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며 웃는 모습은 주변 어디에나 있는 쾌활한 청년이랑 다를 게 없건만. 센토는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날 불쑥 자신을 찾아온 남자는 자기 자신을 반죠 류우가라 밝히며 대뜸 잔뜩 짊어진 가방을 내 앞에 쿵 소리 나게 내려놓더니 첫 번째 파일은 이건가 저건가 하며 꽤나 낡은 종이묶음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렇게 제 멋대로 판을 벌리는 류우가를 보며 센토는 글자 그대로 할 말을 잃었다. 첫 번째로 어떻게 연구 막바지라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한 연구실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두 번째로 왜 아무도 막지 않았으며―보안팀은 뭘 하고 있는 거야?!―그보다 더 중요한 건,
- 그러니까 이게 마지막 서른네 번째 자료인데…센토, 듣고 있어?
- 듣고는 있는데 뭐 하나 묻자.
- 응? 뭔데?
- 당신은 누구야?
너무나 자신을 친근히 부르는 이 남자를 센토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질문에 그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 반죠 류우가라고 했잖아? 라니, 내가 만난 적도 없는 너를 어떻게 알아?”
“사람이 익숙하면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그쪽이 처음이거든?”
“이제는 아니잖아! 그럼 됐지!!”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적…뭐? 분수는 어, 니가 맨날 쓰는 수학 그거냐?”
“사전 찾아봐.”
“너희는 매번 그러더라.”
당연한 말이다. 그가 이해할 때까지 설명할 시간은 센토에게 없었다. 반죠 류우가가 가져온 수많은 자료를 읽고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최종적으로 원하는 결과까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막바지였던 연구마저 미뤘다. 특별히 물어본 적은 없었지만 만나자마자 했던 태연한 행동을 봐선 아마 지금껏 만난 키류 센토‘들’은 그가 가져온 연구를 우선해 주었을 것이다. 자신처럼 말이다. 왜냐고? 어쩔 수 없다. 반죠 류우가에게 있어서 ‘키류 센토’는 히어로이기 때문이다.
서른네 번쯤 설명했을 텐데도 나쁜 머리 탓인지 상대인 나, 즉 키류 센토가 너무 머리가 좋은 탓인지 그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경위는 모든 걸 다 기억하고 겪어온 그보다도 그의 말을 정리해놓은 앞선 키류 센토들의 자료가 이해하기 쉬웠다.
반죠 류우가는 외계생명체의 유전자가 섞인 인간이었다. 그가 있던 세상은 외계인의 침략에 당해 지구가 멸망할 지도 모르는 사태였으며 가면라이더라는 과학의 힘으로 어쨌든 위기는 극복했다. 그 과정도 자세히 쓰여 있었지만 여기서는 할애한다. 아무튼 그렇게 평화를 되찾는가 싶었더니 결국 남은 유전자가 문제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는 당연함을 그는 누릴 수 없었다. 그의 파트너인 ‘키류 센토’는 평생을 그의 상황과 연구에 바쳤지만 끝내 이루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불사는 둘째 치고 불로라니, 물리법칙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일이다. 물론 그가 이룩한 신세계부터 말이 안 되는 일이지만 그건 자신이 있는 세상 자체에선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끝내 파트너를 두고 가야만 했던 ‘키류 센토’는 지금까지 자신의 연구를 전부 정리해 반죠 류우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했던 것이다.
‘네가 믿을 수 있는 과학자에게 가져가라. 분명 너를 도와줄 거야.’
평생을 자신에게 바친 ‘키류 센토’의 유언마저도 제 일이었다는 그의 말에는 차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키류 센토’의 유언대로 그는 동료의 도움을 얻어 여러 과학자를 찾았으나 다들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 너무나 앞서고 복잡한 연구를 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고 일부는 늙지 않는 그에게 실험 같은 터무니없는 짓을 하려고 했다. 그 과정을 거치며 반죠 류우가는 판단했다. ‘키류 센토’의 연구를 이해할 수 있는 건 키류 센토뿐이고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것도 키류 센토뿐이라고.
이후 행동은 빨랐다. 그는 다른 라이더들을 찾아다니며 시공을 넘나드는 기술을 배운 후 세계를 넘어 다니며 어딘가에 있는 ‘키류 센토’를 찾아다녔다. 아득해지는 가능성의 세계를 수없이 넘고 또 넘어 반죠 류우가는 그 이후 서른 두 명의 키류 센토를 찾아냈고 그들은 자신처럼 그의 황당무계한 이야기와 압도적인 연구 자료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서른다섯 번째 키류 센토다.
“반죠.”
“왜?”
“너는 ‘키류 센토’의 곁에 머물고 싶은 적 없었어?”
자신의 질문에 지혜의 고리를 달그락거리며 가지고 놀던 반죠 류우가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굳이 쳐다보지 않았다.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꽤 오랜만에 들어본 질문이라고 생각해서.”
