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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arp knife of a short life
날카로운 칼처럼 짧은 삶이었지만
Oh well, I've had just enough time
나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어요.
-
아무리 영리한 사람이라도 본인이 느끼는 당연한 무언가에 대한 상실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카츠키 역시 그랬다. 또래 아이들보다 명석한 두뇌와 강한 개성, 그를 위한 모든 환경은 카츠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 모든 것에서 하나가 또르륵 빠져나가리라곤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가 점점 잘 걷지 못하고 기침이 많아졌고 자는 시간이 늘어났어도 카츠키는 설마 그가 자신을 영영 떠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카츠키에게 있어서 그는 부모와 같았다. 부모보다도 당연한 존재였다. 맞벌이를 하느라 바쁜 부모 대신 그는 언제나 카츠키와 함께 있었다. 함께 밥을 먹었고 함께 낮잠도 많이 잤다. 히어로가 무엇인지도 가르쳐줬고 많이 많이 놀아줬다. 언제나 함께 있었다. 학교에 들어간 이후로는 부끄러운 마음에 올라가지 않았지만 카츠키는 그의 무릎 위에서 그의 품에 기대 노는 것이 가장 따뜻하고 행복했다. 그는 엄할 때는 엄했지만 그건 카츠키가 잘못 했을 때 뿐이며 대부분 그는 다정했다. 그를 정말 좋아했다. 부스스하게 웃은 웃음이나 늘 잘 정리되지 않았던 깊은 색의 머리카락도 좋았고 잔뜩 일그러진 그의 손이 아직 작은 제 손을 가만히 잡아올 때도 좋았다. 가만히 '캇짱' 이라고 불러오는 것도 좋았다. 카츠키라는 이름은 그가 지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카츠키는 자신의 이름이 좋았다. 정말 좋았다. 그가 정말로 좋았다.
- 캇짱.
그런 그를 닮은, 너는 누구지?
* * *
"...또 꿈이네."
카츠키는 떠지지 않는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요새 부쩍 옛날 꿈을 꾼다. 제 부모에게도 말해봤으나 중학교로 올라가 환경이 많이 바뀌는 바람에 예전 생각이 나서 그럴 수도 있다는 말만 들었다.
사실 카츠키는 그 말에 어느정도 납득을 했다. 중학교로 올라가며 지금까지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다. 아주 외지진 않아도 꽤나 시골인 이곳에서 중학교는 버스나 자전거 통학을 해야 할 정도의 거리였다. 당연히 일어나는 시간도 빨라졌고, 시골에서 조금 벗어나게 된 주변도 다르다. 카츠키가 사는 곳은 조용한 시골이었다. 처음 중학교에 갔을 땐 그 시끄러움과 부산스러움에 인상을 필 수도 없었다. 딱히 싫진 않았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환경이 바뀌면 예전생각이 날 법도 했다.
"카츠키-! 빨리 일어나지 않으면 아빠 먼저 가라고 한다-!"
"일어났어!"
최근에 직장이 이사해서 가는 방향이 같아진 터라 카츠키는 언제나 제 아버지의 차를 얻어타고 등교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먼저 간다고 해도 늦진 않지만 좀 귀찮다. 카츠키는 제 책상에 있는 딱 하나의 액자를 보고 조금 웃고는 그대로 아래층으로 뛰어내려갔다. 액자에는 지금보다도 많이 어렸을 적의 카츠키와 마지막 순간보다는 조금 더 젊은 그가 함께 찍은 사진이 반짝이고 있었다.
휴일을 빼면 카츠키의 하루는 대부분 일정하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가서 등교 한 후 당일 공부할 영역의 예습. 적당히 눈으로 훑어보고 엎드려 자고 있으면 친구들이 깨운다. 그렇게 수업을 듣고 쉬는 시간에는 축구. 덕분에 늘 체육복은 상비한다. 어차피 하교 시간에 필요하니까. 점심 먹고 또 운동장에서 놀고, 학교가 끝나면 다시 체육복으로 갈아 입는다. 몇번 갈아입는게 귀찮아서 입고 수업을 들었더니 경고를 먹어서 그 후로는 얌전히 갈아입는다.
몇명의 친구가
'의외네, 카츠키. 난 어쩐지 네가 선생님 말은 안들을 거 같았는데.'
하고 카츠키에게 웃으면서 말을 했으나
'시끄러, 새끼야. 경고 먹어서 학점 까이면 내 완벽한 인생 설계에 오점이 생기잖아.'
라는 철저한 대답과 함께 빠꾸를 먹었다.
그렇게 체육복으로 갈아 입고 가볍게 몸을 풀고 나면 집으로 가는 길은 뛰어서 돌아간다. 집과 학교의 거리가 있는 이상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려면 어쩔 수 없다. 아침에도 몇번 뛰어가봤으나 아직까지 체력이 거기까진 만들어지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코박고 자버리고 말았다. 카츠키는 천천히 하기로 했다. 아직 1학년이다. 아침저녁 학교까지 뛰어가도 멀쩡할 수 있는 체력을 이제 만들기 시작한 거 뿐이다. 그렇게 뛰어서 집에 간 후, 가볍게 씻고 간단히 간식 먹고 잠깐 잔다. 그 뒤에 일어나서 저녁을 먹은 후, 집 근처를 가볍게 뛰면서 몸을 움직인 후 집에 돌아와서는 복습, 그리고 취침. 휴일에는 학교가 없으니 몸을 움직이는 것과 공부에 좀 더 시간을 투자한다. 1등이 아니면 의미가 없지.
"카츠키, 넌 안질려?"
"뭐가."
카츠키는 친구의 물음에 인상을 쓰며 영어단어장에서 고개를 들었다. 이 새끼는 시험이 얼마나 남았다고 이상한 동영상이나 보고 자빠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친구 기준에서는 카츠키의 생활이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너 방금 니 하루 일정을 말했잖아."
"근데."
"그거 진짜 매일 매일 하는거야? 입학하고 지금 두달이 넘어가는데?"
"근데?"
"어...왜 그렇게까지 해? 놀아도 되잖아?"
"미쳤냐?"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카츠키는 반드시 히어로를 해야만 했다. 폭발이라는 히어로로서 완벽한 개성을 가졌으며 다른 녀석들보다 명석한 머리를 가진 자신이 히어로가 되지 않을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완벽한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그가 나왔다는 유에이에 가야만 했다. 히어로가 되는 엘리트 코스를 밟는 첫번째 길. 유에이 고교에 진학해서 큰 히어로 사무소에 취직해서 반드시 고액세납자가 되어 제 이름을 이 세상 널리 퍼뜨리고 말리라. 그것은 카츠키가 4살일 당시, 막 발현한 개성을 보고 펑펑 울었던 그와 함께 이야기하며 결심한 꿈이었다. 할 일은 많은데 하루 24시간은 너무나 부족했다. 그가 잠은 반드시 충분히 확보하라고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해서 그걸 따르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꼴닥 샌 밤은 양 손가락으로도 부족했을 터였다.
그런데 뭐? 그렇게까지? 정말 기가 찼다. 하지만 동시에 조금 의문이 들기도 했다.
"야, 넌 그럼 하루에 대체 뭘 하냐?"
카츠키는 영어단어장을 닫았다. 이런 놈에게 완벽한 일상의 일정을 비난받은 것이 짜증나긴 했지만 그보다 궁금했다. 그럼 대체 이 잡몹새끼들은 평소에는 뭘 하는가. 제 부모도 자신의 바른 일정에 아직 어린데도 그렇게까지 할 거 있었느냐며 놀라워했다. 결심하면 반드시 해내는 카츠키였으니 지금은 자신의 일정에 잘 따라주고 있지만 이게 그렇게나 일반적이지 않은가. 그게 카츠키는 궁금했다.
"공부는 해?"
"공부? 숙제 있으면 하긴 하지."
"예습은? 복습은?"
"응? 아니...어...할 때도 있긴 한데...."
"그럼 집에 가서 뭘 하냐?"
"그냥 쉬거나, 텔레비전 보기도 하고, 친구들이랑 만나거나 게임을...."
그러니까 니가 허접새끼인거야. 카츠키는 더 들을 필요가 없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다 불현듯 오늘 아침의 꿈을 떠올렸다. 그라면. 언제나 구불구불 다 찌그러진 양 손을 펼쳐서 자신을 꽉 안아줬던 그라면 자신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그는 그 나이대에 맞게 살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했을 것 같다. 다정하고 상냥했던 사람이니까. 그러니 자신의 완벽한 일정에 조금 난감하게 웃으면서 캇짱은 대단하네. 그렇지만 조금 한숨 돌려도 좋지 않아? 라는 식으로 조금의 숨통을 틔워줄 지도 모르겠다. 그 얼굴이 눈에 선했다. 그가 제 곁을 떠난 지 벌써 2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카츠키는 집에 돌아가면 당장이라도 그가 웃으면서 인사해줄 것 같았다. 전에는 인사가 없는 집이 이상해서 좀 울기도 했지만 이젠 그정도까진 아니다.
"그래서 카츠키, 오늘도 바로 집에 갈 거야? 내일 토요일인데 놀러가자. 좀 쉬어도 되잖아."
"됐어, 오늘은 갈 데 있어."
"집?"
"아니거든, 죽고싶냐?"
"그럼 좀 놀러 가자. 중요한 일이야?"
"어."
"뭔데?"
"성묘."
순식간에 찌그러진다. 멍청한 놈들. 카츠키는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는 그들을 앞에 두고 태연하게 제 지갑을 살폈다. 돈은 적당했다. 꽃집이 학교 근방에 있던가. 주변의 분위기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 그의 모습에 아이들은 당황하면서도 굳었던 몸을 풀며 분위기를 다시 띄웠다. 카츠키는 특별히 지적하지 않았다.
카츠키는 진열된 꽃 중 가장 싱싱해보이는 꽃을 한주먹 정도 샀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어서 성묘가는데 쓴다고 했더니 주인은 조금 놀라는 듯 하다 깔끔한 포장으로 꽃을 건네주었다. 성묘라는 단어를 꺼내면 분위기는 대충 숙연해지거나 당황하거나 둘 중 하나다. 그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매번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은 것도 솔직한 마음이었다.
사람은 죽는다. 남겨진 사람은 슬프다. 그건 당연하다. 카츠키는 그걸 좀 더 일찍, 확실히 알았을 뿐이다. 하지만 슬퍼한다고 해서 죽은 자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뭐라 말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카츠키는 성묘에 우울한 마음을 쓰지 않기로 했다. 슬퍼만 하기엔 함께 지낸 시간이 너무나 소중했다.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만큼 참 잘 웃어주기도 했다. 울음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건 그의 영향이겠지. 그렇다고 우는게 좋은 것도 아니니 그처럼 잘 울진 않는다.
