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또 무슨 일이 있으려나. 류우가는 문을 열면 시작하는 하루의 일과를 떠올리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경호대상의 억지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지만 그리 길지 않은 경호원 생활에서도 현재의 대상, 키류 센토는 정말로 어렵고 이상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은 3개월부터 적당히 익숙해진다는데 정말로 그렇게 될까. 두 달하고도 3주의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전혀 알 수가 없건만 고작 남은 한주로 익숙해질까. 류우가는 그간의 키류 센토의 기행을 생각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벼락같은 기적이 있을 리 없다. 있다면 지금 제 머리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 정도다. 류우가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것은 류우가의 머리카락을 입으로 물며 끼이끼이 울었다.
“네 부모도 이렇게 알기 쉬우면 얼마나 좋겠냐.”
그의 경호담당이 된지 두 달째 되는 날, 혼자서 문밖에 있을 때 심심하면 가지고 놀라며 선물 받은 장난감이다. 이름은 크로즈드래곤이라 처음부터 정해져있었다. 특별히 자신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 주었다는―그런 것 치고는 절대로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이 또 골 때리는 점이었지만―이것은 어떤 원리인지 몰라도 충전하지 않아도 움직였고 학습능력이 좋은 인공지능이라는 말만큼 살아있는 동물을 데리고 다니는 느낌이었다. 괴짜 과학자에게서 꽤나 귀여운 것을 선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주변의 반응이 대단했다. 카즈미는 너도 인정받았구나! 하며 한 대 날리고 싶은 웃음으로 축하했고 연구원들은 그 키류 센토의 발명품이냐며 분해해보면 안되느냐 달려들었다. 재미있는 걸 받았다고 신났다가 그 모습들에 기겁하고 올라가 물어보니 이미 익숙한 듯 그런 건 상대해주지도 말라며 문도 열어주지 않고 류우가를 돌려보냈다. 꽤나 냉정한 처사지만 이미 익숙해졌다.
“출근했습니다, 키류 씨.”
“기다려요.”
문을 열고 들어오는 딱 그 순간 그의 손이 펴지고 류우가의 행동도 멈췄다. 문손잡이를 잡고 있는 그대로는 아니지만 연구실 더 안쪽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이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맨 처음 이걸 당했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막 바닥에서 떼려던 발까지 멈춰서 아슬아슬하게 서있었던가.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바라보던 한심한 눈은 지금도 똑똑히 떠올릴 수 있다.
류우가는 조용해진 제 머리위의 드래곤을 매만졌다. 올라온 손가락에 제 머리를 비비며 재롱부리는 이건 이렇게 귀여운데 이걸 만든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무례도 기행도 상대방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끊어지는 걸 싫어해서 나오는 예민함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두 달이나 겪으면 익숙해지지만 이해는 가지 않는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남자는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키류 센토. 동도첨단과학연구소의 초특례. 현재 세계의 첨단과학은 이 남자의 손보다 앞선 것이 없다고 하는 대단한 평가를 가진 남자이며 이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개인경호가 연구소 경비에 포함된 사람. 워낙 기행이 많아 바뀐 경호원 수만 해도 양 손가락으로 부족할 정도지만 연구소 밖으로는 거의 나가지 않아 호위 자체 업무난이도는 낮다. 넘겨받은 자료대로 그는 연구소는커녕 연구실 밖으로도 거의 나가지 않고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연구에 매달렸다. 밥도 수면도 잊은 채 연구하다 쓰러진 걸 발견한 게 두 번째 만남이니 설명할 필요가 더 있을까. 참고로 이 형태는 지금도 종종 일어나고 있어서 류우가는 심각하게 최소한의 식사시간은 억지로라도 만드는 게 좋을까 고민 중이다.
