건 자신만큼이나 몸이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다. 손가락 끝으로나 간신히 잡고 있는 게 아닐까. 증거처럼 달각거리며 흔들리는 소리는 작고 길었다.
얼마나 흔들었을까, 단단하던 소리가 제법 잦아들자 센토는 상체를 훌쩍 일으켰다. 보틀의 힘으로 일시적으로 향상된 신체능력을 이용해 움직인 모양이지만 드래곤 보틀을 사용하고 있기에 저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안다. 그러나 말리기에는 자신 역시 지쳐 움직일 수가 없다. 류우가는 기어가는 것을 관두고 그대로 하늘을 향해 벌러덩 누웠다. 그래도 움직이는 걸 보니 마음 한구석에서 안심이 제법 퍼진다.
“…너 그러다 진짜 큰일 난다.”
“바보에게 그런 소리 들을 이유 없거든.”
연락할 방도도 없고 움직일 수 없는 류우가 대신 센토가 주변을 둘러보고 데리러 올 미소라에게 현재의 위치를 간단히 설명한다. 이 자체는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제야 살벌하게 몰아치던 곳에서 도망친 실감이 났다. 살았구나. 안도한 마음에 늘 그렇듯 류우가가 한마디 던졌다. 거친 말투는 별 수 없지만 걱정은 한다. 머리가 좋은 남자는 뜻을 잘 헤아리기 때문에 이런 제 말에 맞춰 적당히 대답을 돌려준다. 실제로 지금도 류우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박이 돌아왔다. 다만 평소와 다르지 않은 내용과 달리 목소리에는 어떠한 억양도 없었다.
“센토?”
“사과해.”
거기에 놀란 류우가가 고개를 돌리자 센토가 비틀거리며 그에게 걸어왔다. 선명한 목소리는 오기라 생각했는데 분노 탓인지도 모르겠다. 멱살을 잡혀 강제로 몸이 일으켜지는 순간이 되어서야 그런 가능성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벽에 밀쳐진다.
“…뭐?”
“나한테 사과하라고.”
“내가 뭘! 이 드라이버 어차피 너는 못쓰잖아!”
“그거 말고, 아까 했던 말!!”
류우가는 정면에서 들어오는 분노에 반사적으로 내치려고 손을 들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보틀의 힘을 빌렸음에도 자신을 잡은 손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마른 편이긴 해도 한 손으로 성인 남자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양 손으로 하지 못한 건 도망치기 전 걷어 차였던 배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허세부리는 것을 좋아하던 남자가 자기 앞에서 이 정도까지 여유가 없던 일은 아주 최근뿐이다.
다시 말하면 그 정도로 센토에게 있어 지금의 상황은 중요하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류우가는 올렸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여기서 싸워서 좋을 게 없다. 차분하게 생각하는 자신이 우습고 낯설었다. 원래 이런 생각을 하는 건 너잖아.
“반죠!”
“아-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말이 심했다!! 됐지?!”
생각보다 순순히 사과하는 류우가의 태도에 센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기본적으로 이 남자는 거짓말을 하진 않는다. 머리가 나쁘니 못하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 성격이 굽어지지 않는 탓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모두가 살인범이라고 손가락질하는 상황에 빠져 누구도 믿어주지 않는 고독안에서도 나는 하지 않았다고 외칠 수 있겠지. 그러니 말투가 나빠도 사과하는 것이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아니겠지만, 전부 다는 아니다. 정말 잘못했다고 생각한다면 저렇게 쏘아보는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는다. 평소라면 이정도로 하고 넘겼겠지만 이번엔 안 된다. 죽어도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다니, 다쳐도 괜찮다니! 그런 말은 웃으면서 하게 만들 순 없다. 너의 팔 안에서 사라진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그러나 몸이 버티지 못한다. 센토는 그대로 힘이 빠지는 몸에 무너졌다. 어깨부터 떨어진 충격에 숨이 일순 멎었지만 변신이 깨지던 때보다는 훨씬 낫다. 이거나 저거나 말도 아닌 아픔이었지만 상관없다. 중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너는, 안 돼.”
크로즈까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도 개입할 수 없는 둘 만의 관계에서 남은 마지막 흔적인 보틀을 건네준 것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상은 지나치다. 비록 승부조작으로 쫓겨났다 해도 기본적으로 반죠 류우가란 남자는 사회에서 잘 살아갈 사람이며 이런 더럽고 허무한 세상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자신이 벌려놓은 참담함에 가까이 있을 필요도 없다. 억울하게 뒤집어 쓴 누명은 이젠 아무런 가치가 없다. 네가 죽였다던 카츠라기 타쿠기는 바로 나니까. 그러니까 너는 미소라를 지켜주면서 내 뒤에서 조금만 기다리면 된다. 그럼 나머지는 어떻게든 할 테니까.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니 나는 어떠한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하지만, 너와 미소라만큼은 이런 세상에서 반드시 밀어내 응당 받아야 하는 미래로 보내줄 테니까.
“너는, 안 돼….”
“센토!”
너희를 지키고 싶은 나를 믿어주면 좋겠다. 전부 내게 맡기면 돼. 그런 말을 해주고 싶은데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아, 이거 기절하겠구나. 센토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내 생각을 네 부족한 머리가 좀 알면 좋을 텐데.