무덤은 오늘도 고요했다. 찾는 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 대부분이 시간을 제대로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카츠키는 꽤 금방 다녀갔는지 싱싱한 국화꽃다발 하나를 정리하고 그 옆에 제 것을 놓았다. 그는 생전에 친구가 많았다. 당장 카츠키의 기억 안에도 많은 사람이 떠올랐다. 아닌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 히어로였으며, 현재에도 엄청난 활약을 보여주는 사람도 있었다. 유에이 시절의 학우라고 했다. 좀 나이가 멀긴 하지만 제 먼 선배들이 될 사람들이다. 죽은 이에게는 흰 국화라는 상투적이고 고지식한 걸 보면 히어로 잉게니움이나 쇼토 둘 중 하나일 확률이 높다. 둘 다 히어로 랭킹의 상위권 들이다.
"나 왔어."
깨끗하고 정갈한 무덤. 이젠 이 한자도 무덤도 꽤나 익숙하다. 카츠키는 픽 하고 웃었다.
"데쿠."
세상에서는 히어로 데쿠.
카츠키에게는 히어로보다는 그냥 데쿠. 나갈 출 자를 쓰는 데쿠.
미도리야 이즈쿠(綠谷 出久).
무덤의 주인이었다.
히어로 데쿠. 미도리야 이즈쿠. 카츠키에게 미도리야 이즈쿠는 데쿠였으며 부모와 다른 또 하나의 부모였으며 친구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이었다. 이제는 땅 속에서 고이 잠든 그를 카츠키는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소중한 추억이고 과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히어로였다. 그랬다고 한다. 그가 죽고 자신이 좀 더 크고 나서 남겨진 영상과 흔적을 보고 나서야 믿게 될 정도로 카츠키의 앞에서는 그다지 히어로인 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카츠키보다 자주 넘어지고 울었으며 많이 아팠고, 다정하게 웃던 사람이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은퇴를 한 거였으니 몸이 성할 리 없었다. 그러기에 그렇게나 넘어졌던 거겠지. 카츠키는 그런 그를 보며 늘 데쿠는 안되겠네! 하고 말했고 그는 눈썹을 내리며 웃었다. 카츠키에게 남은 데쿠의 기억 대부분은 이정도였다. 언제나 함께 있었고, 소중했고, 아이인 자신을 무시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함께하리라 믿었던.
미도리야 이즈쿠는 카츠키가 중학생이 되기도 전에 죽었다. 생각보다 오래 살았다고 들었다. 카츠키에게 있어서는 그의 죽음은 믿을 수 없는 충격이었지만 그의 동료들에게 있어선 생각보다 오랜 생존에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그 말을 들었을 땐 카츠키는 화를 내려고 했다. 그를 보기 위해 종종 시골로 내려온 친구들이며 히어로들이 어떻게 좋은 죽음이었냐고 말할 수 있었는지 몰랐다. 예상보다 오래 살았다고 말하는 게 참을 수 없었다. 카츠키는 잃었다. 영영 잃었다.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화를 내려고 했을 때 누군가 제 작은 몸을 안았다.
- 카츠키 군.
흔들리는 단발 머리와 부드러운 몸. 짙은 갈색 머리. 종종 놀러와서 개성으로 하늘로 붕붕 띄워주던 사람. 히어로. 이름 만큼이나 화창하게 웃었던 그녀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카츠키를 소중하게 안았다.
- 데쿠 군을 지켜줘서 고마워. 네 덕분에 데쿠 군이 이렇게나 오래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었어.
지금도 그녀가 했던 말은 잘 이해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걸 지켜준건 데쿠였는데 왜 그녀는 자신에게 지켰다고 했을까.
- 고마워. 데쿠 군이 너에게 그렇게 전하랬어. 그러니까 카츠키 군. 우리도 고마워. 네게 고마워.
- ...모르겠어...!
- 응. 모르겠지. 영영 몰라도 괜찮아. 카츠키 군은 그냥 이것 하나만 알고 있으면 돼.
따뜻하고 부드럽고 그와는 다른 체온. 영원한 상실을 깨닫고 쏟아지는 눈물은 카츠키 하나만이 아니었다. 슬픔에 씻기는 눈동자는 모두가 맑고 투명했다. 그녀는 웃었다.
- 데쿠 군은 정말로 너를 사랑했어.
알아.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나 자주 울던 그마냥 눈물이 하도 쏟아져서 카츠키는 그저 울었다. 울음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배웠다. 그렇게 가르쳐준 사람이 없으니 이제 혼자 울어야 했다. 이건 그 연습이고, 시작이었다.
- 캇짱.
부른다. 누구처럼. 눈에 익은 얼굴인데.
- 고생했어.
운다. 누구처럼. 분명 많이 우는 사람이었지만, 이런 상처투성이가 되진 않았는데.
- 잘 자.
웃는다. 그 사람처럼.
─또 꿈이다.
급히 눈을 뜨고 주변을 봤지만 시간이 많이 흐르진 않은 듯 했다. 카츠키는 엉거주춤 일어난 그자세 그대로 몇번 눈을 깜빡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쿠의 무덤 옆이어서 그런지 늘 흐릿했던 꿈이 오늘은 제법 뚜렷했다. 원래 일정은 잠깐 무덤을 둘러보고 집으로 가려고 했지만 변경이다. 카츠키는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진을 찍는거나 자신에 대한 걸 남기는걸 좋아하지 않은 그의 성격에 남겨진 그의 자료는 뉴스와 기사, 즉 히어로 활동 정도에 대한 것 정도다. 지금까지 카츠키는 자신의 데쿠가 아닌 '히어로 데쿠'에 대한 건 크게 찾아보지 않았다. 자신과 함께 놀 때는 이미 은퇴한 지 시간이 지나서 평화의 상징에 큰 의미가 없었고 히어로 로서도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특별히 생각하진 않았다. 그가 죽은 후에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중요한 사람이었지만 그의 과거까진 크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런 카츠키가 생각을 바꾸게 된 건 다름아닌 요즘 꾸는 그 꿈 때문이었다. '히어로 데쿠'에 대한 이야기는 부모님이나 그의 친구들을 통해서 간간히 접했을 뿐인데 자신이 꾸는 꿈에서 나오는 그는 히어로의 모습이었다. 아마도 그가 맞을 것이다. 꿈에서 깨면 바로 흐릿해지는 이미지에 영 떠올리는 게 어려웠지만 막연히 데쿠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끔 생각날 때 '히어로 데쿠'에 대한 걸 읽어보고 찾아봤다. 지금까지는 대충 그래왔지만 방금, 꿈에서 본 그는 확실한 히어로의 모습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카츠키의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히어로였다. 괜히 전 평화의 상징은 아니었네. 빌려온 책들과 여러 뉴스를 인터넷을 찾아보니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은퇴가 아까울 정도로 그는 굉장했다. 카츠키는 재생되는 영상을 멈춰 멍하게 바라보았다. 적을 때려눕히는 그도 대단했지만 그가 온 몸으로 존경했다 표현하는 한때의 영웅, 올마이트처럼 그도 언젠가 일어난 천재지변에서 수많은 사람을 구해냈다. 흔들리는 휴대폰 영상에서도 뚜렷하게 목소리가 들렸다. 카츠키도 많이 들었던 그의 목소리. 괜찮아요, 제가 왔습니다.
- 괜찮아, 캇짱. 내가 있잖아.
"카츠키! 아까부터 불렀는데 대체 뭘 하느라 대답이.... 어머, 미도리야 씨잖아."
"방에 올때는 노크 하랬잖아 이 아줌마야!"
"니가 대답을 안했잖아!"
카츠키의 외형은 어머니를 많이 닮았다. 건강한 체력도 그녀의 유전이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 카츠키 위로 내려온 주먹이 만만한게 아니란 소리다. 카츠키는 머리를 부여잡고 책상에 엎드렸고 아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리운 얼굴이었다.
"네가 어쩐일로 미도리야 씨의 영상을 보고 있어? 미도리야 씨의 히어로 활동은 별로 관심 없다며?"
"당연히 내가 데쿠보다 더 잘난 히어로가 될 거니까 상관 없잖아? 그냥 좀....그, 꿈에서 나오는 데쿠 모습이 히어로 시절 같아서 그냥 혹시나 해서."
"꿈이라 그런거 아냐? 꿈이란 게 이것저것 이미지를 합치기도 하니까 말이야. 미도리야 씨는 이때나 죽기 전이나 크게 바뀌지도 않았고."
그건 그랬다. 물론 이 시절은 벌써 20년도 더 됐으니 무척 젊었지만 그렇다고 이 때와 죽기 전까지의 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카츠키가 그 이유를 묻자 그녀는 그의 개성의 영향이라며, 예전에 들었다고 대답해주었다. 제 부모님도 나이에 비해서는 젊어보였지만-실제로도 젊었지만- 그 역시 50이 넘어갈 떄도 거의 30대 수준의 외형이었다. 그 외형때문에라도 그가 죽으리라 상상하기 더 어려웠겠지. 카츠키는 책상에 있는 액자를 잠깐 보고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아직도 그런 꿈을 계속 꾸면 좀 불편하지 않겠어?"
"괜찮아. 좀 졸립지만."
이 마음은 처음부터 있었다. 꿈은 당황스러웠다. 영문 모를 내용에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특별히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데쿠가 나오니까. 그가 나오는게 나쁠리가 없다. 그건 카츠키에게 당연한 명제였다. 카츠키의 마음을 알아서인가 그녀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러고보니 그거 알아? 미도리야 씨 아니었으면 너 태어나지도 않았을걸?"
"뭐?"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인데.
"자세히 말해."
"말버릇 하고는."
그녀의 설명은 간단했다. 아직 두 사람이 학생이었던 시절 카츠키의 아버지가 탄 버스 브레이크의 고장으로 시내를 미친듯이 질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연애중이었는데 카츠키의 아버지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좋은 사람과 잘살라는 등의 메시지를 제 어머니에게 보냈고(카츠키는 여기서 제 아버지의 담력을 알았다) 시골이라 마땅한 히어로도 없던 터라 모두가 도망만 갔을 때 나타난 것이 미도리야 였다. 그 순간은 똑똑히 기억한다고 했다. 시장에서 샀는지 먹을게 담겨있는 비닐봉투를 내던지고 앞으로 달려가 있는 힘껏 폭주하는 버스를 몸으로 막았다. 버스는 구겨졌지만 승객이나 운전자나 부상은 크지 않았고 당연히 카츠키의 아버지 역시 살아났다. 그의 어머니는 일단 못난 소리를 한 제 아버지를 내킬만큼 두들겨 팬 후 먹을게 난장판이 되어 멍하게 비닐봉투를 들고 서있는 그를 아버지의 집으로 초대했다. 그게 인연이 되었다고.