사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다. 하나하나 신경 쓰라 들은 적도 없으니 경호원은 경호를 할 뿐이다. 경호대상에게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질 필요가 없기에 경호에 필요한 정보 외에 류우가는 키류 센토에 대해서 듣지 못했다. 스스로도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류우가는 눈앞의 남자가 궁금했다. 왜 그가 이렇게 목숨도 깎아가며 필사적으로 연구에 매달리는지, 개인경호가 반드시 있어야 할 정도로 위험한 연구는 또 무엇이며 곧 3개월을 맞이하는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연구소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건 정상적인 생각일까? 판단하기엔 아쉽게도 류우가는 신참이었고 단체경호가 아닌 개인경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현재 경호대상의 전 담당이자 류우가의 직속 선배이기도 한 카즈미에게 물어봐도 웃기만 할 뿐이니 도움이 안 된다. 자신을 직접 추천한 사람임에도 도통 말을 안 하니 속이 터진다. 오늘은 또 무슨 연애자랑을 하냐며 전화 받을 사람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던 때였다.
“반죠 씨.”
대답이 늦은 건 거의 부르지 않는 호칭 때문이었다. 곧 그만둘 사람은 외우지 않는다며 두 달이 넘은 지금도 그는 류우가의 호칭을 ‘담당 씨’에서 바꾸지 않았다. 정상적인 호명에 어색할 틈도 없이 가슴으로 밀어닥친 파일을 끌어안았다.
“키류 씨?”
“지금 당장 설비 팀으로 가서 건네주세요. 그럼 알아서 할 겁니다.”
“자, 잠깐만.”
“오늘 근무는 이걸로 끝입니다. 아마 당분간 휴가일지도 모르겠네요.”
근무 수고하셨습니다. 짧은 인사와 함께 류우가의 몸이 완전히 문 밖으로 밀려나자 기다렸다는 듯 문이 닫혔다. 오가기 편하게 평소에는 열어놓는 철문까지 내려오는 소리가 낯설었다. 평소에도 보고서나 연구가 막히면 나가라고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이렇게 밀쳐낸 적은 없었다. 대체 왜?
그 순간 연구실이 폭발했다.
* * *
특별히 잘못한 건 없었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은 결과야 늘 있는 일이지만 이정도로 벗어나게 설정하지도 않았다. 혹시 몰라서 최근 방문자들의 목록도 함께 넘겼지만 잡을 수 있을지, 아니면 정말로 자신의 실수인지는 일어나서 살펴봐야 알 수 있다. 센토는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떠오른 생각을 당장 실천하고 싶어도 아마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이다. 철문을 닫자마자 피하긴 했지만 폭발의 위력을 다 벗어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실제로 지금도 눈앞에 보이는 건 익숙한 병실이다.
“최악이다….”
“정말로.”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놀라 고개를 돌리니 문가에 서있는 남자가 있었다. 길어도 2주를 가지 않는 자신의 경호 담당을 곧 있으면 3개월이나 버티고 있는 사람. 반죠 류우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도 일 중 하나일 텐데 이 남자는 아직 서툰 건지 본래 성격이 그런지 참 알기가 쉬웠다. 그런 사람인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표정도 기색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몸은 어떻습니까.”
“괜찮아요.”
“의사를 부르죠.”
“그 전에 가져온 것부터 처리하죠.”
말을 하니 목이 심하게 말랐지만 침대 상단을 일으키며 본 헤드에는 예상대로 금식 표시가 붙어있었다. 크게 다친 건 아니니 면담만 하면 금식은 풀어주겠지만 그보다는 가져온 자료가 궁금했다.
“…지금 말입니까?”
“네. 다 읽는 건 시간이 걸리니 우선 요약본부터 읽어줬으면 하네요.”
센토의 말에 그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 이상은 대답하지 않았다. 연구실에서 한계를 넘어 쓰러질 때마다 잔소리를 퍼붓던 남자였기에 그런 모습이 낯설었지만 적당히 질렸나보다, 하면 납득이 간다. 크로즈드래곤을 먼저 주길 다행이다. 프로그래밍한대로 제 주인 곁에 빙빙 나는 것을 시야 끝으로 보며 센토는 침대 옆 의자에 주저앉는 그에게 집중했다.
