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도리야는 어느날 갑자기 자취를 감췄다. 그 전날에도 히어로활동을 하고 활동영역이 겹쳤던 학교 동기들과도 대화를 나눈 후 집에 돌아온 것까지 확인이 됐는데, 그 다음날 그의 어머니가 하나뿐인 아들의 방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그곳에 그는 없었다. 옷도 휴대폰도 그 무엇도 가져가지 않고 언제나 입던 녹색의 히어로 슈트 단 한벌만을 들고 미도리야 이즈쿠는 그 날 그렇게 모습을 감췄다. 경찰이나 히어로나 그녀에게 무언가 더 사라진것이 없으며 단서가 될법한 것이 있냐 물어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아들은 물건이 많았다. 본인의 소지품조차 잊어버리는 게 현실인데 사랑하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어찌 그 아들의 모든 물건을 기억하겠는가. 경찰 역시 특별히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다.
현실은 그렇게 미도리야 이즈쿠가 사라지건 말건 흘렀다. 정말 바야흐로 데쿠다. 친한 친구-일단은 소꿉친구-의 실종에 바쿠고 카츠키는 그렇게만 말했을 뿐이다. 동기인 이이다가 한마디 했지만 그걸 들었다면 1학년 초창기 때부터 말을 들었으리라. 미도리야가 사라지고 나서 몇명의 히어로와 유명한 빌런이 그 사이를 틈타 사라졌지만 사회는 여전히 돌아갔으며 빌런은 끝없이 나오고 히어로들은 오늘도 싸운다.
그런 오늘이었다. 원래 그다지 뭉쳐 싸우지 않던 빌런들이 드물게도 대규모의 무리로써 도심을 덮쳤다. 하나 하나는 그리 강한 빌런들은 아니었으나 인원으로 밀어버리는 통에 여간 골치였다. 도심은 복잡하다. 한번에 쓸어버릴 수 있는 강한 개성이라도 도심과 함께 일반인도 날려버리면 본말전도다. 그렇기에 히어로들은 좁은 도심의 거리를 누비며 하나하나 때려잡으며 빌런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래도 도심은 싸움으로 부서지고 전투형 히어로가 지난 자리에는 재난수습을 위한 또다른 영웅들이 나온다. 우라라카 역시 재난 및 구조활동 중심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부상입은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며 혹시나 2차 사고에 대비하여 무너진 어느 낡은 건물의 큰 잔해들을 공중에 띄워 길을 만들던 때였다.
그런 그녀의 비명소리가 났다.
우라라카의 비명소리는 공기를 타고 전파를 타서 주변 그녀의 동기들의 통신기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야오요로즈가 동기들을 발견할 때마다 만들어서 던져준 작은 통신기는 이렇게 앞뒤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무척 유용하게 쓰였지만 히어로의 비명소리가 울린 것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야, 우라라카!"
가장 근처에 있던 키리시마가 큰 잔해 하나를 부수며 뛰어왔다. 그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를 가리켰다. 키리시마에게 있어서는 무너진 건물 안에 뭐가 있었든 지금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 처럼 온 몸을 떠는 우라라카가 더욱 걱정이었지만 그녀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저기를 봐. 그런 그녀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키리시마 역시 그녀 처럼 새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라며 근처의 동기들이 통신기로 두 사람을 불렀지만 둘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자리에 못박힌듯 굳었다. 그런 그 둘을 향해 달린 것이 바쿠고였다. 개구리처럼 뛰어오른 빌런 하나를 주먹으로 날려버린 바쿠고가 뛰어오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두 사람에게 소리를 내질렀다.
"야, 병신머리!! 둥근얼굴!! 적당히 하고 이쪽으로,"
" 찾았어."
"뭐?"
키리시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바쿠고를 쳐다봤다.
"찾았어, 바쿠고."
"씨발, 뭘 찾았는데!"
"미도리야."
"...뭐?"
