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까지 방영분을 포함한 여름 극장판의 루머 및 날조와 스포가 다양하게 섞여있습니다. 캐릭터붕괴도 주의.
너를 따라 입은 코트가 오늘도 까맣게 펄럭인다.
오늘의 류우가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판도라타워도 안정적이고 각 장관들에게 받은 세 도의 정세도 큰 위험이 없었다. 물론 올라오는 모든 보고를 믿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에서 문제될 정도의 것들은 아니다. 아니라고 했다. 센토가 그렇다고 하니 그런 것이다. 따라서 오늘도 센토가 늘 말했던 LOVE&PEACE는 무사히 지켜졌다. 가면라이더가 없어도 잘 지켜졌다. 이보다 류우가에게 기쁜 일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류우가는 이제 제법 좋은 소리를 내는 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처음에는 몇 시간 신으면 아파지던 발도 익숙해졌고 목까지 잠근 와이셔츠도 불편하지 않다. 부담스럽던 금색의 배지는 자신의 힘이며 다신 잃어버릴 수 없는 소중한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패다. 예전의 자신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지만 류우가는 지금의 자신이 싫지 않았다. 과거의 자신이 그립지도 않았다. 그 모습을 센토가 가장 사랑하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때의 무능한 모습을 류우가는 이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바닥 차는 소리가 빨라지자 그에 따라 검은 코트자락이 쉼 없이 퍼덕였다.
모든 싸움이 끝났어도 판도라박스와 판도라타워는 사라지지 않았고 분열된 세 도도 합쳐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비록 일부라고 해도 판도라타워를 움직일 수 있는 류우가의 존재는 새롭게 새워지는 정부에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고 류우가도 그것을 거절하지 않았다. 무슨 소리냐며 더 이상 필요 이상의 정치판에 자신을 끌어들이지 말라며 펄쩍 뛰는 센토를 잡은 것도 류우가 본인이었다.
그렇다, 잡았다. 류우가는 의아하게 쳐다보는 센토를 잡았다. 늘 자기를 가장 나중에 생각하는 히어로를, 상처투성이가 되고 사실은 꽤나 겁이 많은데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을 붙잡았다. 언제나 늦은 자신에게 어쩌면 처음으로 온 기회일지도 몰랐다. 아귀힘이 강한 자신에게 진심으로 붙잡혔는데도 왜 그러냐며 걱정하는 말부터 건네는 이 상냥한 사람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는 기회. 다치고 끝없이 다치면서도 지키려고 하는 세상에서 상처만 받던 사람을 세상에게서 지킬 수 있는 기회가. 반죠? 저를 부르는 이 목소리를 류우가는 절대로 잃을 수 없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류우가에게 가면라이더로서의 목표나 긍지라든가 나시타의 미소라나 사와처럼 소중한 것은 이것저것 있었지만 그 모든 소중한 걸 소중하다 여길 수 있는 내일을 만들어준 존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 나는 정말로 바보구나. 류우가는 여전히 팔을 풀어내지 않는 센토를 끌어당겼다. 히어로 센토는 동료인 반죠 류우가를 의심하지 않는다. 센토는 류우가가 이끄는 대로 끌려간다. 반죠, 왜 그래? 그저 순수하게 의문을 담은 큰 눈을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아니, 처음부터 이럴 걸 그랬다고 방금 생각했어. 류우가는 활짝 웃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바뀐 옷을 입으면서 같이 바꾼 머릿결을 따라 빗던 손길이 멈췄다. 류우가는 눈을 떴다. 센토가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늘 상처투성이였던 옛날과 달리 깨끗한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제 머리카락을 만지던 길고 하얀 손가락도 지워지지 않는 작은 흉터들만 남았을 뿐 손가락 끝까지 따뜻했다. 그 사실이 류우가에게 안정을 주었다. 이게 차갑게 식었던 적이 있음을 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던 센토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냥.”
“뭐야 그게.”
“네가 있어서.”
“예전엔 내가 그런 소리하면 싫어하더니.”
그리고 그 전부가 한번 죽었던 것도 류우가는 기억한다. 지금과 같은 얼굴과 지금과 같은 목소리로 센토는 누구냐며 묻던 그 순간의 절망이 지금도 가슴 한편에서 아프다.
“센토, 키스하자.”