“먼저 연구실 피해상황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담담하게 상황을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에서는 짙은 불쾌감이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은 걸까? 사실 센토는 그래도 괜찮았다. 지금 읽는 자료들만 바닥에 던져버리지 않는다면야 지금 이 순간 계약을 종료해도 좋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쪽이 좋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카즈미가 소개한 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했지만 그는 센토의 생각 이상으로 좋은 사람이었다. 밥 좀 먹으라고 잔소리했고 제대로 잠은 자냐 걱정해줬으며 스스로 생각해도 재수 없게 놀리는 말들에도 울컥하면서도 어떻게든 응대해오는 근성도 있었다. 그래서 과감하게 밀어붙였다. 경호가 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일을 시켰고 몸이 먼저 움직이는 그를 탓했으며 무례함은 거의 일상수준에 가까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끈질기게 머물렀다.
좋은 사람들이 다치는 건 정말 지긋지긋한데.
“―이상입니다. 그리고 요청하셨던 방문자 목록의 검토는 현재 진행 중입니다. 이 부분은 시간이 다소 필요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내가 퇴원 전까지는 정리가 되었으면 하는데…. 그럼 최소한 리스트라도 정리해두라 전해주세요. 연구 쪽은 지금부터 봐서 최대한 빨리 전달한다고도 해주시고요. 펜 있어요?”
“…지금부터 본다고요?”
이 말을 아까도 들었던 것 같다. 손으로 내밀어지는 펜을 받으며 센토는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무릎 위로 서류가 잔뜩 쌓여있었다.
“보면 알잖아요. 나 바빠요. 크게 다친 건 아니니까 이 정도는….”
마른 목에 소리가 갈라져 말을 멈췄다. 수액을 맞고 있으니 몸에 수분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그와 별개로 먹고 마시는 행위는 중요하다. 물론 그걸 무시하고 연구에 내달리다 쓰러진 적이 한두 번은 아니지만 자의와 타의는 다르다. 아무튼 중요한 이야기는 서로 다 했으니 어서 보내고 물을 마시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며 센토가 전화에 손을 뻗은 때였다.
“…담당 씨?”
“또 뭐를 하시려고요.”
“이건 의사한테…. 맞다, 말을 안했네. 이제 가도 좋아요. 오늘도 수고했어요.”
“……그럼 오늘 일은 끝났습니까?”
“그래요.”
“업무 시간이 아니란 거죠?”
“네.”
“그럼 지금부턴 개인적인 말이다, 이 자식아.”
드디어 목소리와 표정이 일치했다. 센토는 그 순간 자신이 원하던 것이 이것임을 깨달았다. 반죠 류우가라는 남자는 처음부터 솔직하게 부딪쳐오는 사람이었고 센토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무슨 생각으로 나를 내보냈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네 경호원이야!! 위험한 거로부터 너를 지키려고 내가 있는 건데 네가 날 지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담당 씨.”
“같이 나올 시간 있었잖아! 서류 같은 거 작성하지 말고 나오면 이러고 있을 필요 없었잖아!! 나를 기다리라고 말하기 전에 네가 나왔으면 무사했잖아!! 하다못해 문이라도 열어놨으면 됐잖아!!”
“진정하세요. 병원이니까 소리 지르지 말고.”
“진정? 너는 네 일도 남 일이냐? 위험했다는 의식을 가져! 폭발로 질식해 죽을 뻔한 게 바로 이틀 전이야!!”
“그 문은 안에 누가 없으면 안 닫혀요.”
연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새어나갈 바에야 함께 파기해버릴 생각으로 센토가 그렇게 설계한 장소다. 그러나 이걸 설명하기엔 눈앞의 남자는 들어줄 생각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거기에 나를 남겼어야지! 그래서 내가 있는 거잖아!”
“아니에요.”
“…뭐?”
“확실히 당신 일은 나를 위험에서부터 지키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건 외부로부터의 위험이지 내부로부터는 아닙니다. 실험으로 다치고 죽는 건 내 일이고 내 책임입니다. 당신은 그저 지금처럼 내가 시키는 일을 하고 스파이 같은 것에서 지키면 돼.”
“…뭐야, 그게. 그딴 게 어디 있어? 사람 무시하지 마!!!”
“그런 게 아니잖아요! 일의 구분을 하란 소리지! 당신이야 말로 쓸데없는 것까지 간섭하지 말아요!!”