"...그건 굉장하네."
"그렇지? 그래서 히어로인 건 알았는데 설마 그 평화의 상징이었던 데쿠 였을 줄은 몰랐다니까.... 네 이름 지어주던 때 알아서 나나 아빠나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아, 내 이름. 데쿠가 지어줬댔지."
"그래. 좋은 이름이지?"
"알게 뭐야."
그렇게 지어놓고 부른 적이 거의 없어서 기억도 안난다. 늘 캇짱캇짱 하며 입에 달고 살았으니까. 이제 밥 먹으라며 내려오라는 그녀의 말에 카츠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인은 노쇠였다. 50대 밖에 안됐는데 노쇠라니 웃을 일이지만 젊은 시절 너무 몸을 혹사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외형은 그 개성의 반작용으로 크게 변하지 않은게 아이러니다. 그래서 종종 시골에 내려온 그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보다 나이가 많아 보였다. 처음에 어리둥절한 자신에게 데쿠가 뭐라 설명을 했지만 그냥 친구라는 말에 납득했던 기억이 난다. 카츠키는 낡은 노트를 매만졌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미도리야 이즈쿠의 유품이었다.
카츠키에게 그는 여러 히어로들에 대하여 알려주었다. 본인이 히어로였음에도 히어로를 무척 좋아하던 그는 카츠키와 함께 언제나 히어로 방송을 함께 볼 정도로 좋아했다. 이 노트들은 전부 그가 히어로들을 보며 분석한 노트들이다. 그가 죽은 후 유품을 처리할 때 누군가 카츠키에게 물었다. 그가 죽기 전 혹시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가지고 가도 괜찮다고 했다는 것이다. 전 평화의 상징이었던 자의 물건들은 대부분 협회에 회수되어 일부는 전시가 된다고 했다. 카츠키는 고민하다 그의 히어로 노트를 집었다. 말이 노트지 꽤 많은 양이었지만 카츠키는 조금도 남김 없이 전부 가져왔다. 데쿠의 이런 히어로 연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는지 협회에서도 일부는 넘겨줄 수 없겠냐 물었지만 카츠키는 단호했다. 데쿠의 유언이 내가 가지고 싶은 건 가져도 된다고 했잖아. 이건 내 거야. 결국 그들은 카츠키에게서 노트들을 가져가지 못했다.
딱히 이 노트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간간히 읽어봤지만 지금은 세상에 없는 히어로들도 있었고 어디까지 분석을 한건지 조금 무서울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걸 가져온 건 단 하나, 미도리야 이즈쿠가 카츠키 다음으로 가장 오래 만지던 물건이니까. 그 뿐이다. 카츠키는 노트를 매만지고 액자를 바라보았다. 액자의 그는 자신이 아는 데쿠. 지금 만지고 있는 노트는 가장 최신 노트이며 카츠키가 어릴 때 낙서도 하고 함께 봤던 노트, 즉 자신이 아는 데쿠가 쓴 거. 구석 방안과 모니터로 시선을 옮겼다. 낡고 너덜너덜한 자신이 모르는 데쿠가 쓴 노트.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히어로로 활동하던 자신이 모르는 데쿠.
미도리야 이즈쿠.
히어로 데쿠.
데쿠.
나의 데쿠와, 아닌 데쿠.
꿈에서 나오는 너는 아직 나의 데쿠가 아니었던 너.
그런데도 그 데쿠는 캇짱 이라며 아직 없을 나를 부른다.
카츠키는 쌓아뒀던 노트를 담아둔 상자를 열었다. 1권만 없는 노트의 권수는 상당했다. 카츠키는 고민없이 맨 마지막권을 잡았다. 이 노트에 미도리야 이즈쿠에 대한 건 없지만 그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기록했는지는 알 수 있다. 지금은 일단 가장 최근, 자신이 접할 수 있는 부분부터. 맨 처음을 봐도 어차피 이해를 못할테니 거꾸로 되짚고 올라간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면 분명 어느 순간 자신이 모르는 데쿠와 알고 있는 데쿠가 같음을 알 수 있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 때가 이 조사의 끝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지만 이 꿈에 의미가 있다면. 구불구불 크레용으로 낙서한 어린 날의 제 글씨에 조금 웃으며 카츠키는 노트 내용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I've never known the lovin' of man
나는 그의 사랑을 알지 못했지만
but it sure felt nice when he was holding my hand
그가 나의 손을 잡고 있었을 때 기분이 좋았던 건 사실이에요.
あなたの傍に、ひとつでも笑顔が増えるように。
당신의 곁에 웃는 얼굴이 하나라도 늘어나기를
자기 가족이 자신의 탓으로 살해당한다면 그 누가 눈이 뒤집히지 않고 버티겠는가. 미도리야가 의식 없이 병원에 누워있던 건 약 24시간 정도였다. 그 24시간동안 그를 또 다른 자식처럼 아껴주었던 친구의 부모님이 살해당했으며 그 친구도 현재 생사확인이 안된다고 한다. 히어로가 된지 얼마 안 됐지만 그 모든 인생을 합쳐서 그때만큼 현실을 이해할 수 없었던 적이 없었다. 뒤늦게 달려갔을 때는 전부 늦어서.
"캇짱, 내 말, 내 말 들려?"
"......."
리커버리 걸이 온다고 해도 그는 이미 회복의 수준을 넘어가 있었다. 제 친구를 이렇게 만들고 아직도 목숨이 붙어 있는 그것에게 미도리야는 건물에서 쭉 빠져나온 철근을 내리꽂고 나서야 친구의 곁에 앉을 수 있었다. 그의 눈은 이미 흐렸다.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갔지만 저를 보고있는지 아닌지 확인이 어려웠다. 사람이 죽을 때 청각은 마지막까지 남는다고 한다. 사람이 잠에서 깰 때도 소리를 듣는 것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죽음도 마찬가지다.
"캇짱."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몰랐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아마 이제 죽을 사람에게 언제나 미움만 받던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그나마 편히 갈 수 있는지 미도리야는 몰랐다. 어린 시절을 함께 했지만 사이가 좋았던 시절은 한 손안에 들어올 정도였고 대부분은 서로가 서로의 곁에 있지도 않았다. 같은 시간만을 공유했을 뿐이다. 그런 너에게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하지?
"캇짱."
한번 더 부르자 아주 느리게 눈이 깜빡였다. 눈동자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보일까? 아니면 그냥 반사작용일까? 마지막 움직임일까? 미도리야는 생각을 그만두기로 했다. 자신이 뭘 해도 어차피 화를 냈던 사람이다. 바쿠고 카츠키는 그랬다. 그러니까 그냥 최후의 최후에, 너무 짧은 생을 제 개성만큼 살아갔던 그에게 인사를 하기로 했다.
"고생했어."
네 모든 삶이 아까울 정도로 고생이 많았어. 히어로가 되겠다고 노력을 아끼지 않고 부족함에 몸부림치고 앞으로 나아가는데 고민이 없던 그 모든 삶. 어긋난 적도 있었지만 그 또한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니. 미도리야에게 남은 건 하나 뿐이었다. 캇짱. 정말 고생했어. 수고 많았어. 그러니까 이제
"잘 자."
그는 눈을 감았다. 미도리야는 울었다.
그것도 옛날 일이지. 미도리야는 무거운 눈을 간신히 떴다. 그런대로 그리운 꿈이었다.
미도리야는 히어로를 은퇴한 후 조용한 시골로 이사했다. 은퇴와 더불어 어머니는 예상치 못한 유전병으로 세상을 떠나 힘들어 하는 그에게 토도로키가 제안한 장소였다. 그동안 쭉 함께 살았던 집을 떠나는 건 아쉬웠지만 모두의 걱정과 더불어 도시에 있으면 빌런이 나올 때마다 뛰쳐나갈 너를 챙기는 게 더 일이라는 말에 미도리야는 웃었다. 안그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이동한 시골은 정말 조용한 곳이었다. 미도리야가 버스를 기다리느라 잠깐 앉아있던 사이 졸고 일어나도 아이들은 여전히 깔깔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건물 뒤로 펼쳐진 논밭은 푸르렀다. 짐도 얌전히 제 발밑에 놓여 있었으며 언제 앉으셨는지 나이많은 할머니가 흐뭇한 얼굴로 주변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도리야 역시 광경을 지켜보았다. 도시에서의 긴장감은 이 곳엔 없다. 흐르는건 조용한 시간과 공기 뿐. 그게 낯선 적도 있지만 앞으로 빠르게 낡아갈 몸을 생각하면 적당한 속도다. 오늘은 집에 가서 뭘 해먹을까.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시장을 한번 더 가볼까 생각하며 미도리야가 자리에서 일어나던 때였다.
"누가 좀 도와줘요!! 버스가!!"
갑작스런 비명소리가 시골에 울렸다. 뒤를 돌아보니 빠른 속도로 버스가 질주하고 있었다. 운전사는 있었지만 조종을 할 수 없어 보인다. 브레이크 고장인가? 미도리야는 자리를 박차고 도로로 달렸다. 버스는 벌써 가까이 왔다.
"모두 안전벨트를!!!"
미도리야의 외침을 들은 운전사가 승객에게 말했다. 대부분 착용하고 있는 상태여서 그를 확인한 운전사도 자리에 앉았다. 버스의 엔진은 일반 승용차처럼 앞에 있는게 아니다. 앞을 막아도 쉽게 멈추지 않다. 예전같았다면 곧바로 들어올릴 수 있었지만 이젠 그렇지도 못한다. 어쩌지? 버스는 바로 눈앞이었다. 어느 정도 부상은 각오해야했다. 미도리야나 시민들이나. 운전석 반대편으로 달려간 미도리야는 있는 힘껏 충격에 대비했다. 버스가 돌격했다.
우웨엑. 언제나 개성을 한도 이상으로 사용하면 멀미로 구토하던 그녀를 떠올린다. 이런 기분이었구나 우라라카. 그녀의 노고에 다시 한번 감동하며 미도리야는 마저 올라오는 멀미를 힘차게 게워냈다. 그러고 보면 올마이트도 피를 토했지. 아직 피까진 아닌 거 보면 살 날이 있긴 있는건가 싶어서 머리가 핑핑 도는 와중에도 미도리야의 심정은 복잡했다.