“그래?”
“응. 최근에 만난 센토들은 여기의 ‘나’랑 인연이 가까워서 연구에 바빴으니까. 대화도 별로 못했고.”
“아쉬워?”
“나름대로. 다들 그래도 날 위해 열심히 연구해줬으니까.”
반죠 류우가는 조건에 따라 세계를 옮겨 다닌다. 조건은 이 세상의 ‘반죠 류우가’를 만나기 전 시점의 ‘키류 센토’만 만나는 것이며 기간도 둘이 만나기 전까지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했더니 그는 무척이나 어색하고 이상한 얼굴로 모르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그 짧은 문장을 말하면서 혀를 세 번이나 씹는걸 보니 불쌍해서라도 더 물어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마 누군가가 했던 대사를 어색하게 따라하는 게 아니었을까. 아무튼 이게 주제는 아니다.
“그래서 대답은?”
“어? 아, 머물고 싶냐고 물어봤지. 그야 뭐, 그런 생각이 들 때도 많지만 이 세계의 ‘나’에게서 너를 뺏는 것도 미안하고.”
“뺏는 건 아니지. 애초에 만나지도 않았잖아? 모르는 사이고 네가 있다면 더 이상 만날 일이 없어지는 거잖아.”
“그건 아냐.”
꽤 단호한 말에 나도 고개를 들었다. 반죠 류우가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와 나는 만나야 해. 거기서부터 우리는 시작하니까.”
아마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닐 것이다.
“스스로 죽이기 위해 연구 자료를 들고 다니는 건 너 밖에 없을 거야.”
“어쩔 수 없잖아. 내 센토는 이미 죽었으니까 나도 같이 가는 거 말곤 방법이 없다고.”
이제 떠나는 반죠 류우가에게 낡은 가방 대신 큰 캐리어를 선물로 주자 이거면 넣기 쉽겠다며 낡은 자료들부터 소중히 정리하기 시작했다. 연구는 아직 진행 중이다. 당분간은 끝나지 않을 테니 늘어나는 자료들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바꿀 때였다. 저 가방도 몇 번째의 키류 센토에게 선물로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반죠, 나는 여기에 뭘 쓰면 되는 거야?”
“음, 다음에 만날 센토에게 쓰는 메시지?”
“왜 너도 몰라?”
“나도 본 적 없어. 센토가 나는 보지 말고 연구하는 사람에게 보여주라고 했으니까. 나는 연구가 성공하면 보라고 했어.”
연구가 성공하면 반죠 류우가는 인간처럼 나이를 먹거나 그 자리에서 죽거나 둘 중 하나일 텐데. 그러나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정도로 바보가 아니다. 센토는 반죠 류우가에게 받은 얇은 노트를 조심히 펼쳤다. 첫 장에는 연구 자료에도 있었지만 이 연구의 목적과 개요가 간단히 정리된 설명과 함께 그다지 길지 않은 남기는 말이 있었다.
「이 연구 자료를 가져간 반죠 류우가라는 사람은 비록 머리가 나쁘고, 근육만 있고, 바보 같고, 자신이 어떤 사태에 있는지 전혀 모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싸우고 누군가의 부당함에 화낼 줄 알며 다른 사람의 내일을 위해 제 한 몸을 던졌고, 던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이 글과 연구를 받아줄 당신과 당신의 선의에게 부탁합니다. 반죠 류우가가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키류 센토’가 죽은 당시 나이는 고작 마흔이었다고 한다. 센토는 잠시 고민하다 위의 지나온 키류 센토‘들’처럼 짤막하게 한마디를 적고 노트를 반죠 류우가에게 돌려주었다.
<서른여섯 번째 키류 센토에게: 위와 같음>
아주 많은 세계를 건넜고 그 와중에 수많은 키류 센토를 만났다. 자신의 파트너였던 ‘키류 센토’와 정말 비슷한 센토도 있었고 정말 사토 타로라 믿을만한 바보도 있었다. 그때는 이 여행의 끝이 여기일까 하는 절망도 조금 들었던 건 이젠 웃으면서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수많은 세계만큼이나 정말 다양한 키류 센토를 만나왔다 자부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류우가는 제 머리를 쥐어뜯을 기세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내리는 눈발 사이로 두 아이가 큰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여러 세계에서 여러 센토를 만나며 류우가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도착한 세상에 센토가 있는지, 센토가 그 세상의 자신을 만났는지를 알았다. 굳이 표현한다면 감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도착한 순간 키류 센토가 있음을 알았지만 동시에 이미 자신을 만난 것도 알았다. 원래라면 그 즉시 이 세상은 두고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지만 저번 센토를 만나고 꽤 오랜만에 만나는 센토다. 게다가 연구의 끝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들어서 솔직히 억지로라도 만나서 연구를 진행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적어도 어떤 센토인지, 어떤 세계인지, 자신이 부탁할 수 있을 정도인지를 눈으로 보고 싶었을 뿐인데.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정말 오랜만에 ‘키류 센토’를 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도 이건 정말 아니다.