서로를 향하는 고함에 병실의 문이 열렸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들어오자 두 사람의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졌다. 아직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지만 목을 부여잡고 쓰러진 자신을 향해 소리를 지를 수도 없겠지. 혀를 차며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는 뒷모습에 센토는 간신히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처음 만난 날, 연구실 밖 복도에서 모자를 집어던지며 욕하는 걸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때는 정말로 이름을 외울 생각이 없었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마 받은 그도 주변의 사람들도 알 수 없겠지만 제 연구의 일부라 부를 수 있는 작은 가제트를 그에게 선물했다. 아마 그 의미를 아무도 모를 것이다. 선물한 센토조차 알고 싶지 않았다.
* * *
『류우가가 다쳤어. 교통사고래. 경호업무는 내가 갈 거야.』
카즈미로부터 문자를 받은 건 그 다음날이었다.
『여보세요? 센토? 어이, 센토! 듣고 있어?』
통화가 연결된 것도 몰랐다. 그 정도로 스스로가 놀랐다는 사실에도 놀랐다. 다급해지는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센토는 자신이 문자를 확인하자마자 카즈미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둘러 휴대폰을 들었다.
“카즈미. 문자 뭐야?”
『우와, 너 목소리 최악…. 열풍을 좀 마셔서 그런가?』
“그러니까 말 많이 하게 하지 마. 문자 뭐야.”
원래부터 목은 잘 부었다. 스트레스에도 그랬고 찬바람을 쐬어도 그랬기에 이럴 땐 소리 내지 않고 가만히 쉬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재촉하는 센토의 형편없는 목소리에 카즈미는 큰 한숨을 내뱉었다.
『말 그대로야. 나도 방금 연락 받은 거니까 자세한 건 몰라. 아마 너 있는 곳으로 출근하다 그렇게 된 걸 테니 너희 병원으로 가지 않을까 싶은데.』
“알았어.”
『잠깐, 센토! 오늘 네 경호는 나니까 제대로 병실에…!』
들을 가치도 없는 말에 시간을 쏟을 필요가 있을까. 센토는 미련 없이 통화를 끊고 침대를 박차 병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크로즈드래곤!”
카즈미의 예상대로 자신이 머무는 병원에 실려 왔는지 휴대폰으로 사전에 등록해놓은 코드를 입력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향해 곧바로 날아온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았다. 비록 사람보다 이동속도가 빠르지만 병원은 눈도 많고 길도 복잡하다. 게다가 크로즈드래곤은 이 건물의 데이터가 없다. 그럼에도 이렇게 짧은 시간에 자신에게 도달했다면 멀지 않은 곳이다.
“네 주인에게 안내해!”
센토의 외침에 알았다는 듯 크게 울며 공중에서 한 바퀴 돌더니 곧바로 자신이 날아왔던 방향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저렇게 생동감 있게 만들지 않았건만 3주 정도의 짧은 시간동안 도대체 얼마나 주인 옆에서 데이터를 얻었으면 저렇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연구자이자 개발자로서의 생각이 잠시 스쳤지만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뱉고 센토는 자신을 기다리는 앞을 위해 달렸다.
- 너의 불행을 끝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센토는 당시에도 지금도 왜 그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좋은 사람인 당신에게 여기가 불행했기에 내보냈다. 이해할 순 없지만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은 곁에 둬선 안 된다는 건 알았다. 직접적으로 해준 건 그 뿐이었지만 그런 생각을 가졌던 사람은 몇 명 있었다. 물론 센토는 그들을 전부 제 곁에서 내쫓았다. 다시 말하지만 제 곁이 불행하다면 곁에 둘 이유가 없다.
나의 삶은 불행한가? 센토는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자신에게 물었다. 물론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에 투자하기에 길게 생각하진 않았지만 잠깐의 틈이 날 때는 종종 생각했다. 사람의 삶을 비교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행복과 불행의 판단은 각자 개인에게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이 불행하다고 묻는다면 잘 모르지만 평범하지 않다고는 생각했다. 적어도 가족의 품을 떠나 스스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에서 주목받는 과학자는 많지 않다.
나의 삶은 불행한가? 그래서 센토는 이 질문을 보다 자세히 쪼개기로 했다. 우선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신의 삶은 불행한가?