버스는 무사히 옆으로 넘어갔다. 바퀴는 그 뒤로도 한참을 매섭게 달리다가 멈췄다. 버스를 넘어뜨림과 동시에 옆에서 구토하는 미도리야를 대신하여 보고 있던 시민들이 승객들을 구조했다. 미도리야는 제 등을 두드려주는 누군가에게 감사인사를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객들은 괜찮나요? 조금 다친 사람도 있는데 긁히거나 까진 정도고 대부분은 무사한 것 같소. 총각 큰일 했네. 하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미도리야 거기까지 말하고 있을 때, 사람들의 무리에서 누군가가 힘차게 뛰쳐나갔다.
무척이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밀색 머리와
"너 이새끼 죽었어!!"
"헉, 자 잠깐만!"
"문자로 뭐라고? 좋은 사람 만나라고? 만날 거거든!! 너같은 것 보다 더 멋지고 개성도 좋고 얼굴도 잘난 놈 만날 거야, 이 나쁜 놈아!! 오늘 너 나한테 죽어!!!"
"미안, 미안해!"
...거친 말투.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미도리야는 멍하게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기억력은 나름 자신이 있다. 몸은 나날이 망가지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이지 머리는 멀쩡하다. 그런 뇌를 의심하지 않는다면 분명 저 두사람의 목소리나 모습은 이미 이 세상에서 자신의 어머니보다 먼저 떠난 두 사람의 어린 시절이었다. 미도리야는 비실비실 일어나 두사람에게 다가갔다. 좀 더 가까이서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냅뒀다가는 정말 남학생이 신나게 얻어 터질 게 뻔히 보였다. 이미 신나게 얻어 맞고 있지만.
아마도 환생이라면, 저 힘의 역학관계 정도는 조금 밸런스가 맞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고 제 물건이라며 건네준 비닐봉투를 잡으며 미도리야는 조용히 생각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미도리야는 요 몇년 그것을 절감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바쿠고의 부모님이었다. 기억은 없지만. 환생이란게 있구나 하고 조금 감동했다. 딱 거기까지만 감동이었다. 졸업반인 그들은 이래저래 마찰이 많았고 미도리야를 사이에 두고 정말 엄청나게 싸웠다. 버스 사건 이후 두 사람과 미도리야가 친해졌기 때문에 (그들은 젊은 사람이 별로 없는 시골에서 미도리야를 자신들보다 조금 연상으로 착각했었다.) 싸워서 도망쳐 오는 곳은 당연히 혼자 살고 있는 그의 집이었고 미도리야는 정말 고래 등에 새우가 끼었을 때 어떻게 되는지 느꼈다.
그래도 역시 사람의 인연은 인연이라고 두 사람은 무사히 결혼을 하고 집도 잘 지었다. 미도리야 옆 집으로. 미도리야는 그 시골 마을에서도 제법 한적한 곳에서 지냈는데 두 사람의 말을 따르면 여긴 조용하니 떠들썩하게 지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너희가 조용하지 않은 건 아는구나. 미도리야의 한숨 섞인 말에 두 사람은 멋쩍은 듯 웃었다.
"도시로 가지 않을 거야?"
"언젠가는 갈 것 같지만 이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있으려고요. 좋은 환경이니까요."
"예정일이 다음 달이던가. 시간이 빠르네."
"그건 미도리야 씨 나이가..."
"거기까지."
"하하."
시간이 약이라고 처음엔 두 사람에게 말을 놓는 것 조차 어려웠던 미도리야였지만 몇 년 지나다 보니 이제는 익숙해졌다. 너무 익숙해져서 지금은 일하러 간 남편 대신 임신 말기의 그녀 곁을 지키고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미도리야는 간신히 끝낸 사과 깎기에 한숨을 돌렸다. 삐뚤빼뚤하게 깎은 사과를 그녀는 맛있게도 먹었다.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어설픈 실력을 부끄러워 했으나 그녀는 그렇게 구불어진 손으로 잘도 깎는다며 신경쓰지 않았다. 확실히 예전에도 시원시원했던 그녀였다. 다시 태어나도 여전했다.
"아기 용품은 골랐어?"
"음. 글쎄요. 뭐든 비싸니까 그녀석 월급으로 다 될까 모르겠어요."
"내가 선물로 좀 줄까?"
"어머, 당연히 줘아죠."
장난스런 대화도 익숙하다. 둘은 마주보고 웃은 뒤 부푼 배로 함께 시선을 옮겼다.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난다. 처음 아이가 생겼다는 걸 알았을 때 민망하지만 미도리야는 아버지가 될 그보다도 펑펑 울었다. 하도 우는 그에게 끌렸는지 결국 세 명이서 그 자리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선명하다. 두 사람은 부모가 된다는 감동에 울었을 테지만 미도리야는 조금 달랐다. 그들이 다시 부모가 된다는 사실에 감동을 받은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 그들과 만난 순간부터 떠오른 어떤 가능성에 기대를 하는 자신에게 울었다. 그런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 하면서도 기적이란 게 있다면 혹시나, 어쩌면 하는 마음이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터져버린 것이다.
"미도리야 씨는 딸일 거 같아요, 아들일 거 같아요?"
"글쎄. 어느 쪽이든 건강하게 태어나주면 좋을 것 같아."
진심이었다. 미도리야는 그들의 임신 소식에 두사람 만큼이나 아이의 안위에 간절했다. 다시 만날 수 있기를 하는 희망과 다시 만나지 못해도 괜찮으니 부디 이 두사람의 아이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하는 소망이 부딪쳤지만 이제는 뭐가 됐든 괜찮았다. 그저 이 사랑스러운 세상에 네가 태어나기를 바란다.
그저 네가 무사히 태어나기를 바란다.
手を振り返す。別れが出会いに、続くように。
손을 흔들었어. 이별이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消えないままで此処に居て、歩みを繋いで欲しい。
사라지지 않은 채 여기에 머물며 발걸음을 이어나가길 바랄게.
"데쿠!"
"캇짱. 어서와."
미도리야는 팔을 벌려 자신에게로 뛰어오는 카츠키를 가볍게 안아올렸다. 카츠키는 영리한 아이였고 학교에 들어갔을 초반에는 미도리야가 차로 등하교를 시켜줬으나 몇 번 버스를 타더니 이젠 혼자서도 잘 다니게 되었다. 미도리야가 아쉽다는 티를 팍팍 내자 카츠키는 마지 못하는 척 매 주 금요일에는 데리러 와도 좋다고 말했다. 그렇게 정해진 매 주 금요일의 만남은 서로에게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물론 바로 옆집이고 맞벌이를 하는 카츠키의 부모 대신 미도리야는 대부분의 시간을 카츠키와 보내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른 장소에서 반가운 이와 만나는 건 또 다른 즐거움이다.
"오늘은 어쩔래? 바로 갈래?"
"아.....집! 에 갈래!"
".....저기 캇짱, 나 괜찮은데. 제대로 어제 병원에도 다녀왔,"
"됐으니까 집에 갈래!"
아니 라고 하고 싶은 게 얼굴에 다 보이는데도 카츠키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집에 간다니까! 미도리야가 머뭇거리자 카츠키는 다시 한번 빽 하고 소리를 질렀다. 저번의 휴일이 어지간히도 충격인 것 같았다. 하긴 아직 너무 어린 아이지. 미도리야는 제가 저지른 일에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안아올린 그 상태로 자신의 차로 향했다. 걸어가는 뒤로 손 안에서 폭발하는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뒤에서 또 카츠키가 안겨간다고 반 애들이 뭐라고 한 것 같았다. 놀림 받는 걸 죽어도 싫어하는 자존심 높은 카츠키가 저렇게 놀림을 받아도 내려달라는 소리를 안하는 걸 좋아해야 할지 부끄러워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지난 금요일 어김없이 미도리야는 카츠키를 데리러 갔고 카츠키는 미도리야와 함께 외부로 놀러 나갔다. 외부라고 해도 가까운 도시였다. 시골에 사는 아이에게 도시는 놀이가 가득한 천국이었다. 오늘도 야근을 향해 달리는 두사람을 대신해 부탁받은 물건을 사고 카츠키가 가지고 싶어하던 장난감 같은 것도 사며 미도리야와 카츠키는 한동안 즐겁게 놀았다. 그 즐거움이 끝까지 가지 못한 게 문제였다. 미도리야의 감각으로는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뭘 먹을지 고민하는 카츠키를 보며 잠깐 졸았던 것 같은데 눈을 뜨니 병원이었다. 카츠키가 한참 울었는지 옆에서 빨간 얼굴로 자고 있었고 크게 다르지 않은 얼굴로 카츠키의 부모도 서 있었다.
- 어라, 나 왜...?
- 왜 라니요. 몰랐어요? 미도리야 씨, 숨을 안 쉬었다고.... 다행히 주변에서 신고를 해서 금방 회복했지만, 정말이지, 카츠키 만이 아니에요. 우리도 너무 놀라서....
카츠키와 닮은 얼굴로 울면 어찌해야 할지 모른다. 미도리야는 허둥지둥 사과했다. 달리 그것밖에 방도가 없었다.
오래 살지 못한다. 카츠키가 태어나던 날 두 사람에게서 카츠키의 대부가 되어줄 수 있겠냐는 말에 거절하면서 미도리야가 한 말이었다. 미도리야는 카츠키에게 제 모든 이름을 바쳐 지킬 것을 맹세했다. 거기서 두 사람에게 자신이 히어로 '데쿠'였음을 말했다. 역시 눈치채지 못했는지 놀라워하는 둘에게 미도리야는 어느 정도의 비밀을 제외하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했다.
괜찮아요. 그녀는 미도리야에게 그렇게 말했다. 미도리야는 눈이 동그래졌다. 뭐가? 그런 바보같은 질문에 그녀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아이가, 아니 카츠키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라도 상관 없어요. 그보다 짧아도 괜찮아요. 나는 미도리야 씨가 이 아이 옆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아이에게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데쿠, 집 다 왔는데 안내려?"
"응? 아, 미안. 딴생각을 좀 했어."
"그러니까 데쿠지."
용케 차를 몰고 집까지 왔다. 미도리야는 운전석 문을 열고 저를 갸웃 하고 보고있는 카츠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차에서 내렸다.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던지고 쇼파에 뒹굴 누워버리는 게 영락없는 아이다. 그 모습이 조금 웃었다.
"오늘은 뭐 먹을까."
"고기."
"...으음, 캇짱. 재료 말고 요리를 말해주면 안될까."
"어차피 데쿠는 요리 못하잖아."
"으응...."