“으애앵….”
“우우…울지 마….”
“아―그래, 그래. 둘 다 울지 말자…….”
설마 이 세계의 ‘키류 센토’가 아직 5살짜리 어린 애였을 줄 누가 알았는가. 덧붙여서 그 다섯 살짜리 어린 애도 센토는 센토였는지 자기도 고아면서 버려진 아기를 차마 외면하지 못해 길에 주저앉아 있는 것을 류우가가 발견한 것이다.
이제 어쩐다. 5살짜리 센토를 본 건 의외의 소득이었지만 자신은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니며 애초에 인간도 아니다. 인간으로서 삶을 되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지내고 있는 스스로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그렇다고 버려두고 다음 세계로 넘어갈 수도 없다. 비록 수많은 인간과 수많은 세상을 보고 끝없이 일어나는 어리석은 인간군상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 안에서도 필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류우가는 사랑한다. 자신의 파트너인 센토도 그랬다. 그런 ‘우리’들이 작은 생명을 외면하고 지나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류우가는 깊게 한숨을 내뱉으며 센토가 안기에는 큰 아기를 대신 안았다. 아기는 무척이나 작았다.
“있잖아, 센토.”
“…응.”
“이 아기 이름은 뭐야?”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아마 분명 이 세계의 ‘반죠 류우가’일 것이다.
“그럼 이 애 이름은 앞으로 ‘반죠 류우가’라고 하자. 아마 분명 맞을 거야.”
“그건 형 이름…?”
“내 이름이지만, 얘 이름이기도 해. 그러니까 나를 부를 때는 ‘반죠’라고 불러.”
“…반죠.”
“그래. 앞으로 10년 동안 내가 너와 이 애를 돌봐줄 거야. 딱 10년이야. 그 이상은 무리지, 아무래도…."
이젠 너무 멀어진, 자신들이 만든 신세계에 도착한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을 때다. 자신 때문에 그 세계의 반죠 류우가와 합쳐지지 않고 분리됐다 생각한 센토가 이런저런 방법으로 살 수 있는 집과 돈을 잔뜩 남겨놓고 사라지려고 한 적이 있었다. 사라지기 직전에 알아채서 미수에 그쳤지만 정말 제멋대로의 배려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류우가가 왜 갑자기 이 생각을 했냐면 지금 자신이 이 세계의 센토와 자신에게 하는 행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상황도 조건도 여러 가지로 다르지만 적어도 그 때는 이해할 수 없었던 센토의 마음을 지금에서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설령 이것이 옳은 선택이 아니라 해도 나는 너의 행복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너도 그랬겠지? 센토.
xx번째 키류 센토에게 2
검은 코트를 입게 된 건 더러워지는 게 덜하다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아가는 세계는 매번 모습을 달리하니 금방 낡고 너덜너덜해지는 스카쟌보다 다양하게 편리했다. 어쩌면 너도 이런 이유로 코트를 입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꺼낸 코트를 보며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뒤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물론 인물은 정해져 있다.
“센토, 아직 안 잤어?”
“내가 자면 어떻게 해요. 이 많은 자료들은 또 어떻게 하고요.”
“정리 자체는 나도 할 수 있어…. 이해하는 건 아니지만.”
“반죠, 그건 정리가 아니라 수납이라고 불러요.”
“너도 그러면서.”
“반죠보다는 낫죠.”
기가 막히다는 웃음은 참 ‘센토’와 닮았다. 센토는 내 대답을 더 기다리지 않고 아직 다 정리하지 못한 센토‘들’의 자료들을 익숙하게 모으기 시작했다.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들과 언어로 쓰인 것을 배우고 공부해 이 파일 저 파일로 나누는 모습은 언제라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다만 이번에 유달리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앞에 있는 센토는 이제 고작 15살이라는 것이다. 한창 어리광을 부리고 보호자 밑에서 살아야 마땅한 나이에 센토는, 그리고 이 세계의 자신은 둘이서만 남게 된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약속의 10년이 끝나는 날이었다. 이렇게나 한 곳에서 길게 있었던 적은 아직 자신이 인간이라고 알던 때가 아닐까. 그리고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이 세계는 그 세계만큼이나 가혹하고 비정했다. 죽지 않는 날은 생명이 있는 한 당연히 없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너무나 쉽게 죽는 세계였다.
“센토. 정말 나랑 같이 갈 생각 없어? ‘류우가’도 그렇고 너희가 없고 지금보다 안전한 세계도 있어.”