불행하다. 물론 가족이란 범위부터 가족 간의 관계까지 따지면 또 모르지만 최소한 가족이 함께 있어야 행복하다는 사람에게 있어서 센토 자신의 삶은 불행하다. 센토는 자신의 비상한 머리 때문에 수많은 위협에 시달렸고 가족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국 중학교 졸업과 동시에 정부의 권유로 센토는 스스로 가족의 인연을 끊었고 이름을 버렸다. 정부가 지정한 곳으로 이동하던 도중 보인 가게 간판의 이름을 성씨로 정했고 그 앞에서 떼를 쓰며 울던 아이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정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다. 최근에 들은 소식으로는 은퇴하여 한적한 시골로 이사 갔다는 말을 들었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삶은 불행한가? 다음으로 자아실현으로 질문을 넘어가본다.
불행하지 않다. 센토는 어릴 적부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원하는지 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과학이 좋았고 수식이 즐거웠으며 그 두 가지를 이용하기 위한 머리도 있었다.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은 한 순간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가족의 곁을 떠나 이름을 바꿔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과학자의 꿈을 이뤄 지금도 아낌없이 연구에 스스로를 던질 수 있었다. 센토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연구는 즐겁고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이 즐거웠으며 새롭게 태어나는 것들이 어떻게 이용되는지 보고 싶다. 그 모든 게 갖춰져 있으며 행하고 있으니 불행할 수가 없다.
나의 삶은 불행한가? 그렇다면 노동을 하는 이유인 의식주를 따져보자.
불행할 리 없다. 자신에게 집은 없지만 연구실은 쉴 수 있는 공간도 식사를 할 수 있는 공간도 충분히 갖추고 있다. 돈이 아쉽지도 않다. 연구비용은 충분히 지급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들어오는 급료도 차고 넘친다. 불행하지 않다. 참 간단한 결론이다.
그렇다면 왜 제 옆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불행하다 여기는가? 그리고 그로 하여금 왜 그들은 불행해졌나? 센토는 언제나 여기서 고민을 포기했다. 알 수 없는 이유를 고민하기보다 제 옆에서 쫓아내는 것으로 간단히 마무리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정확하게는 같고도 달랐다. 같은 점이라면 어쨌든 센토가 원인을 제공한 점이며 다른 점이라면 평소와 달리 원인을 제공한 자신이 이렇게까지 필사적인 이유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동안 쌓인 모든 고민이 터졌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왜 오늘이며 지금인지는 모른다. 스스로를 천재 과학자라 생각하는 만큼 이성적인 사고에도 자신이 있지만 언제나 그럴 수는 없다. 자신 역시 인간이다. 인간은 언제나 이성적인 생물이 될 수는 없다. 센토는 아주 드물게도 지금의 자신은 직감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저 불쌍하다. 불행하지 않은 자신을 위해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그저 안타깝다. 공감할 수 없는 슬픔을 자신에게 보내주는 다정함이.
그저 걱정이다. 자신만 아니었으면 다칠 리 없던 이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서 안내하던 크로즈드래곤이 한 병실 앞에서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가까우리라 생각했지만 정말로 몇 층 다르지 않았다. 1인실인 이유는 아마 자신의 경호라는 현재 위치 때문이겠지. 센토는 오른손으로 마른 목을 잡았다. 이렇게 한들 통증이 가라앉지는 않지만 그나마 위안이다.
이건 분명―기로다.
센토는 남은 손으로 문을 열었다.
