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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류 씨는 좀 남지. 며칠간의 야근에서 해방되는 순간 들린 직속 선배의 사형선고였다. 그 자리에서 못해요, 안 해요, 나를 기다리는 강아지 같은 애인이 있는데! 라고 외칠 수 없는 건 철저하게 센토를 불러 세운 사람과의 관계 탓이다. 그는 센토가 속해있는 동도첨단물질학연구소의 첨단물질 제1연구팀의 팀장이며 대학 시절부터 지긋하게 알고 지내온, 학연이란 무시무시한 것에 얽혀있는 선배이기도 했다.


 

“저요?”

“키류는 너 말고 없잖아.”


 

물론 그렇습니다만 확인 좀 해봤어요. 돌아가지 않는 목을 돌려 억지로 뒤를 보니 그는 늘 그렇듯 서류와 서류 사이에서 저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저 이제 일 끝났는데….”

“그러니 잠깐 남아. 나도 곧 마무리 지을 테니까, 같이 나갈 수 있잖아.”


 

아악. 대체 왜?! 마지막 희망이 무너지고 주변의 동정어린 눈빛을 받으며 센토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이렇게만 본다면 꽤나 수직적인 일터로 보이지만 본래 연구소는 각자의 재능과 실적에 맞는 대우를 보장하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는 곳이며 이에 따라 센토는 누구도 무시 못 할 다양한 실적을 내세우며 자유분방하게 다니는 편이다. 다만 아주 극소수의 인물에겐 센토 또한 인간인지라 어쩔 수 없는데 불행하게도 팀장이자 선배, 즉 카츠라기 타쿠미는 그 아주 극소수의 인물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상대 중 하나였다. 물론 그가 팀장이며 선배이자 센토 이상으로 위대한 업적과 실적을 낳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의 중대한 문제가 있다.

 


“…그, 고생한 보답으로 내가 한 잔 살 테니까.”

 


바로 이게 문제라고. 센토는 삐죽 올라올 것 같은 제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눌렀다. 어째서 자신은 이리도 흥미 있는 것에는 관심을 멈출 수가 없는 건지. 진짜 안 좋은 습관이라고 연인과 여동생에게 번갈아가며 지적당하고 있지만 이쯤가면 본능이니 막을 길이 없다. 일주일의 철야에 지친 뇌가 기대와 즐거움에 단번에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며 센토는 반쯤 우는 얼굴로 휴대전화를 열었다. 보지 않아도 익숙하게 보낼 수 있는 메시지가 슬프다. 미안해, 반죠. 나 오늘도 야근이야…. 처량한 센토의 메시지는 오늘은 집에 온다고 했잖아, 괜찮아? 하는 다정한 답장으로 돌아왔다.


 


* * *


 


골목을 세 번이나 끼고 돌아야 나오는 작은 술집은 테이블도 많지 않고 안주 종류도 세 가지뿐이다. 술도 보통. 그럼에도 센토와 카츠라기가 여기를 찾는 이유는 세 개의 안주 중 하나가 둘이 좋아하는 단 달걀말이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어지간한 사람들은 이게 뭐냐며 놀랄 정도로 단 맛을 자랑하는, 어떤 의미로는 이 술집의 대표 안주다.



“연락이 안 된다고요? 사토 씨랑? 또 연락 안했어요?”

“어쩔 수 없잖아! 너는 일주일 정도였지만 나는 한 달 동안 크런치 모드였어! 간신히 판도라박스 겉면 4 패널의 4-6구획 에너지원의 구성원리와 수식이 나올 거 같은데 그런 연락 받아서 연구를 끊기게 할 순 없잖아!”

“그거야….”



한 때 나라의 위기를 불러일으킬 뻔 했다고도 하는 화성에서 넘어온 미지의 블랙박스. 통칭 판도라박스는 10년 단위로 각각의 구역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3년 전부터는 센토가 근무 중인 연구소에서 이어받았는데 자세한 건 지금 이 술집에 온 의의와 관계가 없으니 생략하고, 센토는 잘 먹지도 못하는 맥주를 들이키는 카츠라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기왕 연인인데, 한 달이나 연락하지 말라고 하면 저 같아도 삐져요.”

“사전에 말 했어!”

“아니, 타쿠미 선배. 그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연구자로서는 이해하는 말이지만 인간관계로는 조금 잘못된 일이지. 그러나 센토는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눈앞의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사람의 마음이나 감정은 수학처럼 명확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과학처럼 일정한 논리에 따르지도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걸 이제 겪고 있는 천재 과학자는 아직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아 따라오지 않을 것이다. 센토가 예전에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본래 귀찮은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 센토가 이렇게까지 개입해주는 건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원래 카츠라기와 현재 연락이 안 된다는 그의 연인인 사토 타로를 만나게 한 것이 센토 본인이라서가 더 크다. 물론 가장 큰 비중은 비상한 머리의 과학자와 몸만 믿고 사는 머리 나쁜 인간의 연애가 과연 어떻게 보이며 어떻게 진행되어갈지 궁금하다는 호기심이다. 이건 철저하게 본인의 호기심이지만 일찍이 자신과 류우가가 이렇게 보였을지도 모른다는 조금의 추억이 섞여있을지도 모르겠다.



“반죠랑 사귀고 있는 제가 할 말은 아닌데요, 선배.”

“…뭔데?”

“정말 용케 사토 씨랑 사귀네요.”

“진짜 네가 할 말이 아니야.”



그래서 도와드리잖아요. 센토는 손도 대지 않은 자신의 술을 밀어주며 휴대전화를 꺼냈다. 평소의 카츠라기라면 사회에서 판매되는 상품은 판매되어야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만들거나 하지 말라면서 센토의 자작 휴대전화에 잔소리를 퍼부었지만 지금은 술도 들어가고 있어서 그런지 큰 말이 없다. 마음은 제법 움직이고 있는 거 같은데, 그게 당신이 느끼는 것만큼 상대도 느끼고 있다는 생각까진 도대체 언제 도달하세요. 류우가와는 다른 의미로 시끄러운 음악가의 모습을 떠올리며 익숙해진 번호를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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