영원히 함께 해줄 순 없다. 자신은 자신만의 센토를 향해 가는 여행을 쉴 수 없으니 하다못해 지금보다 안전한 곳에서 내가 키운 너희가 편안히 살았으면 한다. 센토는 류우가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류우가도 사실 센토가 저런 대답을 할 것을 알았다. 이미 둘 사이에 수십 번은 오간 대화였다. 그래도 오늘이라면, 이 세계에 자신이 있는 마지막 날이라면 어쩌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가지 않아요. 나와 류우가의 세상은 여기고, 우리는 여기에서 살아가기로 이미 결정했어요.”
“하지만….”
“반죠.”
자신이 아는 것 보다는 아직 조금 높은 목소리. 점점 내가 아는 센토와 닮아갈 네가 내일이라도 죽을지 모르는 세상에 남겨놔야 한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을 생각이 들지 않는 자신에게 류우가는 진절머리가 났다.
걱정이라면 된다. 너무나도 된다. 이 세계의 ‘키류 센토’와 ‘반죠 류우가’가 될 아이들이다. 신경 쓰이고 걱정되고 해줄 수 있는 거라면 전부 다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며, 명석한 아이는 그걸 전부 다 안다. 뭐니뭐니해도 이 아이는 키류 센토니까. 그래서 센토는 류우가의 앞에서 웃었다.
“제안하고 싶은 게 있어요.”
“…제안?”
“네. 비록 저는 어리고 이 수많은 자료를 전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영리하지도 못했지만, 수많은 센토들의 지나온 흔적은 읽을 수 있었어요. 그러니까 이걸 꼭 반죠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반죠는 지금부터 다시 여행을 갈 거죠?”
“응.”
“그럼 새로운 세계 말고, 갔던 곳을 가는 건 어때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제안이었다.
“…어째서?”
“이 자료는 아주 많아요. 그걸 처음부터 익혀서 그 다음을 진행하느니 차라리 한 번 익혔던 사람이 다시 보는 게 더 빠르지 않겠어요?”
“하지만 센토, 이미 그 세계에는 나와 네가 있어. 그건 그, 저기, 내 안의 규칙 같은 게 있는데 말이지.”
“어차피 여기 머물렀던 순간부터 그 규칙 별 소용없었잖아요.”
참 가차 없는 것도 센토는 센토였다. 내 애매한 표정이 웃겼는지 센토는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찡그리며 웃는 것이 참 그립던 얼굴이라 결국 나도 웃어버렸다. 그래, 내 규칙이 다 무슨 소용이겠어. 네가 그렇게 웃으면 전부 다 괜찮은데.
“가 봐요, 반죠. ‘나’라면 분명 다시 온 당신을 무척이나 반길 거예요.”
그건 참 오랜만에 설레는 일이 될 거 같다.
문제가 생겼다. 그것도 꽤나 심각하다. 오랜만의 재회였음에도 아무런 말도 못하고 굳어버린 자신을 배려해 편한 방에 안내해준 이 세계의 센토와 자신에게 감사하며 류우가는 간신히 침대에 앉았다. 제 몸처럼 가지고 다녔던 연구 자료들은 본래의 주인을 찾아가 열심히 읽히고 있을 것이다. 걱정 말라며 웃는 얼굴이 정말 고마웠다.
제 손으로 키웠던 ‘센토’의 조언에 따라 자신을 만나지 않은, 새로운 센토를 찾는 대신 그동안 연구 자료들을 읽고 진행시키며 함께 생각해줬던 지난 세계들의 ‘센토’를 만나기 위한 여행을 얼마나 걸었을까. 긴가민가하던 생각은 이제 확신이 되었다.
세계의 시간은 흐른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딱히 잊어버린 건 아니었고 센토가 ‘센토’가 될 수 있도록 키운 적도 있으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계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실감할 수 있던 감각이었다. 즉 서로 다른 세계는 시간도 제각기 다르게 흐르는 중이라는 사실을 류우가는 역행하는 여행에서 깨달았다. 정말 바보 같은 것도 정도가 있다. 아직 신세계조차 만들어지기 전, 다른 라이더와 함께 두 지구의 충돌을 막기 위해 싸운 적도 있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여기에 무엇이 문제인가 하면 세계마다 흐른 시간은 제각각이어도 류우가가 떠난 그 시점부터 시간이 흘렀다는 점이었다. 세계를 넘나드는 방법은 배웠어도 시간까지는 넘나들지 못했기에 다시 도착한 세상은 자신이 떠난 후 짧게는 2년부터 길게는 20년까지의 격차가 있었다. 나이가 든 것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 그 세계의 나를 만나 함께 잘 지내고 있다면 기쁘다. 다만 이렇게 여행을 하다가는 분명 마주치게 된다.
센토가 있었고 내가 있었지만, 없어진 세계.
나를 도와주고 연구를 진행해주고 어느 세상에서도 나를 만나던 네가, 또 없어진 세계.