* * *
출근 중 벌어진 가벼운 접촉 사고였다. 류우가는 시큰거리는 손목에 시선을 주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평소라면 가볍게 피했을 차를 생각이 많아 늦게 본 것이 화근이었다.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피하며 넘어지는 과정에서 손목을 접질렸을 뿐인데 정신 차리니 병원이었다. 다행히 같은 병원이라 치료만 받고 바로 이동하려 했으나 일단은 교통사고라 하루 입원하고 경과를 보자는 것이 의사와 차주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당연히 류우가는 펄쩍 뛰었지만 교통사고는 기본적으로 당시보다 그 이후에 사고 후유증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당시에는 몸이 놀라 제대로 나타나지 않거나 느끼지 못하는 부상이 진정된 이후에 드러나는 것이다. 직접적으로 차에 부딪치진 않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여기서 자신이 잘못된다면 지금 눈앞에서 쩔쩔매는 차주나 향후 경호일정에도 차질이 생긴다. 급한 대로 망가진 제 휴대전화 대신 일단 주변 사람에게 빌려 카즈미에게 간단한 상황 설명을 해놨으니 오늘은 문제가 없지만 그래봤자 내일이 온다. 류우가는 평소 잘 쓰지도 않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비록 성질을 못 이겨 소리를 지르고 싸웠다 한들 상대는 환자이자 경호 대상이며 경호원인 자신은 근무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다. 다만 어제 그러고 나갔으니 단 둘이 있을 병실의 분위기가 신경 쓰였다. 솔직하게 말하면 그 숨 막힐 분위기를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는 연구실에서 그랬듯 병실 밖에서 지킬까 생각했지만 비록 그가 있는 층이 VIP들이 있는 곳이라 해도 병원이다. 기자재가 움직이고 환자들이 움직이는 병실 복도에 진치고 있는 것도 방해다. 1인실이라 병실이 넓으니 자기 하나가 안에 있다고 좁진 않겠지만 불편하다. 말한 내용 자체에 후회는 없지만 적어도 그렇게 따져 물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최소한 병실에서 나와 연구실에서 해야 했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일은 저질렀고 오늘은 피했지만 내일은 정상적으로 출근해야 한다.
“……내일 생각할까.”
오늘 고민해도 내일이 닥친다면 차라리 닥치고 나서 생각하는 게 낫다. 성미에도 그게 맞다. 길고도 짧은 고민을 마친 류우가는 벌러덩 드러누웠다. 키류 센토가 있던 VIP 병실보다야 못하지만 그래도 1인실이라고 침대도 편하고 가구들도 깔끔했다. 출근 중에 벌어진 일라 경비로 처리될 테니 차라리 즐겨주자. 그렇게 생각하며 본격적으로 자기 위해 편한 자세를 찾아 문 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열린 문틈으로 무언가 날아왔다.
“크로―.”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날아온 제 애완동물을 얼굴로 받아냈다. 애교 있는 몸짓과 달리 만들어진 몸은 딱딱한 금속과 플라스틱이라 결론만 말하자면 아프다. 손목보다 더. 갑작스러운 상황에 류우가는 급히 몸을 일으켜 일단 얼굴을 감쌌다. 처음 받을 때도 그랬고 본인도 주로 날아오면 던지고 하며 놀았지만 이렇게 얼굴로 돌격하라고 가르치진 않았는데.
“무, 무슨 일이야?! 너 갑자기 왜이래!”
“나 때문이니 뭐라 하지 말아요.”
그렇구나, 네가 문제가 아니네. 평소 듣던 목소리는 아니지만 낯설다고 하기엔 이미 한바탕 싸운 상대의 목소리다. 뻣뻣한 목을 억지로 움직여 류우가가 고개를 들자 예상대로 병실 문에 기대 숨을 고르는 그가 있었다.
안 그래도 나쁘던 안색이 희게 질렸다. 기계가 많아 언제나 시원한 온도를 유지하던 때에는 볼 수 없던 땀 때문에 머리카락이 얼굴에 붙어 어수선하다. 의식 없이 잠들었던 이틀과 어제와 오늘은 도대체 무엇이 달랐기에 어딘가 늘 식어있던 사람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뛰어온 걸까. 낯선 상황에 당황한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그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뱉고는 문을 닫고 성큼 다가와 침대 옆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체 무슨….”
“기다려요.”
얼굴 위로 펴진 손에 생각나는 건 이렇게 되기 직전에 있었던 연구실에서의 대화. 도대체 이 상황에서까지 뭘 그렇게 속으로 삼키는지 답답해져 류우가가 막 외치려던 때였다.
“나, 여기까지 안 쉬고 뛰어와서 지금 토할 거 같아.”
