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걸로 일주일 째 바람맞은 저녁을 바라보며 센토는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기껏 차린 저녁은 다음 날 아침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자체에 불만은 없다. 불만이라면 매번 이렇게 다 차린 이후에나 연락을 주는 사람에게 있다. 애초에 제 시간에 들어와서 함께 저녁을 먹는다면 이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는데. 먹을 의욕도 나지 않는 음식들을 냉장고에 넣기 위해 센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려면 또 살아지는 모양이다.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며 센토는 그 말을 절절히 느꼈다. 신분도 증명할 수 없는 세상에서 유명한 격투가로 성장한 이 세계의 인물과 똑같은 인간을 데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건 천재 물리학자로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육체노동에는 자신 있는 류우가는 막일부터, 기계를 다루는 것에 능숙한 센토는 어느 공장 기술직으로 들어가 급한 돈부터 미친 듯이 벌었다. 첫 월급이 나오고―그 전까지는 류우가의 일급으로 간신히 살았다―자신들의 사정을 안 공장 사장님이 작은 방 하나를 기숙사로 쓰라며 넘겨줬을 때는 둘이 방에 쓰러져 감격했다. 물론 둘이 살기엔 조금 좁았지만 그간의 숙소들에 비하면 사람이 살만한 곳이었다.
류우가의 이상한 기행이 시작 된 건 그렇게 정신없던 생활이 간신히 안정을 보이게 된 순간부터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녀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긁어모아 신분을 다시 만들고 일자리도 안정됐으니 신세계에 온 처음처럼 몰아붙이듯 일하지 않아도 되건만 류우가는 어찌된 영문인지 센토에겐 말도 없이 일을 늘렸다. 덕분에 같이 살고 있지만 서로 간신히 흔적만 볼 정도로 생활도 어긋났다. 정확하게는 류우가가 잘 들어오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센토가 한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두면 없어져있으니 들어오기는 하지만.
“역시 이사 가려는 걸까요.”
“뭐 그럴지도 모르지? 거기 너무 좁잖아.”
“그건 그렇죠….”
원래 센토 혼자서 살라고 준 방에 갈 곳 없는 류우가까지 데려 온 거니 좁은 건 맞다. 그래서 센토 역시 어느 정도 돈이 모이면 둘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자고 말했고 류우가도 동의했다고 생각했다. 생각했었다. 그 뒤 늘 그렇듯 얼버무리는 자신의 말과 이해 못하면 화부터 내는 둘의 성질 상 가벼운 말다툼으로 끝났던 화제였다. 하지만 원래 마음에 안 들면 나중에라도 정정하러 오는 류우가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아서 이 건은 서로 합의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이번에는 틀린 것 같다.
“같이 사는 게 좋기도 하지만 번거로울 때도 있잖아?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해!”
“네에….”
“아, 맞다. 이건 보너스. 그러니 기운 내라고!”
“보너스는 감사합니다, 나베시마 사장님.”
사람은 살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센토는 반사적으로 얌전히 받은 보너스봉투를 보며 웃었다. 어쨌든 살기위해 돈은 중요했다.
“어, 반죠. 방금 뭐라고?”
『안 들렸어? 오늘 나가서 먹자고. 아직 저녁 안 먹었지?』
“그렇긴 한데….”
『좋아! 그럼 일 끝나고 나 데리러 와라! 주소 보내놓을게! 나 일 들어간다!』
“자, 잠깐 반…!”
물론 변하지 않는 것도 있다. 지 할 말만 하고 끊은 류우가의 통화에 기가 막히지만 그것도 이미 익숙한 일이다. 잠시 기다리니 말한 대로 문자 하나가 도착했다. 주소는 잘 써놨는데 정작 식당 이름은 안 써놓은 모양이 딱 근육바보가 할 만한 실수다. 어차피 근방에 가면 만날 테니 더 물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궁금한 건 식당 이름이 아닌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나가서 먹자는 의도다. 맛있는 걸 좋아하는 것 치고 류우가는 외식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었다. 다시금 떠오르는 사장과의 대화에 센토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깊게 내쉬며 빌드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어쨌든 자신 또한 근무시간이다.
무엇을 말할지 예상도 하지 못하고 근무가 끝나 받은 주소로 도착한 센토는 고개를 갸웃했다. 식당 이름을 물어볼 걸 그랬나. 주소 근처의 거리에 식당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같이 먹기에 괜찮은 곳은 보이지 않았다. 이정도의 식당이라면 자신들이 사는 방 근처에도 얼마든지 있다. 굳이 이런 곳까지 부를 이유가 대체 뭘까. 새로 구한 아르바이트가 이 근방일까. 생각은 해도 대답은 모른다. 아무튼 정답을 가진 사람은 키류 센토가 아니라 반죠 류우가라는 사람이다.
“센토! 여기!”
“너, 식당 이름 정도는 써 놓지 그래.”
바이크를 휴대폰으로 돌려놓자 좁은 골목에서 저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센토가 몸을 돌리자 생각한 대로 일터가 근처였는지 근무복 그대로 성큼 다가오는 류우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보는 것도 꽤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지만 그 전에 밖에서 만나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신세계에 떨어진 이후로 서로 멀어진 적이 없었다. 세계에 단 둘뿐인 삶은 멀어지지 않는 걸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게 나빴던 걸까?