사실에 가차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결국 메뉴는 미도리야나 카츠키나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는 함박 스테이크가 되었다. 미도리야가 만든 경험이 더 많음에도 카츠키의 스테이크 모양이 예쁜 건 일상이다. 큭큭거리는 카츠키의 웃음소리를 배경음 삼아 미도리야는 가스에 불을 올렸다.
졸리네. 밥도 먹고 하니 잠이 오는 건가. 미도리야는 거실에서 숙제를 잽싸게 끝내버리고 게임에 열중한 카츠키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신나게 집중해서 하고 있지만 원래 카츠키는 시골 아이답게 밖에서 뛰노는걸 더 좋아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지금 거실 티비에 온 정신을 몰두하게 된 건 온전히 제 탓이었다. 저번에 그렇게 숨을 멈춘 이후로 몸의 활동이 부쩍 힘들어졌다. 오늘은 어쩐지 가벼워서 예전처럼 카츠키를 안고 돌아왔지만 당장 그제만 해도 다리가 휘청거려 집안에서도 자주 넘어지고 난리였었다. 미도리야는 무거운 팔을 들어 카츠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왜, 데쿠?"
"그냥."
"뭐야, 지금 중요하니까 방해하지 마."
"응, 미안 캇짱."
방해하고 싶진 않아서 손을 들어올리려고 하자 그보다 빨리 작은 손이 미도리야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마치 저를 끌어안으라는 듯 배 앞으로 내리더니 그걸 발판삼아 또 게임에 집중한다. 귀여운 모양에 미도리야가 웃었지만 거기에 뭐라고 할 정신은 없는 모양이다.
이 기분을 뭐라고 설명하면 좋을까. 타임머신을 탔다고 하면 비슷하려나. 하지만 정말 진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런 마음과 기분이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나이 대의 캇짱을 알고 있다. 열심히 게임기를 두드리는 저 손을 안다. 언젠가 제 손가락 하나도 꽉 쥐지 못했던 작은 손이 크고 강한 개성을 낳아 누구도 제 발치에 닿지 못하게 만드는 고고한 존재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그렇게 자신이 없을 미래의 언젠가가 온다면 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되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네가 너로 살아가면 충분해. 곧 미도리야는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음을 생각했다. 그래, 네가 태어났을 때구나. 그 때 이름을 부탁받았다. 미도리야가 돌려줄 이름은 하나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족한 듯 웃고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아이를 사랑스럽게 끌어안았다. 카츠키. 이 세상에 어서오렴.
아름다웠다. 내가 아직까지 살아있던 이유는 바로 이걸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그 정도로 미도리야는 행복하고, 만족했다.
시간이 흐르고 아이는 성장한다. 그 순간이 오기 전까지 미도리야에게 아이는 정말로 신비롭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아니, 지금도 마찬가지야. 눈을 한번 깜빡일 때마다 모든 순간이 떠올랐다. 눈도 못뜨고 애앵 하며 울던 아이가 고갯짓을 하고 몸을 뒤집더니 웃고, 역시나 운다. 아기는 집이 떠나갈 듯 울었다. 그러던게 바로 어제 같은데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고 걷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다. 미도리야는 그 모든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았다. 이 사랑스러움을 도대체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의 생명이 하나의 세계로 피어나고 있다.
나는 미도리야 씨가 이 아이 옆에 오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 아이에게는 그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처음 캇짱이 다시 태어나던 날에 그녀가 말한게 떠오른다.
미도리야 씨 역시 카츠키와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정말 그러네요. 미도리야는 카츠키의 허리를 안았다. 간지럽다고 웃으면서도 카츠키는 팔 안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BOOM! 익숙한 소리에 화들짝 잠에서 깼다.
"캇짱?! 개성을 함부로 쓰면 안된다고...!"
"데쿠가 안일어나니까 그렇잖아!"
"나 또 잤어? 아니 그것보다 손!"
"이제 괜찮다니까!"
그러거나 말거나 미도리야는 급히 카츠키의 손을 잡았다. 손바닥은 특히 다치거나 터진 곳은 없었다. 제 기억의 손바닥 보다 아직은 말랑해도 폭파의 개성을 잘 견디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한숨을 내쉬자 그것 보라며 카츠키가 샐쭉였지만 저에게 신경써주는 것이 좋은지 손을 빼진 않았다.
세 살이 된 어느 달이었던가 손이 이상하게 간지럽고 아프다며 제 눈 앞에 내밀길래 뭔가 싶어서 잡는 순간 폭발했다. 예상밖의 일에 카츠키도 자신도 벙 쪄서 멍하게 서로만을 바라보았다. 개성의 발현은 부모가 아니면 보기 어려운 광경이긴 하지만 히어로 일을 하며 제법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기쁘고 반갑진 않았는데. 처음 본 것도 아니고 아주 예전, 이젠 자신만이 남은 과거에서 그는 어땠더라.
- 데쿠.
- 응?
- 왜 또 울었어?
- 반가워서.
아직 여린 손바닥은 폭발의 충격을 이기기 어렵다. 미도리야는 그 후 훌쩍거리면서도 카츠키의 손을 소독하고 정성스럽게 붕대를 감았다. 작은 손에 붕대는 적은 양으로 충분히 감겼다. 단풍잎처럼 작던 손은 지금도 제 손 안에 들어온다.
손이 닿는다.
"데쿠. 나 나가서 놀아도 돼?"
"응? 오늘은 집에서 논다며?"
"아까 데쿠 잘 때 애들한테 전화왔어. 뒷산에 재밌는 게 있다고 같이 가자고. 뒷산은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니까."
"그럼 괜찮아. 전화만 챙기고 5시 반까진 와야돼."
"알아."
허락이 기쁜지 단숨에 일어나 바지런히 가방을 챙긴다. 역시 아직은 밖에서 노는 게 더 기쁘겠지. 미도리야는 웃으면서 간식으로 먹을만한 게 있는지 부엌으로 향했다. 여느때와 같은 일상이었다.
데쿠. 나 왔어! 아직 자고 있어?
캇짱 왔어? 그렇게 말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직 나 자고 있구나. 미도리야는 자각했다. 사람의 의식은 청각부터 시작한다더니. 신나게 놀고 왔는지 목소리가 우렁차다. 앳된 목소리. 이 목소리를 알고 있다. 이 목소리가 점점 남자답게 변한 것도 알고 있다. 아, 정말 나는 타임머신을 탔는지도 모르겠다. 너의 미래의 모습을 알아. 캇짱. 너는 점점 키도 커지고 개성도 강해질 거야. 교복도 멋지게 입고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 될 거야. 그렇지만 이번에는 사생결단 다이빙 같은 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이제 잊었지만, 누군가가 들어서 좋을 것도 아니니까. 나였으니까 한 건가?
데쿠-. 어딨어?
데쿠. 아무 것도 못하는 등신 데쿠. 히어로 데쿠. 이즈쿠는 데쿠라고도 읽는 다의 데쿠. 네가 처음 지어준 이 이름은 정말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나중에 가서는 멸칭이 되었지만 분명 어린날의 캇짱은 이즈쿠의 변형으로 그렇게 불렀다. 그리고 지금도 너는 나를 그렇게 부른다. 왜 그렇게 부르냐고 물었더니 발음하기가 쉬웠고, 이즈쿠보단 특별해 보이지 않냐고 했다. 히어로 명이니까, 하며 그때는 얼버무렸지만 안그랬으면 또 울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린날의 너와 좀 더 대화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소원이 이렇게 실현되어 기뻤다.
뭐야, 데쿠 여기에 있었어? 역시나 자는구나.
캇짱.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네가 나를 조금 기억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던 적도 있었어. 나도 사람인지라 욕심은 어떻게 할 수 없었던 거 같아. 하지만 너는 너였고 역시 아무것도 기억해주지 않았지만 신기하지,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어. 그냥 그럴수도 있구나 싶었어. 그냥 기뻤어. 이걸 네가 이해할 수 있을까? 너의 탄생부터 개성이 발현하고 이 세상에 두 발을 딛고 살아가는 그 모든게 그냥 너무 기뻤다고 말한다면 너는 뭐라고 할까? 꽤 오래 우리는 함께였다고 생각하는데 역시 네 생각은 짐작할 수가 없다. 조금은 나쁘지 않았다고 해주면 좋을텐데.
데쿠?
응, 캇짱. 여기 있어. 그런데 아까부터 소리는 들리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아. 너무 졸려서 그런 것 같아. 조금 만 더 자고 나서 일어나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캇짱이 좋아하는 돈까스가 좋으려나. 고기만 너무 먹인다고 뭐라고 할 것 같은데. 그럼 매운카레가 좋을까....
데쿠? 일어나봐, 데쿠!
신기하지. 네 목소리를 들으면서 자는 날이 오리라곤 단 한순간도 생각한 적 없는데. 예전의 나는 네 옆에만 가도 덜덜 떨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니다. 손을 잡았고 함께 많이 웃었다. 네가 다시 살아가는 걸 봤다. 정말 나는 누구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어. 어릴적부터의 꿈을 이루고 신뢰하는 동료와 함께 여러 위기를 극복한데다 한번 잃었던 너까지 만났다. 이 이상 얼마나 더 행복한 삶이 있었을까.
데쿠, 싫어, 일어나....
괜찮아, 조금 졸린 것 뿐이야. 조금 자고 일어나면 또 같이 놀 수 있어. 밥도 먹고 함께 자고. 또 그런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기뻤어. 고마웠어. 네가 다시 나에게 와준 사실에 감사해, 캇짱.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아직 너와 하고 싶은 게 많아. 푹 자고 일어나면, 또, 평소처럼.
그러니까, 조금 더 자면, 분명.
아, 이 나날을 뭐라고 해야 할까.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There’s a boy here in town says he’ll love me forever
마을에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한 남자애가 있었어요
Who would have thought forever couldn't be severed by
영원이 짧은 삶에 의해 끝날 거란걸 누가 알았겠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어야 하냐고."
빛나는 히어로 랭킹 No.1에 고액세납자이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 휠체어나 밀고 있건만. 카츠키는 제 신세에 한숨을 푹 쉬었다. 한숨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앉아있는 그녀가 카츠키의 팔을 붙잡았다. 이녀석의 개성은 귀찮다. 카츠키는 얌전히 남은 산책시간을 곱씹으며 다시 휠체어를 밀었다.
"아니까 불렀지. 히어로는 자고로 뭐다?"
".....자원봉사, 씨발."
"욕은 빼지 그래. 카츠키 군."