류우가는 그 세계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무슨 이유가 있다 해도, 비록 자신의 센토가 아니더라도 센토가 ‘센토’라면 상실감과 슬픔을 느낀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건 그 한번이면 충분했다. 한 번 읽어보고 연구했던 경험과 더불어 이번엔 딱히 시간제한이 없으니―이미 이 세계의 반죠 류우가와 만났으니까―한 세계에 머무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연구에는 그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것도 있었고 애초에 이미 자신들의 세상에서 사는 그들의 삶을 자신이 흔들고 싶지도 않았다.
정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이 없는 고민을 멍하게 하던 류우가는 어느새 누웠던 침대에서 급히 일어나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바닥에 구름과 동시에 침대 위 공간이 일그러졌다. 자신이 쓰는 방법과는 달라도 분명 이건 인간의 힘을 벗어난 무언가가 공간을 넘어올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넘어올 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보통을 넘어선 힘이 이 세계의 자신과 센토에게 방해가 되게 할 순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막 벨트를 착용하려던 순간이었다.
“아―! 드디어 찾았다! 류우가!!”
“…어?”
갑자기 손부터 쑥 나와서 휙휙 젓는 것이 퍽 기분 나쁘다. 그러나 그 공간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친숙하진 않았지만 아주 낯선 것도 아니었다. 친근하게 부르는 자신의 이름에서 맥이 빠지기도 했다. 벨트를 들었던 손이 내려감과 동시에 일그러진 공간이 벌어지며 휘적거리던 손의 주인이 튀어나왔다. 밝게 염색한 갈색 머리에 동그랗게 웃는 얼굴이 꽤나 친근하다. 자신보다 조금 어린 청년은 침대에서 훌쩍 내려와 류우가의 어깨를 덥썩 잡았다.
“진~짜 오래 걸렸다! 뭐, 시간은 문제가 안 되지만! 그래도 느끼는 건 오래야! 그렇지?”
“어…어? 뭐, 뭐야 너. 누구야? 나 알아?”
“어라? 나 기억 못하나? 하긴, 류우가는 엄청 오래 지났다고 했지. 응! 그럼 괜찮아! 자고로 왕은 백성에게 넓은 마음을 가져야….”
“적당히 해, 지오! 하나도 못 알아듣잖아!”
일그러진 모양이 사라지지 않는다 했더니 호통과 함께 사람 하나가 더 나왔다. 검고 짧은 머리에 매서운 눈이 지금 제 어깨를 잡은 청년보다 익숙했다. 아주 옛날에 봤던 거 같은데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떠올릴 이유도 없어졌던 기억들이었다. 정말로 희미한 옛날에, 아직 내가 너와 함께 있었을 때에.
자신이 막힌 것을 알았는지 나중에 나온 청년이 가볍게 발로 제 동료를 찼다. 그제야 잡고 있던 손이 풀려 류우가는 한걸음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소개가 늦었다. 묘코인 게이츠다. 이 녀석은 토키와 소고. 각각 가면라이더 게이츠, 가면라이더 지오다. 함께 싸운 적이 있지만, 너에겐 아주 오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한테는 오래 안됐는데~.”
그렇게 말하니 언뜻 생각이 났다. 지금보다 더 어린, 그래도 착실하게 자신들의 싸움을 하던 이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의 싸움이 끝나고 센토와 함께 돌아가던 중에 왕이 되겠다던 재밌는 애가 있었다고 했었지. 거기까지 생각한 류우가는 자신의 기억에 헛웃음을 지었다. 함께 싸운 적이 있는 이들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센토가 했던 말은 기억한다. 센토를 걸친 연관성은 기억한다. 이 얼마나 명백한지.
“…류우가?”
“아, 음…. 미안. 솔직하게 기억이 확실하게 나는 건 아닌데, 아무튼 왜 온 거야? 나를 찾은 거지?”
처음 나온 순간부터 찾았다, 고 했으니까. 류우가의 말에 소고가 빙그레 웃었다.
“맞아. 부탁을 받고 류우가를 찾고 있었어. 함께 가줬으면 하는 ‘시간’이 있어.”
“부탁…?”
류우가의 의문은 오래 가지 않았다. 소고는 가지고 있는 워치 하나를 들어 보여주었고, 그걸로 모든 것이 해결됐기 때문이다. 빨갛고 파란 그것은 하염없이 바랜 기억에서도 선명하게 존재했다. 세계를 구했고, 자신을 구하고, 자신의 내일을 끝없이 만들어준 나의 히어로. 반죠 류우가의 영웅.
“자, 어서 연구를 완성하자. 센토가 기다리고 있어.”
모든 것이 노력한 만큼 돌아온다면 좋겠지만 꼭 그렇지 않은 게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딪치는 건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해야 할 때도 있으며 만족할 수준이 아니라 할지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경우도 있다. 하여튼 수많은 사람만큼 수많은 결과를 낳는 그 인과는 왕의 자리에 있는 토키와 소고라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당장 본인도 그런 일이 부지기수가 아닌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건 너무하잖아!”