그러니까 좀 기다려요. 제 할 말만 하고 침대로 엎드리는 등이 작다. 류우가는 그제야 처음으로 자신이 지키던 남자의 신상이 떠올렸다. 자기보다 겨우 세 살 연상이지만 천재적인 머리로 18살에 대학을 졸업해 그 때부터 쭉 이 연구소에서 재직 중이라는 웃기지도 않던 프로필. 그때는 신은 불공평하네 하고 말았지만 지금까지 본 걸로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줄곧 외출조차 거의 하지 않고 연구소에만 있었다는 소리가 아닐까.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거의 사람이 오지 않는 곳에서 류우가는 알 수 없는 것을 바라보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몇 년을 살고 있는 남자의 뒷모습. 류우가가 그동안 지켜본 모습 그 자체가 아닌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연구에 미쳐 몸도 소홀하게 다루고 목숨조차 내던지는 정말로 살벌한 천재. 일이기 때문에 경호를 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연구소 유일하게 개인 경호가 필요할 정도로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걸 이 천재가 모를 리 없는데도 지금 어떻게 하고 있지?
“키류 씨.”
“미안, 조금만 더.”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모를 수가 없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고작 경호원 하나의 소식에 사색으로 달려와 헐떡이고 있다. 반사적으로 부르긴 했지만 상대방이 아직 숨을 다 고르지 못한 게 고마울 정도였다. 지금 이 한심한 얼굴을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세계의 과학을 뒤흔들 수도 있는 천재라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주목을 받았지만 동시에 위협도 있었을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그 주변까지. 가족에게의 위협은 이름을 바꾸고 떠나는 것으로 정리했겠지만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키류 센토 역시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천재도 사람이다. 지금까지 몰랐나? 생각할 틈이 없었다. 첫 개인경호의 부담감과 보통을 아득히 뛰어넘는 사람의 행동에 정신이 팔려 쫓기에도 급급했다.
연구소에서 나가지 않는 이유는 정말로 연구를 좋아해서 그러기도 하겠지만 밖이 말 그대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연구실 자체가 무조건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위협적인 가능성을 늘려 좋을 리가 없다. 머리가 좋은 남자는 이미 그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연구실은 처음부터 그의 설계대로 구성되었다고 들었다. 집이 없단 소리를 들었을 땐 연구실에 숙식에 필요한 걸 다 챙겨놔서 그런가보다 했지만 아마 자신으로 인해 휘말릴 무언가를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경호도 연구실 앞만 지키면 되니 편하지 않았던가.
너무 사람 좋은 해석일지도 모른다고 류우가 스스로도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배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면 죽을 수도 있는 폭발에 스스로 걸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연구에 대한 중독에 가까운 모습이 거짓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사고 소식에 토할 것 같을 정도로 뛰어와 숨을 내쉬는 모습도 거짓은 아니었다.
류우가는 불이 나듯 달아오르는 얼굴을 양 손으로 가렸다. 스스로가 한심에서 어쩔 줄 몰랐다. 어째서 조금 더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째서 조금 더 이 사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확실히 그는 예민하고 이상하며 짜증나는 사람이었지만 개인 경호를 둬야 할 정도로 긴장 풀 수 없는 날카로운 삶을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삶 사이에서 최대한의 배려를 이 남자는 하고 있던 것이다.
“나, 안 그만두니까요.”
자신의 말에 그는, 키류 센토는 고개를 돌렸다. 평소 연구실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던 사람이니 제 병실에서 여기까지 뛰어오는 다섯 층이 얼마나 길었을까. 아직도 돌아오지 않은 안색에 류우가는 멀쩡한 손으로 등을 토닥였다.
“사고도 뭐, 사고랄 것도 아니었고. 피하다가 손목이 접질렸을 뿐이니까 내일부터 정상적으로 병실로 출근 할 겁니다. 안 그만둬요. 나는 앞으로도 당신 경호원 할 겁니다.”
흔치 않는 개인 경호의 기회다. 경호원과 경호대상이 필요 이상으로 서로 가까워질 필요는 없다고 지금도 생각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런 단순한 생각으로 대하기엔 너무 복잡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미 류우가 스스로도 그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이 커졌음을 알았다.
궁금해졌다. 자신이 너무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 그 배려가 진짜인지. 진짜라면 이런 여유 없는 삶 어디에서 그 근거를 마련하는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면 그렇게 살 수 있는지. 말하지 않는 당신의 진심이 무엇인지.