뭔 개소리야, 라는 말은 바쿠고의 입에서 터지지 못했다.
"미도리야를 찾았어, 바쿠고..."
무너진 건물 파편에 맞아 이미 죽은 몸 이곳저곳이 눌리고 얼굴은 눈 하나를 포함해 반 쯤은 날아가 있었지만 눈에 익은 녹색 히어로슈트도 점점이 박힌 주근깨도 짙은 녹색의 머리도 전부 그들이 아는 미도리야 이즈쿠였다. 다만 죽었을 뿐. 피가 뿌려진 흔적이 없으니 이미 죽은지 좀 됐겠구나. 누군가 그들에게 말해주었지만 딱히 그걸 알고 싶은 건 아니었고 애초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미도리야를 본 순간 바쿠고는 그대로 행동을 멈췄고 파랗게 질린 우라라카는 건물 잔해를 내려 놓지도 못하고 둥둥 공중에 띄워놨다. 아직 싸움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 키리시마는 두 사람과 한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는 이내 마음을 먹은 듯 들어올린 잔해로 성큼 들어가 미도리야를 들어 올렸다. 아무런 힘 없이 덜렁거리는 몸을 어떻게든 안아 올린다. 이건 확실하게 죽었구나. 건조하고 차가운 그것을 데려 나온 키리시마는 아직도 굳어있는 둘에게 외쳤다.
"일단 여기서 피하자. 토도로키! 이쪽 백업!"
자신들의 말은 전부 들리고 있을 테니 분명 올 것이다. 예상대로 키리시마가 소리침과 동시에 그들을 중심으로 얼음장벽이 양쪽으로 높게 솟아올랐다.
"어서 가."
장벽의 위에서 뛰어내린 토도로키는 키리시마 안의 작은 녹색을 바라보곤 다시 빌런들에게 달려갔고 키리시마 역시 아직도 어딘가 얼이 빠져있는 둘과 하나를 데리고 반대편으로 몸을 숨겼다.
-
부검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은 무척이나 조용했다. 눈가가 발개진 우라라카와 그녀를 옆에서 다독이는 야오요로즈의 말소리가 작게 들렸지만 침묵과 같은 소리였다. 카미나리는 자리를 비운 키리시마를 대신하여 바쿠고의 옆에 앉았다. 무거운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발이 꼬여 의자가 시끄럽게 덜컹거렸지만 아무도 그에게 무어라 하지 않았다. 바로 옆에 있는 바쿠고조차. 이건 정말 무리네. 카미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대규모의 빌런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됐고 전투도 거의 끝났을 무렵 통신기를 통해 위치를 전달받은 카미나리는 경찰들과 히어로와 함께 지정받은 곳으로 향했다. 시야에 닿은 우라라카는 눕혀놓은 미도리야의 시신 옆에서 울고 있었고 바쿠고는 맞은편에 그저 앉아있었다. 주변에 몇명의 빌런이 쓰레기처럼 널려있는걸 보니 아무래도 이들을 노린 빌런 몇이 바쿠고에게 당한 듯 했다.
"바쿠고."
"...."
"저기, 우라라카."
"...."
이해는 하지만, 말은 해줬으면 좋겠다. 카미나리는 머리를 뒤섞었다. 자신 역시 눈 앞에 보이는 미도리야의 시신에 무어라 할 말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의 시신을 이런 엉망진창인 곳에 눕혀놓고 싶지도 않았다. 아직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개성을 잘 다루지 못해 이곳저곳 다쳐오던 미도리야였지만 그래도 마지막에는 일어났으며 늘 조금 난감한 것 같은 얼굴로 웃어보였다. 그런 네 모습이 좋았는데. 카미나리가 미도리야의 시신에 막 손을 댔을 때였다.
"건들이지 마."
무서운 폭발소리와 그보다 더 무거운 목소리였다. 주먹을 말아쥐고 있었기 때문에 주변에 큰 영향이 가지 않았지만 위협으로는 충분하다. 울던 우라라카나 경찰들, 히어로들도 순간 자리에 멈췄다. 건들이지 마. 바쿠고가 다시 낮게 말했다.