“또 뭘 하려고?”
“어서와, 게이츠.”
활짝 웃는 소고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게이츠의 발걸음이 멈췄다. 저 얼굴은 분명 귀찮은 일을 생각하고 실행하기 직전, 뭔가를 도모하는 얼굴이었다. 지긋지긋하게 봐온 모습에 찌푸려지는 자신의 표정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짓하는 태도가 화가 나다가도 늘 봐왔던 소고의 모습이기도 했다.
“…네가 불러서 좋았던 일이 없는데.”
“그래도 같이 해줄 거면서. 게이츠는 내 기사니까 말이지.”
그리고 이렇게 도망가지도 못하게 말을 한다. 게이츠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가까이 다가갔다. 신하와 왕의 태도는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따질 일은 아니었다.
“내용 봐서.”
“시간과 공간을 같이 이동하고 싶은데.”
“거절한다.”
“빨라! 아니, 이야기 좀 들어줘!”
“거절한다!”
정말 이제 와서의 일이다. 냉큼 몸을 돌리는 게이츠를 소고는 다급히 잡았다. 혼자서도 못하는 건 아니지만 시간과 달리 차원을 넘는 건 소고는 아무래도 서툴렀다. 그 점을 게이츠도 알고 있기 때문에 부탁하는 이유는 알았지만 들어주는 건 다른 문제였다. 워즈랑 가라며 뿌리치는 게이츠와 워즈는 나 없을 때 여기를 지켜야 하잖아, 라는 소고의 반박이 있었으나 그럼 네놈이 안 가면 될 일이다, 그럴 거면 처음부터 안 불렀다, 같은 말씨름이 이어졌다.
안다. 알고 있다. 게이츠가 거절할 것도 자신이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일이 다른 이에게 평등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이미 끝난 과거에 개입하는 것도 옳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움직이고 싶었기에 게이츠를 불렀다. 소고에게 있어서 그들은 처음으로 만난 다른 라이더였으며 함께 싸우며 마음을 다잡게 만들어준 은인이자 자신의 워치를 제외하면 처음으로 자신들의 워치를 맡겨준 이들이었다. 흔들리지 않고 서있던 옆모습은 지금도 소고의 마음 한구석에 큰 지지대 중 일부였다.
“개입하는 게 아니야. 역사를 바꾸고 싶은 것도 아니야. 결국 이 ‘책’의 내용은 바뀌지 않을 거고 나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 두 사람은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당당하기 위해 열심히 살았어. 보면 알 수 있어. 거기에 내가 끼어들어서 무리하게 바꾸는 건 그들이 살았던 삶을 무시하는 일이잖아.”
“그걸 알면 왜 이제 와서 과거로 가겠다는 건데? 게다가 차원까지 이동하면서. 아무것도 바꾸고 싶지 않은 거면 그냥 그대로 두면 돼.”
“슬프니까.”
“…뭐?”
“이대로 끝나버린 게 너무 슬퍼서 그래.”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어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켰다. 그러고 나서도 세계가 위험에 빠지면 언제나 달려와 최전선에서 싸우던 둘이었다. 소고는 그런 싸움에서 종종 두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여전히 바보니 어쩌니 목소리를 높여가며 어린애 같은 말싸움을 하면서도 서로가 당연히 등을 맡기며 함께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처음 만났을 때도 두 사람은 함께 있었기에 떨어져 있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둘이라면 삶의 끝을 함께 맞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두 사람의 끝이 서러웠다. 처참했다. 자신보다도 두 사람이 서로가 함께 가리라 믿었을 텐데.
소고의 말에 게이츠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말은 없었지만 얼굴은 복잡했다. 물론 잔뜩 찌푸린 표정 자체가 크게 움직이는 건 아니었지만 그 안으로 수많은 생각이 지나가고 있다는 걸 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이츠는 매정치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깊은 한숨이 나왔을 때도 소고는 특별히 놀라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늘 자기 때문에 움직이는 그에게 아주 조금, 미안함은 있었다. 그건 다녀와서 사과하도록 하자.
“…츠쿠요미한테 혼 날 거다, 너.”
“그때는 같이 사과해 줄 거지?”
“혼자 해라!!”
쩌렁쩌렁 울리는 고함에 못지않은 큰 소리로 문이 닫혔다. 아마 타임마진을 가지러 가는 걸 테지. 씩씩거리면서도 늘 제 장단에 맞춰주는 게이츠를 생각하며 소고는 웃었다. 오마지오는 이제 없다. 왕이 되었지만 혼자는 아니다. 혼자였지만, 이제 혼자가 아니다. 그런데 하물며 언제나 함께 있던 너희들의 끝이 혼자였다는 사실은 역시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렇지? 센토, 류우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 자신이 있던 세계가 어디였는지 찾을 수도 없을 정도로 멀리도 왔다. 그게 너무 힘들어서 운 적도, 포기하고 쓰러져 아무것도 못하던 나날도 있었던 거 같다. 그마저도 정말 오래된 일이라 막연히 그랬던 거 같은 생각만 할 정도로 긴 여행길이었다. 끝을 포기한 건 아니었지만 보이지 않는 끝을 생각하는 것도 무리였다.