“…그렇다면 다치지 말아요.”
류우가의 말에 그는 한숨과 함께 말했다. 지친 얼굴이 웃는 것 같기도 했다.
“내 담당이라면 나만큼 완벽하세요.”
“어느 누가 완벽하다는 건지.”
“나요.”
“환자복은 지금 누가 입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나죠. 나는 안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당신 재수 없는 건 어디에 있어도 똑같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았어.”
일으키려는 상체를 무리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눌러주자 순순히 몸에서 힘을 뺐다. 안색이 나쁜 건 뛰어와서도 있겠지만 아직 몸이 회복되지 않은 환자여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담당 씨.”
“왜요.”
“내가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걸?”
“음…. 이번 연구소 일이라던가.”
“그건 해줬으면 좋겠는데.”
“유감이네요. 나는 지금도 그걸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왜 물어본 거야. 류우가는 그런 말 대신 등을 쓸어주던 손을 올려 그의 눈 위로 얹었다. 땀이 식어 서늘했다. 아니면 원래 체온이 조금 낮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선 이런 것부터 알아가기로 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음 섞인 한숨이 새었다.
* * *
“그래서 이런 꼴이라고?”
“꼴은 뭔데. 그리고 아픈 놈을 불편하게 놓을 수도 없잖아.”
류우가의 반박에 카즈미는 반사적으로 입 밖으로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삼켰다. 언제는 개인경호 못하겠다느니 이 재수 없는 자식 짜증난다느니 불평불만을 쏟아놓더니 아주 지극정성이다. 센토를 위해 가져온 과일바구니를 주인 대신 받아들고 까먹기 시작하는 건 지적할까 했지만 나름대로 경호원이라고 제 침대를 센토에게 빌려줬으니 이번에는 넘어가기로 한다.
“류우가.”
“앙?”
“해고당했으면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너 말고도 우리 애들 중에 많다.”
“안 당했어! 내 말에 어디에서 거기까지 간 건데?!”
슬쩍 떠본 말인데 펄쩍 뛰는 걸 보니 정말로 담당은 유지되는 모양인 듯 했다. 별일이다. 카즈미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동시에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자신에게의 가혹함보다 타인의 상처에 민감한 과학자가 드디어 다른 이를 받아들일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니. 어지간히 자신의 생각을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었기에 반대로 그대로 드러나는 류우가를 붙인 것이 정답이었다.
- 너의 불행을 끝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지금도 생각나는 마지막 날. 자신의 사과에 센토는 평소의 무표정 그대로 고개 숙인 제 머리 위로 해고통지서와 보안팀 팀장으로의 추천장을 던졌다. 팔락이며 내려오는 종이 사이에서 카즈미가 느낀 것은 굴욕도 비참도 아닌 앞으로 이렇게나 어려운 배려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실제로 병문안을 왔던 아카바나 다른 애들은 당장이라도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분노했었다. 실상을 알고 있는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게 됐지만 당시를 말하면 고개를 내젓는다.
“류우가.”
“아 또 왜?”
“선배가 말하는데 대답이 그게 뭐냐? 잘 하라고. 센토 녀석 나쁜 놈 아닌 거 이제는 알잖아. 그냥 이해하기가 좀 어려울 뿐이야.”
“나도 알아. 네가 말 안 해도 저 녀석은 내가 지켜.”
“일이니까?”
“……뭐, 일이잖아.”
가볍게 한 말인데 의외로 반응이 나쁘지 않다. 평소보다 늦은 대꾸에 본인도 찔리는 지 시선을 피하는 류우가를 보며 카즈미는 씩 웃었다. 이거 잘하면 또 재밌는 걸 볼 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사랑은 지지 않는다고 하는 노래가사가 있었지?”
“그러니까! 왜 자꾸 그딴 식으로 말하는데?!”
지금 자기 얼굴을 알기나 할까. 잔뜩 붉어진 얼굴에 결국 카즈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보다 큰 웃음소리에 혹시나 잠든 센토가 깰까 허둥지둥 일어나는 류우가의 모습에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