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확인법(http://ahdkshgrl.tistory.com/44)에서 이어집니다... 모님께서 보고싶으신 부분을 썼는데 실력이 부족했음
"왜 네가 온 거야?"
"그게 오랜만에 보는 전 동료에게 하는 소리냐."
단호한 카즈미의 말에 류우가는 반사적으로 날선 자신의 감정을 심호흡으로 진정시켰다. '이런'몸이 된 이후로 감정의 요동이 예전보다 심한 것은 스스로도 알고 있고 특히나 센토에 관한 것으로는 더 심한 걸 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도 아니며 류우가는 해결할 생각도 없었다. 그 찰나의 생각과 배려와 고민으로 수없이 많은 시간을 후회했다.
"미소라가 온다고 들었는데."
"북도에서 책을 찾았다고 했잖아. 미땅에게 건네줄 정도는 아니야."
"그럼 처음부터 온다고 하면 됐잖아."
"시간을 못 뺄 줄 알았거든. 뭐 어때, 고작 책을 전달해주는 사람이 나로 바뀐 것 뿐인데 뭐가 문제야?"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고 따져 묻기엔 틀린 말이 없었다. 류우가는 결국 허락하고 말 미래를 예상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탑이 올라가 센토를 내보내지 않게 된 이후로 대부분의 출입은 자신의 선에서 막아버렸지만 미소라나 카즈미처럼 함께 생사고락을 넘겨온 동료들까지 쳐내는 것은 어려웠다. 일단 센토가 좋아한다. 자신 때문에 이 탑에 남아있어 특별히 나가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을 보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원래부터 센토는 사람을 좋아했다. 더군다나 함께 싸워온 동료가 오는데 반길 것이 당연하다. 그 표정을 생각해서라도 카즈미의 방문은 통과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치미는 감정이 복잡했다. 미소라는 괜찮은데. 미소라라면 괜찮았는데!
"어이, 정말 책만 주고 나온다니까."
"알고 있어."
저 책만 없었다면. 류우가는 결국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
* * *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붙잡았고 할 수 있는 모든 걸 사용해 여기에 머물게 만들었다. 그것을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 상황을 멈추지 않는 것은 류우가였고 말리지 않는 것은 센토였다. 그 사실이 돌아오는 죄악감을 조금은 가볍게 만들었다. 가끔 나오는 센토의 부탁도 그 죄악감의 연장선이었다. 탑에 들어온 이후 센토는 나가고 싶다는 부탁을 제외하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겠다는 류우가의 말에 무색하게 사소한 부탁들을 하곤 했다. 카즈미가 들고 온 책도 그랬다.
'꼭 그 판의 책이 보고 싶어! 부탁해, 반죠!'
여러 해외동화가 실린 동화집. 내용도 흔한 내용이라 처음에는 류우가가 직접 가져다 줬으나 센토는 그게 아니라며 연신 고개를 저었다. 책과는 거리가 있던 류우가는 차이를 몰랐지만 어쨌든 다르다는 모양이었다. 번역가와 출판사에 따라 달라지니 자신이 원하는 사양의 책을 가져와달라 평소답지 않은 고집을 부렸고 여기에 온 이후로 거의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은 센토였기에 류우가도 가능한 그 요구에 맞추고 싶었다. 카즈미가 가져온 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일반 동화집 같지 않게 두껍고 낡은 책이 수상해 펼쳐보기도 했지만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꽤나 옛날에 나온 책이라 예상보다 종이가 더 낡았고 일본어가 아니라는 점이 특이했다. 그래서 카즈미가 들고 가는 것도 허락했다. 비록 카즈미가 센토를 가뒀을 당시 가장 크게 반발하던 사람이었다 해도 말이다.
이게 나빴던 걸까. 류우가는 창가에 앉은 센토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허리에는 처음 보는 순간부터 당연하게 착용하던 빌드 드라이버가 있었다. 보틀이 없으면 그저 자동으로 착용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은 건 류우가 자신이었다. 센토가 이게 없으면 불안하다고 했고 한때 센토의 존재의의이기도 했던 것을 뺏는 것도 나쁜 것 같아 그냥 두었던 바로 그것이었다. 다른 것은 그 드라이버에 얹혀 있는 손에, 희고 크고 자신을 잡아주던 그 손에, 어째서 보틀이? 분명 전부 빼앗아서, 판도라 박스에. 센토는 가만히 웃었다.
"책을 선택하길 잘했어. 반죠, 너는 전부터 책은 싫어했잖아."
바닥에 나뒹구는 책의 안쪽은 무언가를 숨기고 들어온 듯 깊게 패였다. 어째서 몰랐을까 싶었지만 이 책은 유난히 크고 두꺼웠다. 동화를 요구하는 것이 처음이었지 센토는 원래 전부터도 이런저런 책과 논문을 자주 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조금 소홀히 보긴 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나를,
"배신했다고 생각해?"
손에 들린 보틀은 눈에는 익숙해도 평소 센토가 쓰던, 센토의 이름이 된 보틀이 아니다.
"걱정하지 마. 나는 언제라도 곁에 있어."
방은 크지 않다. 침대와 옷장 정도만 있는, 지하기지에 비하면 정말 좁디 좁은 그 공간이 왜 이 순간 너무나 크게 느껴질까. 필사적으로 달려 뻗은 손끝은 무엇 하나 잡지 못했다. 기울어지는 몸이 너무나 느리고 웃는 얼굴이 시야 가득 들어왔음에도,
"사랑해, 반죠."
추락은 순식간이었다. 하염없이 떨어지던 몸은 이내 익숙한 회색과 주황색의 금속을 몸에 둘러 하늘로 빠르게 날아올랐다. 돌아보지도 않고 날아가는 모습이 그리웠고 익숙했으며 센토다웠다. 함께 녹아가던 이 방이 익숙해져서 잠깐 잊었지만 원래 키류 센토라는 인간은 스스로 두뇌파라 자부하는 것 치고는 몸부터 나가는 사람이었다. 류우가는 창가를 으스러뜨릴 듯 잡았다.
센토의 부탁은 가능한 뭐든 들어주고 싶었다. 예전처럼 강한 힘은 모조리 빼앗고 돌려주지 않는 한에서는 뭐든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작은 부탁들을 들어줬고 센토가 알고 반가워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해줬다. 그것조차 너무 안이했던 걸까. 내가 너를 너무 얕본 걸까, 아니면 너는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을까. 센토를 위해 만들어준 작은 방에 센토는 이제 없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언젠가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을 구한 그때처럼 하늘로 날았다. 갈 곳은 정해져있으니 당장 가디언을 보내도 됐지만 미소라가 있는 곳이니 거친 수를 쓰고 싶진 않았다.
- 죽을 거야.
그렇게 말했지만 죽을 생각은 아직 없다. 센토가 아직 이 세상에 있다. 잡아 오면 죽을 필요가 없다. 죽을 이유도 없다. 자신이 없고 센토만 남은 세상에서 그가, 센토가 다른 이의, 누군가가 옆에 선다는 상상만 해도 분노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달렸다. 그러니 류우가는 죽을 생각이 없다. 그의 옆은 자신뿐이며, 자신 옆에도 센토면 충분하다.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억지와 모순으로 만들어진 작은 방에서 두 사람은 분명히 행복했다.
"센토."
이 이름은 처음부터 나만 부를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류우가는 자신의 실책을 한탄하며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