그래서 스물다섯 번째의 센토가 예순에 가까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우당탕 하며 무언가 깨뜨리고 걷어차고 구르며 문을 열었을 때, 이 세계도 한 때 가면라이더가 존재했지만 자신들과는 분명 다른 생김이었음에도 눈에 익은 보틀을 높게 들었을 때도 류우가는 이게 긴 여행의 끝을 고하는 시작임을 알지 못했다. 게이츠의 바쁜 차원이동 준비도 소고의 축하메시지도 어딘가 멀게 들리던 류우가를 현실로 돌려놓은 건 그 세계의 자신, 반죠 류우가였다. 한때는 자신과 비슷했던 젊음은 시간에 흘려보내 조금 줄어든 키와 약해진 체력이 무색하게 강한 포옹에 화들짝 놀란 것도 그 순간이었다.
- 잘했어. 고생했어. 류우가, 너는 정말 노력했어. 고생 많았어. 많이 힘들었지.
울음이 섞인 목소리를 듣자 이상하게 어깨의 힘이 빠졌다. 힘들었냐고. 그야 힘들었지. 센토와 함께 있던 시절도, 센토가 죽고 없는 그 세상도, 마침내 뛰쳐나와 센토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수많은 차원을 막연히 찾아다녔던 그 시간 무엇 하나 힘들지 않은 시간이 없었다. 차원을 넘어가는 순간 이제 더 이상 센토는 없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에 떨었던 것도 힘들었다. 그래. 많이 힘들었다. 그걸 이 세계의 내가, 네가 ‘나’이기 때문에 알아줘서 기뻐. 류우가는 훌쩍이는 이 세계의 반죠 류우가의 등을 토닥였다.
그렇게 다소 갑작스럽게 여행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류우가는 긴장한 얼굴로 몇 번이고 숨을 뱉었다. 이 문을 열면 끝난다. 설마 이제 와서 이 문을 다시 마주할 줄은 몰랐다. 사전에 아무런 내용도 못 들었지만 막연히 ‘시간’까지 뛰어 넘는 이들이 왔으니 혹시, 하는 생각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생각이지 실제로 마주한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류우가는 금과 은색으로 얼룩진 보틀을 으스러지듯 쥐었다. 이 순간을 위해 그 긴 시간을, 여행을 버텼다. 이제 아직 가지고 있는 드라이브에 이 보틀을 끼우고 작동시키면 모든 게 끝난다. 그 전에 이 문을 열어야 한다. 그저 보통의 나무 문.
이 문 너머에 센토가 있다.
그리고 오늘은 센토가 죽는 날이다.
당시 류우가가 사와타리 농장에 숙식 아르바이트를 하러 떠났을 때였다. 연구에 몰두하는 센토를 두고 가는 게 걸렸지만 매년 하는 일이었고 카즈밍의 농장 야채들은 맛있다. 입이 짧아 길게 먹지 않는 센토가 이 야채들로 하면 그래도 제법 먹기 때문에 이번에는 얼마나 가져갈까 하며 일을 하던 중 들은 부고였다. 그 뒤 어떻게 올라왔는지는 지금도 기억할 수 없다. 소란스러웠고 아마도 카즈밍이 제 손을 잡고 끌었다. 달리기도 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정겨운 우리의 집도 언제나 발이 닿던 나시타도 아닌 싸늘한 병원이었다.
그랬다. 그곳에 네가 있었다. 이렇게나 긴 시간이 걸려야 했던 연구를 혼자 붙들고 있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피곤했을까. 그런 네가 참 오랜만에 편안히 잠들어 있는 모습을 봐서 처음엔 네가 죽은 지 몰랐다. 그냥 또 아팠다고 생각했었지. 부고를 들었는데도 말이야. 잠들었다고 생각해서 센토는 괜찮냐 물어보며 방에 들어가 가는 네 손을 잡았는데….
“가만히 서서 뭐해, 반죠?”
네 손이 무척 딱딱하고 차더라.
“센토.”
“아까부터 문 앞에 있어서 들어오는 줄 알았더니 뭘 그렇게 가만히 서있어? 게다가 이 밤중에 무슨 일로 농장에서 오고…. 무슨 일 있어? 연락은 못 받았는데. 결국 일 못해서 쫓겨났어?”
“센토….”
“…반죠? 왜 그래?”
