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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피고 또 지듯이
차라리 사랑에 빠졌으면 좋았으리라.
하늘과 약속해 건국된 이 나라는 하늘의 전달자이며 아이기도 한 용을 받았다. 지상에 내려온 용은 인간의 나라에서 시련과 삶을 익히며 나라는 용을 보호하고 하늘의 배려를 받아 크지 않은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를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긴 역사도 여기까지일 것이다. 미친 왕은 불로불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용을 찾았고 그를 막은 수많은 신하들은 이미 목이 베였다. 자신 또한 그런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이 감옥에서 살아나간 존재는 없다.
무엇이 어찌 되어 왕이 미쳐 하늘과 역사가 약속한 관계를 파탄내고 위협에 빠뜨렸는지 알 수 없다. 센토가 아는 건 누군가 목숨을 걸고 자신에게 용의 위치를 알렸으며 실제로 가보니 가장 큰 목련나무 밑에 상처투성이로 쓰러져있는 현 세대의 용, 반죠 류우가가 있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제 눈앞에 있는 그를 달래 보내야 한다.
“반죠 님.”
“어째서, 열리지 않는 거야…. 센토는, 센토는 아무 것도 나쁘지 않은데. 센토는 착한 인간인데, 왜 왕은 센토를, 사람들은 왜….”
이 감옥까지 찾아와 열리지 않는 창살을 잡고 우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 보면 그는 참 자주 울었다.
닷새 만이었다. 첫날엔 깨어나지 못했고 이튿날엔 잔뜩 날을 세우는 통에 물조차 입에 대지 않았다. 보다 못한 자신이 먼저 음식을 먹고 건네자 허겁지겁 들이킨 것이 사흗날이었으며 사랑받으며 귀한 존재에게 지금의 일을 사과하자 펑펑 울음을 터뜨린 것이 나흗날이었다. 닷새에서야 곁을 내준 그의 옆에서 너덜거리는 비늘을 정리하고 상처를 치료했다. 아프다며 울었고 마음이 아프다고도 울었다. 어째서 일이 이렇게 됐느냐 묻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못하자 또 울었다.
그런 그가 센토는 언제나 안쓰러웠다.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눈물을 흘린다면 차라리 사랑이 좋았다. 긴 역사 안에서 종족의 벽을 넘은 사례는 드물지만 있었다. 어떤 이는 왕과, 혹은 신하와, 혹은 다른 누군가와. 용은 인간의 나라이기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 아름다운 외모에 혹했으리라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센토는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드문 일이었기에 수가 많지 않아 이렇다 판단할 수 있는 근거로 쓰긴 약하지만 그들의 대부분은 자신과 가장 가까이, 오래 함께 한 이를 선택했다. 종족도, 살아가는 시간도 다른 이들이 함께를 약속한 것이다.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기는 슬픔을 각오하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무엇 하나 겹칠 수 없는 삶임에도 마음이 피어났기 때문이다. 마음이 싹틔우는 데 꼭 시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시간에 함께 물들어 가는 건 마음이 통하기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번에 내려온 용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것은 왕이었다. 그렇기에 차라리 사랑이 나았다.
“반죠 님. 잘 들으세요. 지금부터 가실 길을 알려드릴 테니 꼭 그 길을 따라 가야 합니다. 좁고 어두운 곳이지만 끝에 제 식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싫어. 나는 너 말고 믿을 수 없어.”
“미소라가 있습니다. 반죠 님도 아는 아이가 아닙니까. 여동생으로 삼고 싶다던 말은 거짓이었습니까?”
그 말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리라 생각했다. 곁을 내주고 난 뒤 본래 박애를 삶의 방향으로 삼아 내려온 용은 제 식구들에게 빠르게 마음을 열었고 특히 미소라를 많이 아껴했다. 아마 궁에서의 모습이 이랬을 것이다. 천진하고 인간을 신뢰하며 상처에 아파하는 존재였으리라.
“걱정하지 마십시오. 비록 지금은 같이 갈 수 없지만 제가 누굽니까. 먼저 나가 미소라를 따라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면 저도 곧 가겠습니다.”
“…정말로?”
두 번이나 더 묻고도 의심쩍게 바라보는 얼굴에 믿어 달라 웃자 그제야 그도 작게 웃었다. 이 모습을 가장 가까이, 오래 본 왕이 왜 이렇게 됐는지 정말로 알 수가 없다. 바닥에 앉아 자신이 설명한 길을 되짚듯 그리며 외우는 그를 센토는 가만히 바라보았다.
“센토. 나 이제 갈게.”
“길이 복잡하고 좁습니다. 헤매지 않도록 중간의 표식들을 잘 알고 따라가야 합니다.”
“…….”
“반죠 님? 지금 뭐라고….”
무어라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일 만남의 마지막 말이다. 자세히 듣기 위해 고개를 기울인 센토의 입가에 따뜻한 무언가 닿았다.
파란 눈이 바로 제 앞에 있었다.
“…꼭, 와야 해. 미소라랑 같이 기다릴 테니까.”
거기에 자신이 뭐라 답했는지 모른다. 정신이 들었을 때 그는 이미 몸을 돌려 자신이 알려준 통로로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센토는 반사적으로 뻗으려는 의지 대신 창살을 세게 쥐었다.
본디 자신은 직위가 낮고 도성에서도 외진 쪽이라 이 날 전까지 반죠 류우가와의 인연은 없었다. 단 한번, 왕의 곁에서 걷던 모습을 먼발치에서 본 것이 전부인 인연. 그런 자신에게 왜 그가 왔는지는 모른다. 다만 상처입고 쓰러진 그를 본 순간 앞으로의 일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지금 그를 돕는다면 자신은 왕에게 목이 달아나고 남겨진 제 식구들은 도망자 신세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데려온 것은 자신의 의지였다. 함정일지도 모르지만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며 부당함에 맞서는 것 또한 신하로서 응당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째서 스스로에게 변명하는 기분이 드는 걸까. 파란 눈이 잊히지 않는 건 단순히 특별한 색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전부 아니다.
그러나 센토는 이 현상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여도, 붙이지 않아도 이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일이면 누군가 죽을 것이며 자신도 죽을 것이다. 그저 바랄 뿐이다. 피난시킨 식구들이 무사하기를, 미소라가 그를 만날 수 있기를, 그가 여기서 나갈 수 있기를.
처음 만난 날 피어있던 별목련이 지금도 만개해 그를 맞아주기를. 그것 말고는 센토는 정말로,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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