그래도 나을 것이다. 상처는 언젠가 낫기 마련이며 상처의 원인이 되는 장본인은 류우가가 만든 안전한 장소에서 웃는다. 지금도 무릎을 베고 누운 자신을 위해 기꺼이 미소 띤 얼굴을 숙여주었다. 비록 예전의 자신이 사랑했던, 예쁜 얼굴 가득 찡그리며 터뜨리는 웃음은 이제 없지만 그래도 평화롭고 안전한 이곳에서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어차피 그때의 자신도 없다. 그래도 센토, 나는 너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어. 너도 그랬잖아? 깊어지는 입맞춤에 입었던 길고 검은 코트가 미끄러진다. 은근히 두꺼운 옷감이 서로의 체온을 나눠주지 않았다. 방해되는 코트를 벗어던지고 류우가는 기꺼이 센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제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갈색의 히어로망토 대신 입은 까맣고 까만 코트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 * *
죽을 거야.
센토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내가 뭘 들었지? 다시 물어봐도 류우가는 태연하게 죽을 거라며 자신의 관자놀이에 겨눈 총구를 거두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런 표정변화 없이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센토는 그 순간 자신의 손에 래빗보틀이 있음에 감사했다. 정말로 감사했다. 그리고 알았다. 이미 너무 늦었던 것이다.
판도라타워를 어느 정도는 움직일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가장 먼저 류우가가 한 일은 타워 어딘가에 방을 만들어 자신을 가두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가둔 것은 아니었다. 센토는 지금도 류우가가 만든 방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창문도 있고 제대로 열리는 문도 방에 존재했다. 지극히 한정적인 인물들이지만 이 방에 오가기도 한다. 당연히 이젠 이 나라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리까지 올라간 류우가의 허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당연히 센토는 반발했다. 어째서 자신이 여기에 갇혀야 하는 것부터 그런 정치판에 올라가는 것까지, 류우가가 하려고 하는 모든 일을 거부하며 막아서자 나온 것이 총이었다. 가면라이더로서 싸우기 위해 만들었던 무기들이 아니라 정말 보통 총. 그러나 사람을 죽이기엔 너무나 간단한 동작이면 충분한 위력을 가진 무기다. 왜 그런 걸 가지고 있냐는 의문보다도 센토는 류우가의 행동에 경악했다. 네가 여기서 나가려고 한다거나 내가 하는 일을 방해하면 나는 네 앞에서 죽을 거야. 그리고 류우가는 정말로 자신의 머리를 쐈다. 센토는 보틀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칭찬했고 보틀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총을 쥔 손목을 잡은 제 손이 덜덜 떨렸다. 이렇게 어이없게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센토가 기억하는 반죠 류우가는 근육바보에 쉽게 흔들리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고 그래서 흔들릴지라도 제대로 설 줄 아는 사람이었다. 선하고, 뜨겁고,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동료였고, 사랑하는.
- 센토.
마주본 눈은 선명했다. 흔들림이 없었다. 센토는 그제야 류우가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류우가는, 사랑하는 제 연인은 진심을 저를 가두고 두 번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를 위해서는 못할 게 없었다. 그래서 류우가는 자신의 머리를 쏜 것이다. 센토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자신이 다치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이들이 다치는 일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바로 너일 텐데!
“…센토?”
“응. 옆에 있어. 좀 더 자.”
“…너는?”
“최근에 네가 재미있는 물리학 논문들 가져왔잖아. 읽고 싶어서.”
괜찮아, 어디 안가. 자신의 말에 간신히 안심했는지 도로 눈을 감는 연인의 몸이 식을까 센토는 두꺼운 담갈색의 이불을 끌어다 드러난 어깨 위로 덮어주었다.
결국 자신은 끝내 떨리는 제 손 위로 올라오는 따뜻함을 떨쳐내지 못했다. 믿고 있던 정의의 히어로란 결국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나 싸웠는데도 제대로 타워를 없애지도 못한 지금의 상황이 사실은 대답인걸까? 다만 언젠가 무슨 꿈이라도 꾸었는지 저를 붙잡고 아무것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의 히어로보다 무언가를 구하고 싶다면 나를 구하라고 나만의 히어로면 충분하지 않냐, 너는 나를 구했는데 왜 나는 너를 구하게 하지 않으냐며 미쳐 날뛰던 류우가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대체 이런 건 어디서 배웠는지.”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태양의 각도가 깊어졌다. 행여 잠에 방해될까 센토는 창문의 커튼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