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이 잡혔다. 휘두르려고 하니까 뒤에서 붙잡았다. 버둥거릴 틈도 없이 등 뒤가 빠르게 뜨거워져서 폭발하는구나 싶었다.
어라, 나 죽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 * *
평범한 야외 훈련이어야 했다. 히어로의 대부분은 도심에서 활동하기에 도심훈련이 중심이지만 유에이는 모든 곳에서 완벽하게 자신의 컨디션과 개성을 발휘하는 히어로를 지향한다. 그에 따라 A반 역시 이곳저곳 장소를 바꿔가며 훈련하고 있었다. 유에이 내에도 이미 완벽한 세트가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세트다. 긴장감과 각오가 다르다.
그렇지만 긴장감이 다르다고 진짜 빌런을 맞이하란 건 아니다. 모두 매캐한 연기 사이로 기침을 뱉어내며 폭발의 중심을 향해 필사적으로 눈을 떴다. 갑작스러운 빌런의 난입. 미디어에서 본 몇명의 프로 히어로 역시 폭발 직전에 봤으니 아마도 그 빌런을 쫓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들은 학생들 사이로 난입하여 뛰었고 학생들은 아이자와의 통솔 아래 자신들의 개성을 사용해 그들을 붙잡았다. 미도리야 역시 그 중 하나였다. 예상과 달랐던 건 그가 너무나도 쉽고 빠르게 자신의 몸을 포기하면서 폭발을 일으켰을 뿐이었다.
"모두 눈을 감으세요! 이 연기를 날려버리겠어요!"
폭발의 여파로 일어난 흙먼지가 시야를 가린다면 폭발에 직접적으로 터져나온 연기는 호흡을 따갑게 만들었다. 바람조차 제대로 불지 않는 날씨에 좀처럼 연기가 가라앉지 않아 모두가 혼란을 겪던 차 들린 야오요로즈의 목소리였다. 어느새 만든 거대한 선풍기가 어떻게든 찾아온 카미나리의 전력을 받아 힘차게 돌았다. 간간히 악, 하는 비명소리가 터져나갔지만 바람도 없는 날씨에 이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었다. 그녀의 판단대로 연기는 훌륭하게 걷혔고 폭발의 여파로 갈라진 땅 위에 미도리야는 서 있었다.
정확하게는 미도리야 같은 남자가 있었다.
"...데쿠 군?"
"미도리야...?"
평소 훈련시에 입는 녹색의 히어로 슈트가 아닌, 검은 정장과 와이셔츠, 가죽장갑을 낀 청년이 그곳에 있었다. 온통 검은색 투성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제대로 맨 넥타이만은 하얬다. 키도 훌쩍 컸으며 정장 아래에도 단련된 몸이 보였다. 아직 소년이 어울리는 그들과 달리 서있는 남자는 완전한 청년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자를 '미도리야'라고 부른 것은 어쨌든 얼굴과 특징이 무척이나 미도리야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짙은 녹색의 머리와 얼굴에 약간 남아있는 주근깨, 걷어올린 팔에 보이는 구부러진 상흔들. 특징은 그들이 아는 미도리야였다.
"...뭐야, 여긴."
목소리도 그들이 아는 것에 비해 조금 낮았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미도리야의 목소리였다.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 역시 현재의 상황에 당황한 듯 했다.
"너는 누구냐." "그러는 당신들은 누구야."
적인지 아닌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라고 해도 그들이 아는 미도리야보다 남자의 말투는 거칠었다. 아이자와 또한 같은 생각이었는지 고글을 벗지 않고 있었다. 잠깐동안 무언의 대치가 이루어졌다. 상황파악이 안되는건 서로가 같았다. 그렇게 만들어진 대치가 깨진건 인상을 쓴 상태로 주변을 돌아보던 남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고정됐을 때였다. 남자의 인상이 구겨졌다.
"바쿠고?"
익숙하지만 그 목소리로는 무척이나 낯선 호칭에 반사적으로 바쿠고의 인상 역시 남자 못지 않게 구겨졌다. 뭔 흉내냐, 이 너드새끼야, 라는 평소의 말은 목 안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진 못했다. 바쿠고가 그렇게 말하려던 찰나, 남자가 웃었다. 즐거워 보이기도 하면서도 끓어오르는 뭔가의 감정에 완벽히 빠진 듯한, 광기어린 표정이었다. 이이다와 토도로키는 동시에 몸을 움츠렸다. 아주 예전 그 도시에서 만났던 히어로 살인마의 얼굴이 왜 미도리야를 닮은 남자를 보면서 떠올랐는가.
아이자와의 구속도구가 소리없이 남자에게로 뻗어갔다. 혼란스럽던 공기가 바쿠고의 존재를 깨달음과 동시에 적의라는 이름으로 날카롭게 변한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남자도 같았다. 행동을 봉쇄하기 위해 사방에서 뻗어진 끈이 단번에 남자의 손에 잡혔다. 구속도구가 잡힌 건 처음이 아니었으나 뻗어나간 '모든' 끈이 잡힌 것은 그의 경험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 찰나의 작은 동요를 남자는 놓치지 않았다. 아이자와가 재정비할 틈도 없이 남자는 있는 힘껏 잡고있던 구속도구를 끌어당김과 동시에 그의 앞으로 달려나갔다. 아마도 달렸을 것이다. 눈 하나 깜빡이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남자는 아이자와의 앞에 있었다.
"움직이지 마, 병아리들. 이 인간의 목이 부러질 거야."
이 인간이란 누구인가. 남자는 아이자와의 목을 잡고 있었지만, 옆에 있던 아스이의 머리도 잡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아이자와 역시 쉽사리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개성도 통하지 않으면서 눈으로 다 따라갈 수 없는 속도와 힘을 가진 적이다. 아직 다 깨어나지 않는 아이들에게 이 남자는 격이 다르다. 허무하게 죽게 할 순 없었다. 남자는 미도리야와 닮은 얼굴과 닮은 목소리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있잖아, 잘 모르겠지만 너희 히어로?"
부스스 흩어지는 머리나 눈꼬리를 작게 접어 웃는 얼굴이나 아마도 자신들이 아는 미도리야가 졸업을 하고 성장하면 저런 모습으로 컸으리라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이건만, 그런 모습으로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의 스승을 짓밟고 학우를 내던졌다. 내던져진 아스이를 우라라카가 급히 안았다. 아이자와가 바닥으로 처박히자 몇 명의 아이들이 남자에게로 향했지만 아이자와는 손을 내저었다.
"현명한 선생이네. 하하. 괜찮아. 나는 너희가 히어로든, 빌런이든 사실 별 상관이 없거든."
남자의 시선은 단 한곳에 고정됐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가 유일하게 불렀던 이름. 모두의 시선이 그의 손가락 끝의 사람에게 향했다. 아연해하는 바쿠고를 보며 남자는 즐거운 듯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