히어로는 보이는 것만 충실해서는 안된다. 히어로의 기본은 자원봉사. 아주 귀에 박힐 정도로 들은 내용이다. 그걸 본인만 알면 될 것을 이렇게 제 친구들에게 다 알려놔서 귀찮게 하니 아무튼 데쿠는 죽어서도 제 옆을 뱅뱅 돌고 있다. 그게 나쁘지 않으니 또 할말은 없지만.
"어머, 잠깐만. 카츠키 군, 여긴 좀 외진 곳 아냐?"
"니가 할말도 없는데 나를 부르겠냐. 우리 정도는 띄울 수 있지? 좀 더 멀리 가자."
"병원에서 그렇게 멀어지면 위험한데."
"히어로인 이 몸이 있는데 뭔 걱정이야."
혹시나 휠체어가 떠올라 흔들릴 수도 있어 카츠키는 밀던 휠체어를 멈추고 정면으로 향했다. 안정적이게 발판을 고쳐주고 허리에 있는 안전벨트도 제대로 확인한다. 꼼꼼한 손놀림에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그의 말대로 입은 거칠어 성질이 급해도 이렇게 세심하고 꼼꼼하고 예민한 사람이었다.
"뭘 처웃냐, 우라라카."
"연상 이름을 그렇게 불러도 돼?"
"지랄하고 있네."
말싸움에 가까운 대화였지만 둘은 그 대화 끝에 서로를 마주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둘의 대화를 듣지 못한 사람들은 그 웃음소리에 사이 좋은 할머니와 손자의 대화로 생각해 훈훈한 웃음을 보내왔다. 그게 둘의 웃음에 더해진단 사실은 꿈에도 모르리라.
"신호하면 띄워라."
"알았거든."
그렇게 두 사람은 슬쩍 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숨었다.
카츠키─그러니까 '카츠키'가 '바쿠고 카츠키'가 된 날은 그의 나이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공교롭게도 그의 기일이었다. 부모와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시간이 맞지 않았고 학업에 대해서는 카츠키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여유있게 학교에 조퇴신청을 하고 빠져나왔다. 아직 어린 시절부터 그의 기일만 되면 그게 무슨 날이어도 반드시 조퇴를 하고 나왔기 때문에 아쉽게도 개근상은 없다. 그러나 자고로 인생의 완벽함을 추구하는 그에게 개근장 정도가 없다 한들 뭔 의미가 있을까. 그 외로 완벽하다. 카츠키는 당당히 학교를 나와 익숙해진 꽃집에서 그 날 가장 싱싱한 꽃을 한주먹 샀다. 고르고 조금 화려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이 꽃이 가장 깨끗하니 별 수 없었다. 주인은 역시 능숙하게 꽃다발을 만들어서 건네주었다.
"메리 골드에요."
"네?"
"꽃 이름이요.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아, 네...."
나는 별로 관심이 없지만 데쿠라면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카츠키는 꽃값을 지불하고 무덤으로 향했다.
무덤은 깨끗했지만 세월은 별 수 없다. 카츠키는 꽃다발을 옆에 두었다. 2년 전에 하얀 국화꽃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먼저 다녀간 듯 했다. 저 고지식함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노트에도 그렇게 써있었지. 카츠키는 큭, 하며 목부터 비집고 올라오는 웃음을 삼켰다. 그 후 2년간 수십의 노트는 전부 읽었다. 유에이 시절의 친구들에 대한 내용이 가장 재미 있었던건 아마도 실제로 보고 아는 사이라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2년. 길면 길었고 짧으면 짧은 2년이었다. 그 날 무덤에서 꿈을 본 이후로 카츠키에게 하루 24시간은 정말 미친듯이 부족했다. 유에이에 가려면 공부도 개성도 트레이닝도 뭐 하나 빠뜨릴 수 없었다. 이 자산이 곧 유에이로, 미래의 히어로로 이어진다. 그렇게만 살았는데도 빠듯했는데 히어로 데쿠, 몇 십년 전의 히어로에 대해서 조사를 하려니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 산넘어 산 이었다.
한 시대의 평화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활약은 짧았으며 기록도 적고 본인 자체가 그다지 노출을 하지 않았다. 이름은 특이해서 모두가 알았다고 해도 영광에 비해 인지도가 빠르게 낮아진 건 이 때문인 듯 했다. 그 와중에서 히어로 데쿠와 그 이전, 자신이 정말 알지 못하는 '미도리야 이즈쿠'에 대해서 알아가려니 쉬울 리가 있나. 오죽 했으면 중간에 차라리 유에이로 가서 그 기록을 몰래 빼오는게 빠르겠다 생각했을 정도였다. 물론 범죄니까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하게 알아낸 것이 있다. 카츠키는 주머니 속에서 복사한 기사 몇개의 기사를 꺼냈다. 워낙 날뛰고 사진도 선명한 게 드문데다가 히어로 기간도 고작 1년하고 몇 달. 사인은 순직. 간신히 여기까지 닿았다고 생각했다. 카츠키의 손에는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뒷 모습이었지만 양 손에 수류탄을 형상화 한 거대한 폭탄 같은 것을 매달고 거대한 빌런을 향해 겁없이 걸아나가는 히어로.
바쿠고 카츠키(爆豪勝己).
"...카츠키(勝己), 라니.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이라고."
성은 다르다. 아니 당연하지, 부모님의 성씨가 다르니까. 그러나 이름은 같다. 뭐 이름은 같을 수 있다고 친다. 그러나 활약한 내용에서 보이는 개성, 간신히 찾은 몇 장의 사진에서 그는 자신과 상당히 닮아 있었다. 데쿠와 같은 나이에다가 같은 유에이에 다녔으니 친구였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주 친한. 그렇지 않고서야 같은 이름을 자신에게 줄리가 없다. 부모의 말에 따르면 그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했을 때 데쿠는 조금의 고민도 하지 않고 지금 나의 이름을 말했다고 한다.
그건 내 이름이었을까, 이 남자의 이름이었을까.
-캇짱.
그 말도 나를 부르는 건 아니었던걸까. 카츠키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저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가끔 어디를 보는 지 모를 때가 있었지만 그래도 제가 부르면 곧바로 웃으며 양 팔로 안아주던 사람이었다. 제 평생 그랬던 사람이다. 말하지 않은 것이 있을 수는 있어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 누구보다도 안다. 어떻게 단언할 수 있냐고 말하면 대답할 말은 없다. 남들이 보기엔 너무 어린 시절에 같이 있던 사람일테니까. 카츠키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동시에 어딘가 아니라고 말하는 자신도 있다.
뭔가 있다. 기억이 나지 않는 그런 종류의 것이 있다. 그런데 도무지 알 수가 없다. 히어로 데쿠, 미도리야 이즈쿠에 대해서 알아갈 수록 카츠키는 혼란스러웠다. 그에 대해 알아가면서 자신에 대해서 혼란스러워졌다. 데쿠에 대해서도 점점 모르게 되어갔다. 그래도 카츠키는 그를 믿었다. 제 부모보다 자신을 사랑한다고 많이 이야기 해줬던 사람. 많이 안아주고 웃고 울고 기억엔 없지만 태어난 그 순간 부모 다음으로 나를 안았던 그 팔을 믿는다.
"...내년 부터는 잘 못 올테니까, 조만간 또 올게."
유에이는 이 시골에서 멀다. 당연히 기숙사를 들어가면 잘 나오지도 못할 거고 지금처럼 쉽게 살 수도 없을 것이다. 전국에서 우수한 사람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곳에서 방심 할 시간이 있을리가 없다. 기일에는 올 생각이지만 그것도 제 마음대로 안될 지도 모르니 남은 시간 동안 좀 더 자주 찾아올 생각이었다.
"잘 자, 데쿠."
조금 어린 말투에 잠깐 부끄러웠지만 곧 카츠키는 웃어넘기고 약간 구겨진 기사들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어린 날에 함께 했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이 무덤 앞에 서있으면 어느새 예전 처럼 말을 하곤 했다. 데쿠에겐 이게 더 익숙하겠지. 그럼 딱히 부끄러울 것도 없었다. 하늘을 보니 어느새 석양이 기울고 있었다. 뛰어가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아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버스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그러려고 했다. 카츠키는 발걸음을 멈췄다. 집이 길게 늘어선 골목과 비슷한 길이었다. 그의 무덤을 오가면서 몇번이고 오갔던 길이 그 날따라 달랐다. 석양이 길고 길게 기울어진다. 본 적이 있어.
이런 날에 누군가에게 말한 적이 있다.
- 난, 네 놈 도움 따윈 바란 적 없어...!
아니, 화를 냈던가.
- 도움 받은 적도 없고! 안그러냐?! 나 혼자서 해냈다고!!
혼자서 도대체 뭘 했다는 거야.
아득해지는 숨통을 트이게 한 건 던져진 가방 덕분이었는데.
-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어릴 때부터 쭉! 그런 식으로!! 날 깔본 거냐고, 이 새끼야?!!
아냐, 멍청아. 그게 아니야. 그 녀석은 그냥
- 괜찮아? 일어설 수 있어?
머리 부딪쳤으면 큰일인데!
...그냥 나를 계속 걱정했을 뿐이야.
그 순간 무언가 부서져내리는 소리가 났다. 너머에는 익숙한 사람이 서 있다. 그는 한심한듯 웃었다.
- 등신 같으니.
바쿠고 카츠키, 바로 자신이었다.
"그래서 왜 불렀는데, 우라라카. 바쁜 이 몸에게, 무려 No.1에 빛나는 이 몸을! 불러서! 휠체어나! 밀라고! 부른건 아니겠지!"
"물론 아니긴 한데....여전하구나, 정말."
"흥."
흩날리던 부드러운 갈색은 어디가고 백발이 송송한 할머니가 옆에 있다. 그것도 이미 익숙하다. 카츠키는 둥둥 띄워 가져온 간식 바구니에서 태연하게 과일을 까먹는 우라라카를 바라보았다. 웃는 얼굴이나 동그란건 여전했다.
기억이 전부 돌아온 후 카츠키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옛 학우에게 연락을 하는 일이었다. 그 때는 정말 스스로 생각해도 엉망진창이었다. 전생이나 지금이나 좋은 머리에 감사해야 할지 원망해야 할지 그는 기억하는 번호로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업무를 하는 사람은 번호를 잘 바꾸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죽은 이후로 도대체 몇 십년이 지났건만 무색할 정도로 통화는 금방 연결되었다.
- 여보세요. 키리시마 입니다. 어? 근데 지금 보니까 모르는 번호....
- ...미친 새끼야, 그건 받기 전에 보라고.
- 어? 너 누구? 카, 아니, 어라?