“안 썼던가? 뭐 됐고, 따라와. 여기야.”
“잠깐, 반죠. 따라갈 테니까….”
밖에서 손 잡지 말라는 소리는 목 뒤로 넘겼다. 저를 이끌며 웃는 얼굴이 조금 마른 게 걱정이었지만 그 이상으로 환히 웃는 모습에 따지기도 어려웠다. 도대체 어떤 식당이기에 이렇게 신이 났는지 궁금해졌다. 센토는 류우가에 대해 의외로 잘 모른다. 그가 어떤 사람이며 어떤 심지를 가지고 어떤 성품인지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기호나 취향은 솔직하게 말하면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안 경우가 많았다. 많았지만.
“양복점?”
“맞아! 얼른 들어가, 센토!”
이건 전 세계에 있었어도 예상할 수 없었던 패턴일 것이다. 도저히 류우가와는 어울리지 않는 가게를 어떻게 알았는지 묻기도 전에 센토는 뒤에서 미는 힘에 밀려 양복점의 문을 열었다. 제법 늦은 시간인데도 가게 안은 환했고 다양한 옷들이 단정히 정리되어 진열되어 있었다. 밀려들어오기 직전 주문제작도 가능한 곳이란 걸 봤으니 이 옷들은 전부 자신들의 주인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곳에 왜 자신들이 왔는지 모른다. 센토는 기본적으로 옷에 큰 관심이 없고 류우가는 이런 딱딱한 옷을 좋아하지 않는다. 뒤를 돌아도 류우가는 그저 웃으며 등을 떠미니 방도가 없다. 적어도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도대체 무슨 일일까. 그렇게 센토는 작은 양복점의 벽을 타고 돌아 문 하나에 멈췄다. 이미 약속이라도 됐었는지 문을 두드리는 노크에 안쪽에서 문이 열리자―
“…어?”
―익숙한 코트가 눈앞에 있었다. 센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볐다. 자세히 보니 아직 덧댄 천이나 실밥이 나와 있는 걸 보면 아직 만드는 도중인 듯 했다. 하지만 분명히 이 코트는 자신이 입던 모습 그대로였다. 갈색에, 후드도 달 수 있었고 참 여러 보틀들도 넣기 편하게 넉넉한 주머니가 있던 그 모습이 되어가는 코트가.
“사실 몰래 주고 싶었는데 재단사님이 입는 사람이 편하게 입는 게 제일 좋다고 하고,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해서…. 너 거의 입고 다녔잖아. 좋아했던 거지?”
좋다기보다는 습관에 가까웠을 뿐이지만 그런 걸 이 자리에서 말할 필요는 없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자신의 의도를 알았는지 류우가는 멋쩍은 듯 더듬더듬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하고 퇴근하던 길에 전시된 코트가 예전에 자신이 입던 것과 비슷해서 들어왔다고 한다. 금액을 보고 예약을 해서라도 사고 싶은데 조금 코트의 변형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재단사는 그렇다면 처음부터 주문 제작을 하는 것이 어떤지 제안했다. 금액은 다소 올라가지만 주문과 입는 사람에 맞춰 만들 수 있다는 말에 그 자리에서 계약하고 이 코트 비용을 위해 따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 설명이었다. 갑자기 신세계로 떨어진 당시와 달리 다소 돈의 여유는 서로에게 있지만 이런 사치품을 살 정도는 당연히 아니다. 이런 걸 살 바에야 차라리 끝없이 들어가는 류우가의 위장을 채울 쌀을 사는 게 낫다.
“반죠.”
“자, 빨리 입어봐! 사이즈는 일단 내가 어, 배운 대로 재서 알려드리긴 했는데 그래도 입어보는 게 좋잖아. 그렇지?”
그건 언제 배웠고 언제 재서 갔느냐고 머리는 생각하는데 목에서 말이 넘어오질 않았다. 재단사의 도움으로 가봉된 옷을 입자 낯설고도 익숙한 안정감에 센토는 자신이 생각보다 그 옷을, 그렇게 입고 다니던 자신을 키류 센토라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어때?”
“…좋네.”
그리고 이젠 없는 그 세계를 다소 그리워하고 있는 것도 알았다. 물론 그 세계에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다. 아무런 일 없이 평화롭게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올바르다. 다만 그런 세계에서도 가족이 있었고 동료가 있었다. 찰나의 다정함은 조금 그리웠다. 자신의 대답에 만족스레 웃고 있는 남자도 그럴 것이다.
“반죠.”
“응?”
“우리 돈 더 모으면 큰 곳으로 이사 가자. 숙소는 너무 좁잖아.”
사실 늘 불안했다. 이 세계에 너와 나만 남아 함께 있게 되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가 아닐까. 임시가 아니더라도 사실 함께 살 이유는 없으니 이제라도 편히 따로 살자고 하면 또 어쩌나. 물리적으로 멀어지더라도 이제 없는 세상을 아는 것은 서로뿐이라 그 연대감은 무너지지 않겠지만 그 뿐이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 세계가 아니더라도 네가 멀어지는 걸 상상한 적이 없다고 하면 무슨 생각을 할지 묻는 게 무서웠다. 그래서 언제나 생각을 중간에 끊었다. 이후의 가정을 하는 자신에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