* * *
미소라와 사와가 도착했을 때, 둘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갑자기 흐려진 비가 매섭게 쏟아졌고 마땅히 비를 피할 곳이 없었는지 움직일 힘이 없었는지 두 사람은 비에 그대로 두들겨 맞고 있었다. 류우가는 지친 듯 벽에 기대앉아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있었고 그 아래에 센토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무릎을 베고 누운 것이 아니라 쓰러진 센토를 류우가가 끌어당겨 적어도 얼굴에 맞지 않도록 해준 것이리라.
참혹한 광경에 당장 달려가려고 한 사와를 붙잡은 것은 미소라였다. 제 옷을 잡은 손과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말린 것이 아니다. 그저 상처 입은 두 사람에게 두 사람이 아는 미소라로서 다가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싸울 수 없는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그대로 있어주는 것뿐이기에.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그녀의 눈에서 본 세 사람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태의 주범들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각각 물리학자, 격투가, 인터넷 아이돌이라는 평범치 않은 역할을 하고 있어도 귀찮은 걸 싫어하고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며 예쁜 옷 하나에 마음이 설레는 평범한 사람들. 웃고 울고 장난치고 싸우며 살아가는 이웃이며 가족인,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 중 하나일 뿐인데.
“미안해, 사와 씨. 이제 괜찮아.”
아직 떨리는 손은 그대로였지만 이대로 비를 맞게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미소라는 크게 한숨을 뱉은 뒤 둘의 이름을 부르며 뛰었다. 우산이 떨어져 다급하게 주웠지만 이런 비에 남자 두 명을 차에 끌고 가면 어차피 젖게 될 것 같다. 사와 또한 자신의 우산을 접었다. 추운 날씨에 내리는 비가 차갑고 아팠다. 하지만 미소라의 부름에 그제야 자신들이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든 이가 더 아플 것이다. 사와는 우산을 바닥에 던지고 미소라의 뒤를 따라 뛰었다.
* * *
류우가는 침대에 앉아 바닥에서 정신없이 자고 있는 센토를 가만히 보았다. 보통 아픈 사람이 침대를 쓰기 마련이지만 카페에 도착해 한번 정신을 차린 센토는 자신이 바닥에서 자겠다고 선언했다. 평소에는 푹신하지 않으면 못 잔다고 엄살을 피우던 모습과 달라 화를 냈지만 그런 류우가를 잡은 건 미소라였다. 설명하자면 이런 날에는 악몽을 꿀 때가 많아 버둥거려서 침대 위는 위험하다고. 아직 빌드에 익숙해지지 않았을 때는 자주 침대에서 떨어져 다쳤다고 한다. 그 이후로는 악몽을 꿀 것 같은 밤에는 의자에서 선잠을 자거나 바닥에서 자곤 한다는 말을 들은 이상 더 말을 할 수도 없어 얌전히 침대로 올랐다.
혼자란 뭘까. 물론 혼자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류우가는 대부분의 삶을 혼자서 살진 않았다. 아주 어릴 땐 가족이 있었고 커서는 같은 격투가 친구들이 있었으며 최근까진 카스미가 있었다. 지금은 눈앞에서 자는 센토가 있고 2층에 미소라가 있으며 외부에서 온갖 정보를 찾아오는 사와 씨가 있다. 지금까지 삶 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깊은 인연이라고도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이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걸고 있는 동료다. 그건 센토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확실히 자신의 말에 화가 날 법도 했다. 더군다나 이 모든 사태가 자신의 탓이라 말하며 누구도 죽게 하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 앞에서 꺼낼 말이 아니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러니 말이 심했다는 건 인정한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어.”
본심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류우가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생각할 점을 그 외에는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이 남자는 눈을 뜨면 꽤나 따져올 것이다. 그런 남자다.
과거 카츠라기 타쿠미가 무슨 의도와 생각으로 이런 일들을 벌어지게 하는 배경을 제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키류 센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떻게든 막아내려고 한다. 그러면서 기억에도 없는 모든 죄를 짊어지고 혼자서 끌어안는다. 아픔은 익숙해져도 아프다. 그걸 이를 악물고 평소처럼 웃고 걷고 뛰며 싸운다. 혼자가 아닌데, 기억에도 없는 자신이 했다는 이유 하나로.
류우가는 엿들었던 통화를 듣고 나서야 자신이 아직도 그의 비호 아래 있음을 알았다.
“나는 잘못 안했어.”
센토는 류우가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의도된 만남이든 아니든 어쨌든 도움이 필요한 류우가의 손을 잡은 것은 센토였으며 카스미의 마지막을 어떻게든 인간으로서 마무리해준 것도 그였고 맨 몸으로 이곳저곳 다니는 그를 위해 크로즈드래곤을 주었다. 전부 자신을 위해서 준 것들이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너도 그래.”
이 말을 해주고 싶다. 납득가지 않는 마음인 상태가 아니라 진심으로 네 탓이 아니며, 너는 그저 가면라이더 빌드인 키류 센토일 뿐이라고. 하지만 이 말이 닿기 위해선 우선 이 남자의 옆에 서야한다. 류우가는 사실 센토가 준 수많은 것이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 그를 위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옆에 서서 함께 싸우자는 의미라고 생각했다. 결국에는 아니었지만.
“…힘이 필요해.”
자신의 말이 그를 설득할 수 있는 힘이, 이 전쟁에서 함께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필요해.
혼자 모든 걸 끌어안고 사라질 것 같은 이 남자를 붙잡을 수 있는 힘이 필요해.
깊게 밀려오는 피로감에 류우가는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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