- 내 목소리도 그대로 일 거 아냐, 이 머리 병신 놈아!
- 바쿠고? 진짜로? 기억 났어?! 드디어?!
와당탕 하는 소리가 건너편에서 들렸다. 놀라서 뭔가 엎질렀던가 넘어졌던가. 하지만 카츠키에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드디어 라고 했다. 드디어 라니. 지금까지 기다렸다는 말이다. 자신이 태어난지 10년은 이미 넘었다. 내년에는 유에이에 갈거다. 자신이 다시 태어나고 나서까지의 시간만 해도 그정도다. 카츠키는 자신의 부모를 떠올렸다. 부모 역시 제 기억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름은 달라졌지만 그들은 같은 사람이었고 카츠키의 부모였다. 나이는 그 때보다는 조금 어리던가. 그렇다고 해도 부모가 다시 태어나고 자신이 태어나 여기까지 오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 시간을 기다렸다고 지금 말하고 있다.
- 알았냐?
- 어? 뭘?
- 뭐긴 뭐야 이 새끼야. 나인 줄 알았냐고! 그 전부터! 내가 정신 나가 있을 때도!!
- 아, 그, 응. 미도리야가 알려 줬으니까. 우리 반 애들은 다 알고 있었어...너 진짜 바쿠고구나. 카츠키지만.
- 둘 다 내 이름이야, 씨발....
이름을 지어준 게 아니다. 돌려준 거다. 등신 같은 세 명이 아무 것도 기억을 못하니까, 그 과거를 아는 사람이 데쿠 하나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돌려준 거다. 나의 이름. 나의 존재. 내 삶.
- ....어서와, 바쿠고. 누구보다도 미도리야가 이 말을 하고 싶었을텐데.
알아. 이미 많이 들었어. 그 등신같이 착해 빠진 새끼가 몇 번이나, 몇 백번이나 말해줬어. 언제나 내가 오면, 그 멍청이 같은 양 팔을 벌려서 작은 나를 무슨 깨질 보물처럼 안고는 얼마나 웃었는데. 웃으면서 얼마나 말했는지 너는 몰라. 어서 와 캇짱. 이러면서, 그 빌어먹을 호칭이랑 같이, 얼마나 나를.
그 이상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목에서 더 이상 말도 나오지 않았다. 카츠키는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울었다.
"그 때의 카츠키 군은 좀 귀여웠는데."
"조용히 해라."
"안그래도 얼마 안있으면 조용해질 거야."
"......."
시간은 흐른다. 카츠키는 성장했다. 유에이에 진학해서 자신이 원하던 대로, 정확하게는 전생의 자신과 비슷한 길을 밟아가 프로가 되었다. 프로로 활약한 경력이 1년 하고도 몇 개월에 지나지 않은 짧았던 전생의 기간은 이미 뛰어 넘은지 오래였다. 염원하던 대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 호언장담한 고액세납자 명단에도 언제나 상위권이다. 인생은 순풍을 끼고 달리는 배와 같이 움직였다.
키리시마의 연락을 통해 모두에게 기억이 되돌아온 것이 전해졌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야 모두 모여 때 아닌 동창회를 갖게 되었다. 이렇게 모인 건 미도리야의 장례식 이후 처음이었다. 카츠키를 발견하고 제일 먼저 달려와 그를 안은 것은 키리시마나 카미나리 같이 저와 친했던 자들이 아니라 장례식 때, 울음을 삼켜가며 필사적으로 그의 마음을 저에게 전하고 싶었던 우라라카였다. 다들 나이에 맞지 않게 울음바다가 되었고 결국 카츠키 역시 마지막엔 조금 울었다. 예전이라면 생각 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우라라카의 품 안에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우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가르쳐 준 사람이 있으니까. 그렇게 단 한사람이 빠진 동창회가 이루어졌다.
그렇게 카츠키는 성장했고 친구들은 토대가 되어갔다. 다양했다. 순직, 병사, 미도리야와 같은 노쇠 등. 함께 할 때 카츠키는 그들의 연륜과 나이에 놀라워했다면 그들은 카츠키의 귀환에 놀라워했다. 그런 변화를 함께 겪기를 또 십수년, 아직 우라라카를 말고도 몇 명이 살아 있지만 카츠키 보다 오래 남은 건 아니다. 그녀가 당장 내일 죽으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오래 가지 않음을 안다. 오랜만의 휴일에 갑작스러운 호출에도 선뜻 나온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음, 내가 죽기 전에 데쿠이랑 한 이야기 해줄까 생각해서."
"데쿠랑?"
"응. 기억하지? 아마 우리 중에서 제일 시골에 자주 놀러간 게 나였을 걸?"
"하긴."
확실히 어린 날의 기억에서 가장 많은 부분이 데쿠와 부모님을 제외하면 우라라카가 맞았다. 레스큐 쪽의 히어로였기에 전투쪽 히어로보다는 늦은 은퇴였지만 그래도 바쁜 활약을 했기 때문에 자주 왔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대충 두 계절에서 일년에 한 번은 왔던 것 같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는 그 볼록한 손에 맞닿아 하늘에 붕붕 떠다니는 게 신이 났었지.
"나 말이야. 데쿠 군에게 물어봤어. 네가 계속 기억을 하지 못하면 어쩔 거냐고."
"......"
"기억 해? 마지막으로 죽을 때, 데쿠 군이 있었다고 했는데."
기억을 못할리가. 카츠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농락하고 제 가족까지 건든 그 놈을 어떻게든 죽여야겠다 눈이 뒤집혔고 결과는 동귀어진. 지금도 후회는 없다. 다만 아무런 말도 못하고 죽은 것이 쭉 마음에 남았다.
혼자 죽는다고 생각했다. 외롭거나 그렇진 않았지만 그저 허무했다. 그렇게나 힘들고, 필사적으로 살아서 기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끝이라 생각하니 허무하고 공허했다. 뭣 때문에 제 자존심까지 밟아서 여기까지 왔는가. 그게 전부 죽음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 서러웠다. 그럴 때 왔다. 지긋지긋 하다고 생각했고, 싫다고도 생각했지만 결국 끝까지 부정하지도 밀어내지도 못했던 존재.
캇짱. 내 말 들려?
이미 우는 목소리였다. 성인이 되어도 우는 건 똑같은 거냐. 잘은 모르지만 첫 기억에도 이 녀석이더니 죽을 때도 이 녀석이다. 카츠키는 무어라 말하려고 했지만 목은 이미 뭔가로 꽉 막혔고 손발은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으니 당연했다. 청각 만이 살아있나. 시야는 너무 흐렸다.
캇짱.
어린 날의 호칭으로 다 큰 어른을 부르지 마라고 했던 적이 없단 걸 죽는 순간에야 카츠키는 깨달았다. 초등학생만 가도 잘 쓰지 않건만 왜 저는 지금까지 저걸 허락했을까. 카츠키는 조금 고민하다 포기했다. 의식이 빠르게 꺼지고 있었다. 고민 할 시간조차 이젠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생각했다. 저렇게 부르는 게 당연했으니까. 왜 당연하냐고? 그거야 좋았으니까. 뭐가? 안돼, 생각 하지 마. 이젠 시간이 없다니까.
고생했어.
그 말에는 조금 웃고 싶었다. 고생? 했지. 엄청 했지. 네가 쓸데없는 노트나 만드는 동안 나는 마을을 돌았고 개성을 단련했다. 너는 그때 개성이 없었지. 싸우면서 자존심도 많이 부러졌다. 천재라고들 많이 말했지만 물론 천재였지만, 노력했어. 여기까지 오려고 정말 힘들게 살았어. 그걸 너는 처음부터 봤구나. 그랬네. 너만은 처음부터 나를 보고 있었구나. 이제야 그걸 좀 알았어, 데쿠. 죽기 직전의 힘인지 조금 시야가 트였다. 얼굴이 보인다. 익숙해서 별 화도 안나는 얼굴이.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혼자가 아니다. 삶을 알아준 사람이 있다. 격려를 해준다. 마지막을 존중해준다. 역시, 쓸데없는 놈. 하지만 덕분에 알았어. 네 덕분에 내 삶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는 거. 아, 근데 정말로 시간이...
잘 자.
없어.
"데쿠 군이 말이야. 많이 후회했어. 네가 죽을 때 무언가 더 말을 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고."
"뭔 말은 무슨, 뒤지는 놈한테. 충분했어."
"뭐라고 했는지 물어봐도 돼?"
카츠키는 잠시 머뭇거렸다.
"...잘 자라고."
"데쿠 군 답네."
우라라카는 당연한 듯 웃었다.
"그래서,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인데?"
"응, 데쿠 군이 언젠가 기억이 되돌아오고 네가 '카츠키'에서 '바쿠고 카츠키'가 된다면 그 때 일을 물어보고 싶다고 했어. 그걸로 괜찮았냐고. 혼자밖에 없어서 미안했다고."
"하여튼, 등신."
등신은 나지. 카츠키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기억을 되찾는 순간 '바쿠고 카츠키'가 그렇게 웃으며 악담을 했던 것이다. 그 무엇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하다못해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생이 끝났다. 그리고 다시 얻은 삶에서는 등신처럼 전부 잊어버려서 결국 아무것도 전하지 못하고 다 끝나버리고 말았다. 미도리야는 언제나 웃었다. 개성을 넘겨주고 잃어가며 몸도 빠르게 부식되어 가는데도 언제나 웃었고 어린 자신을 많이 안아주었다.
정말 우스웠다. 다시 태어나고 나서야 전생의 자신에게 미도리야가 했던 행동이 이해가 갔다. 뛰어난 개성에 천재적인 제 능력만 믿고 마구잡이로 나가던 겁대가리 없는 아이를 걱정한 건 미도리야 뿐이었다. 아이로 다시 돌아간 후에야 그 아이라는게 얼마나 무력하고 무른지 알았다. 미도리야는 자신도 아이였음에도 그 무른 아이를 걱정했다. 그냥 그랬다. 너무나 단순한 일이었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왜 그때는 그걸 무시한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태어난 후에는 너무나 당연하게 알게 된 이 사실을 왜 몰랐을까.
"아, 이래서 나이를 먹으면 안 돼. 하려던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할멈 다됐네."
"그거야 그렇지."
카츠키의 농담에 우라라카는 당연한 듯 툭 웃었다. 그리고 원래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하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이 나지 않으면 어쩔 거냐고 물었거든."
"그래."
"데쿠 군은 상관 없다고 했어."
"뭐?"