이상한 듯 고개를 갸웃하는 것, 눈이 나빠지며 미간을 조금 찡그리면서 보던 습관도 류우가가 기억하던 바로 제 센토였다. 이쪽 세상으로 넘어오는 도중 읽었던 노트를 썼던 센토. 다른 수많은 세상의 센토가 아니라 자신을 걱정하고 나를 염려하고 혹시 스스로가 언제 죽어도 내가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준비를 마련해준 센토. 나의 내일을 만들었던 센토.
내 센토다.
울음이 터졌다. 지금까지 지나간 시간이 단숨에 돌아오는 것 같아 숨도 벅찼다. 류우가는 그렇게 센토를 붙잡고 오열했다. 마구 외치고 수많은 말을 내뱉었다. 네가 죽고, 또 다른 너를 만나서, 연구를 알 수 있는 건 너 뿐이니까, 그런데 네가 죽어서, 너를 만나려고 많은 세상을 돌았는데, 역시 너는 어느 세상에서도 너였지만, 너랑 내가 함께 있었는데, 근데 분명 센토는 있었지만, 네가 아니었으니까, 내 센토는 너 하나뿐이니까, 너를 그날 혼자 두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너를 혼자 죽게 두지 않았을 거야, 혼자 둬서 미안해, 나를 혼자 두지 말아줘, 센토, 센토, 센토….
노도처럼 쏟아지는 지리멸렬한 말은 스스로 들어도 한심했다. 이래서야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센토도 모를 것이다. 함께 살던 시절 나름대로 열심히 이해하고 설명을 해도 센토는 내 말을 처음엔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하긴 반 이상이 틀렸으니 그 와중에 중간부터 이해해서 수정해나가는 센토가 대단하긴 했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하기도 어려운 것뿐이다. 류우가는 숨을 막아오는 울음을 어떻게든 참기 위해 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말하고 싶다. 네가 이렇게나 필사적으로 했던 연구가 성공했고, 원래라면 따로따로 삶을 마감한 우리가 안쓰러워 시간과 차원을 넘어서 이렇게 네가 죽는 날에 너와 내가 만나게 하기 위해서 다른 가면라이더가 도와줬다는 일 같이 설명하고 싶은 게 가득이었다.
그러나 결국 류우가는 그 무엇도 끝까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잡았던 그 때와 달리 다시 마주 잡은 손은 제대로 따뜻해서 울었고 센토가, 그렇게나 보고 싶던 자신의 센토가 괜찮다고 해서 울었으며 양 팔로 안아주었기 때문에 또 울고 만 것이다. 그리고 간신히 진정했을 때는 수없이 봐도 그립던 모습으로 웃어주었기 때문에 따라 웃었음으로 설명할 기회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괜찮다. 전부 괜찮다.
네가 있으니 이제는 다 괜찮다.
* * *
“해 뜬다.”
“그러게.”
“언제까지 있을 거야. 다 끝났잖아.”
“응―…. 조금만 더.”
문 건너편에서의 오열도 웃음도 창문으로 사그라지던 금색의 빛 알갱이들도 완전히 숨을 죽인 때의 여명이었다. 게이츠는 의욕 없이 앉아있는 소고를 보며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소고가 한 말대로 되었다. 역사는 바뀌지 않았고 큰 개입을 일으키지도 않으면서 두 사람에겐 그간의 노력을 재회라는 형태로 보상해주었다. 죽기 위해 만들어진 보틀은 키류 센토의 심장을 조용히 멈추었으며 시간에 벗어났던 반죠 류우가의 삶도 몸도 빛으로 변해 보내주었다. 방식은 달라졌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머지않아 자리를 비운 현 시점의 반죠 류우가에게 연락이 갈 것이며 긴 삶이 시작된다.
“게이츠.”
“뭐냐.”
“츠쿠요미가 화낼까?”
“아마도.”
“역시 그렇겠지…….”
“…잠깐, 지오 너 그걸 걱정하고 있었어?!”
“그치만 츠쿠요미가 화내면 무서운걸.”
하하, 하며 웃음을 터뜨리는 것 치고는 손에서 두 워치를 놓지 못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게이츠는 목까지 찼던 말을 삼켰다.
“…5분 정도는 같이 들어주마.”
대신 전혀 엉뚱한 말을 내뱉고 말았다. 게이츠의 말에 소고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제 옆에 서있는 그를 보며 다시 웃었다.
“역시 게이츠라니까~.”
“딱 5분이다!!”
“5분만 혼내달라고 해볼까? 츠쿠요미라면 5분 동안 엄청 혼낼 수 있을 거 같아!”
“지오!”
“자~이제 돌아가자! 우리들이 있는 세상으로!”
앞으로 게이츠를 억지로 밀어내며 소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고개를 돌렸다. 당신들이 있던 곳. 당신들의 울음과 웃음과 삶의 마지막과 그 여정 전부를 정말로 존경해요. 웃으며 함께 떠날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맺힌 눈물을 몰래 닦으며 소고는 투덜거리며 타임마진을 불러내는 게이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