내가 죽든말든 상관없다고? 빠르게 스치는 생각이 이런 건 자신의 호전적인 성격 탓이다. 어쩔 수 없다. 카츠키는 울컥 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랬으면 그렇게나 남은 평생을 아무것도 모르는 애새끼였던 자신에게 바쳤을 리가 없다. 미도리야는 끝까지 제 곁을 지키다 죽었다. 아무리 평화의 상징이자 박애주의자인 미도리야라고 해도 아무래도 상관 없었으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카츠키의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우라라카는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의미가 아니야. 음, 우리는 말이지. 네가 태어난 걸 바로 알았어. 데쿠 군이 네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에게 알려줬거든. 시골에 왔는데 캇짱의 부모님을 만났어! 하면서. 처음엔 무슨 소린지 몰랐지만.... 그래서 두 분이 결혼하고, 네가 태어났을 때 우리는 기대했어. 어쩔 수 없잖아? 다시 만난 너는 개성 조차도 완벽하게 '바쿠고 카츠키' 였으니까.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랑 데쿠 군을 잘 따르는 것 빼고."
"......."
"그렇지만 기억하지 못했지. 지금은 기억했지만, 결국 데쿠 군이 살아있을 때는 못했잖아. 그래서 물어봤어. 상관 없다는 게 뭐냐고. 기억을 못해도 괜찮냐고. 그렇게 떠나버린 너를, 지금도 지키고 있는 데쿠 군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해도 괜찮냐고. 괜찮다고 했어. 그렇게 말한 데쿠 군의 얼굴을 네게 보여주고 싶어."
알 것 같아. 쭉 봤으니까.
"네가 '카츠키 군' 이여도 '바쿠고 카츠키'여도 상관 없다고. 둘 다여도 상관 없다고 했어. 그저 너라서, 네가 이 세상에 있는 그걸로도 충분하다고. 네가 그 무엇이라도 그 둘 다여도 그저 사랑할 뿐이라고. 사랑스럽다고 그랬어."
알아. 많이 들었어. 많이 알게 해줬어.
"데쿠 군이 그러더라."
우라라카. 생명은 이렇게나 위대해. 굉장해. 사랑스러워. 우리는 이 사랑스러운 생명을 지키기 위해 싸운 거였어. 히어로는 정말 굉장해. 우리는 그걸 한 거야. 나는 그게 너무나 자랑스럽고, 행복해. 이 이상 행복한 삶은 없을 거야. 그걸로 나는 충분해.
"...미래를 잘 부탁해. 히어로 '바쿠고'."
활짝 웃는 그 모습은 그가 알고 있는 젊은 날의 우라라카의 웃음과 똑같았다.
유명해지고 입장도 견고해지니 하루 한번 제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건 이미 일상이다. 카츠키는 자신의 활약을 담은 인터뷰 내용을 대충 넘기며 밑에 박힌 자막을 보았다.
히어로 <바쿠고>.
카츠키의 히어로 명이였다. 그 전의 이름도 나쁘진 않았지만 고민 끝에 이 이름으로 정했다. 인터뷰에서 과거의 히어로 이름이랑 같은데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묻길래 같은 개성이니 짧게 산 그 대에 히어로로서 이 세상을 지키겠다는 참 허울 좋은 대답을 했다. 내가 했지만 말도 잘한다. 그 후 그 인터뷰를 본 키리시마와 우라라카가 전화를 해서 웃길래 대답도 않고 끊었다. 나이 먹고 은퇴했으면 뉴스는 신경 끄고 산이나 구경해라. 그렇게 문자를 보내니 또 잔뜩 웃는 대답만 돌아와서 내던졌다. 모르긴 몰라도 이 두 새끼는 오래 살 것이다.
기억이 되돌아왔다고 해도 스스로가 그 전 사람이 되는 건 아니다. 카츠키는 그걸 기억이 되돌아오고 나서 느꼈다. 자신은 분명 바쿠고 카츠키였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고 지금의 자신은 아니다. 바쿠고 카츠키와는 같은 모습과 같은 개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른 과거와 다른 삶을 살았다. 히어로가 되었지만 그 과정은 비슷하고도 달랐다.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사람과 함께 살았지만 그 형상도 달랐다. 데쿠 라고 부르는 건 같았어도 의미는 달랐다. 비슷할 수록 다른 점이 보였다. 그런 나를 데쿠는 어떻게 봤을까. 어떤 의미로 저를 부르고 그 품 안에 안아주었을까. 둘 다 어떤 의미로든 사랑을 받았다는 건 알았지만 카츠키는 둘 사이에서 혼란했다. 그런 그에게 우라라카는 이제 없는 그를 대신하여 말해주었다.
캇짱. 그 우습지도 않은 호칭은 바쿠고 카츠키였고, 저였다. 둘 다였다. 그냥 눈 앞에 있는 자신이었다. 그런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확인을 받은 후에야 카츠키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저 답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미도리야 이즈쿠는 잘 이해할 수 없고 끝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으니 별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자신도 마찬가지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도 저를 키우면서 어느 정도는 알았겠지만, 그래도 직접 말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웠다. 죽을 때도 하지 못했는데 결국 이것도 저것도 다 늦었다.
대화를 더 하면 좋았을걸 하고 생각한다. 과거의 내가 너에게 화를 낸 건 우리가 도무지 소통이 되지 않아서였으리라. 너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 순간부터 화가 났던 것 같다. 우리가 아직 친했던 시절엔 우린 많이 이야기를 해서 그랬던 걸까. 거기까진 솔직히 기억이 안난다. 정말로 이제 와서는 어쩔 수 없지만.
『자, 그럼 마지막으로 히어로 '바쿠고'에게! 히어로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이 때 여러 생각을 했었지. 결국 적당히 대답하고 끊었지만. 카츠키는 텔레비전 전원을 껐다.
히어로. 첫 계기는 데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마이트가 멋있었으니까. 나도 저런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니까. 아이의 계기에 무슨 거창함이 있겠는가, 그저 제 감정에 솔직하고 단순하지. 다만 자신에겐 그걸 이룰 만한 재능과 개성과 능력이 있었고 데쿠는 없었다. 없었다고 생각했다. 카츠키에게 히어로의 전제조건은 하나였다. 강한 개성. 개성이 당연한 시대에서 그건 당연하다 못해 말이 필요 없는 전제조건이었다. 그것조차 없는 데쿠. 그런 네가 뭐가 될 수 있는가. 현실을 보고 너는 네 주제에 맞춰서 살아라. 그럼 너 정도는 내가 지켜줄 테니까.
그런 철없는 어린아이의 생각이 뒤집힌 그 날. 작은 손을 뻗어 내밀어 준 그 날 뒤집어졌다. 바쿠고 카츠키는 철 없는 아이었지만 머리는 좋았다. 그래서 그 순간 이해할 수 있었다. 내밀어진 손. 히어로의 전제 조건. 올마이트를 동경했다. 바쿠고도 미도리야도 함께 좋아했다. 그 올마이트는 지지 않는 히어로였지만 동시에 많은 사람을 구하는 히어로였다. 강함과 자애.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진 완벽한 영웅. 바쿠고는 이기는 히어로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고도 싶었다. 언젠가 강해지면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왜 니가 그 중 하나를 가지고 있는 거야?
나는 아직인데.
그것이 바쿠고 카츠키만이 알고 있는 뒤틀림의 시작. 어디가서 말하기도 부끄러운 과거다. 끝난 이야기지만. 카츠키는 책상의 액자를 바라보았다. 어린 날의 자신과 성인인 데쿠. 예전 제 방에는 이런 건 하나도 없었다. 전부 데쿠가 가르쳐 준 것이다. 카츠키는 웃었다.
근본은 크게 바뀌지 않는지 카츠키는 바쿠고 카츠키에 대한 기억을 되찾아서 그의 과오를 깨달았음에도 여전히 이기는 히어로가 되고 싶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앞을 가로 막는 저 빌런 새끼들을 쳐부수고 내가 최고다 라는 걸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다. 어쨌든 바쿠고 카츠키이기도 하니까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야 말로 해내겠다는 의지는 전보다도 강하다.
하지만 동시에 지켜야한다는 마음도 강했다. 그 전의 바쿠고 카츠키는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으로는 공감할 수 없었던 감각이었다. 사람을 지키고 생명을 지키고 정의를 지킨다. 그게 히어로의 일이기에 했다는 편이 더 옳다.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인정을 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당연히 지켜야 하는 윤리법칙. 그걸 따랐다고 보는게 맞다.
지금은? 비슷하지만 그보다 좀 더 넓었다. 데쿠가 말했다. 생명은 굉장하다고. 맞다. 그 말이 맞았다. 생명은 굉장했다. 그걸 다시 태어나고나서야 알았다. 죽기 직전에 깨달았던 하나의 삶. 그 삶을 함께 공유한 인연. 그 인연이 있어서 자신은 죽어서도 이 세상에 남았고 다시 태어나서 소중하게 잡고 자라날 수 있었다.
생명은 사랑스럽다. 하나의 삶와 삶이 이어진 인연이 이렇게 소중하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이제라도 그 인연을 지키고 싶다. 그 귀함을 지키고 싶다. 내가 소중하듯, 너희들에게도 소중했을 테니까.
"하여튼 데쿠 새끼, 사람 귀찮게 하기는."
자신은 분명 바쿠고 카츠키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그 전의 삶은 이미 끝났고 그도 이미 이 세상을 떠나서 사과도 감사도 할 수 없다. 그래서 카츠키는 앞으로도 살아가기로 했다. 제 생각대로 마음껏, 필사적으로, 주어진 두 번째 인생에 충실하기로 했다. 느낀 점이 많지만, 그보다도 그걸 누구보다 바라는 게 이 사진 속 남자일 테니까.
"잘 봐둬. 언젠가 이 몸이 너를 뛰어넘어 가득 유명세를 떨칠 테니까."
환생도 있으면 저 세상도 있겠지. 뭐 언젠가는 만날 날이 올 것이다. 삶에서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이정도의 인연과 그의 스토킹 실력이면 분명 어느 날엔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 나는 너보다 대단했다고, 어린 날처럼 굉장하다며 박수 칠 모습을 만들어 낸다. 당연한 일이 되도록 한다. 그러면 그 때 너에게 많이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을 위해 너를 마구잡이로 짓밟아서 미안하다고. 그럼에도 언제나 손을 뻗어주고 가득 안아줘서 고맙다고. 네 덕분에 좋은 삶을 살았다고.
사랑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그 때까지
"잘 자고 있으라고."
나의 히어로.
"데쿠."
The sharp knife of a short life
날카로운 칼처럼 짧은 삶이었지만
Oh well, I've had just enough time
나는 충분한 시간을 보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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