"야, 야. 바쿠고."
"말 안들리냐, 씨발. 건들지 말라고."
"...그래도 미도리야를 여기 눕혀놓을 순 없잖아."
알아. 안다고. 아는데.
"히어로 데쿠를 모시겠습니다."
뒤에서 들린 말에 셋의 시선이 전부 돌아갔다. 아, 분명 저 사람은 올마이트의 주변에서 자주 봤던 경찰인데. 흐릿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카미나리가 잡는 동안 아무말 없이 울던 우라라카가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그런 우라라카의 모습에서인지 경찰의 말 때문인지 저의 말 때문인지 바쿠고는 그러고도 잠시 아무 말이 없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히어로, 데쿠는 3년만에 죽어서 되돌아왔다.
* * *
이게 다 무슨소리지. 바쿠고는 경찰이 읊어주는 시신의 상태에 대해 거의 듣지않고 대부분 흘려버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봐도 믿을 수 없는 미도리야의 시신에 대한 부검결과가 나지막히 들리고 있었지만 도무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좀 전까지 좋게 말하면 간신히 사람이었던 것을 제 눈으로 보고 있었고 그게 미도리야 이즈쿠라는 사람이었다고도 알았지만 바쿠고의 머릿속에 있는 데쿠, 혹은 이즈쿠, 혹은 미도리야 이즈쿠. 그 무엇과도 그 시체 미도리야 이즈쿠와 동일인물이란걸 맞춰서 생각할수가 없었다.
3년이란 시간이나 사람이 사라지면 걱정하고 불안해하다 현실에 적응한다. 바쿠고도 그랬다. 다만 그의 어머니와 제 어머니가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였기에 남들보다 조금 그게 느렸을 뿐. 하지만 바쿠고는 그때도 크게 그의 걱정은 하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그 데쿠다. 남의 말은 죽어라 안듣고 제가 하고자 하는 것에는 몸이 부서지든말든 달려나간다. 어디선가 또 그러고 있겠지. 그렇게 터지고 박살이 나면서도 무언가와 싸우고 구해내고. 그러고 있겠지. 그러다가 언젠가 그 열뻗치는 얼굴로 뻔뻔하게 돌아오리라. 바쿠고는 그렇게 생각했다. 3년 내내 그 생각에 단 한치의 의심도 넣지 않았다. 어째서? 사람은 죽는다. 히어로를 하며 뼈저리가 느끼고 있는 말이었다. 사람은 죽고, 히어로는 사람이다. 히어로도 죽는다.
아니, 그것보다.
너무나 당연하게 데쿠는 죽지 않는다고 바쿠고는 여기고 있었다. 왜? 너무나 많은 왜가 머리를 뚫는다. 왜 사라졌으며 왜 이제 나타났으며 왜 죽었으며 왜 너는, 데쿠 너는. 나는 왜 단 한순간도 생각을 해보지 않았나. 데쿠도 죽을거라는 사실을. 대체 왜?
자신이 살아있기 때문에.
태어나면서부터 같이 있었다. 집이 가깝고 어머니들이 친했기 때문에 바쿠고의 어린 기억에도 막연한 첫기억에도 언제나 미도리야는 주변에 있었다. 뒤에도 있었고 옆에도 있었고 잔뜩 얻어 터진 모습으로 제 앞에 있을 때도 있었지만 바쿠고가 있는 곳에는 미도리야가 있었다. 그게 끔찍했던 적도 있었지만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20여년이 넘는 시간동안 쌓아올린 자신의 존재에 당연하게 미도리야가 존재했기에 제가 있다면 미도리야도 있다. 그게 너무나 당연했다. 상식과는 별개로 그 명제는 인간이 숨을 쉬고 바쿠고의 개성이 폭발인것처럼 너무나 당연했기에 단 한순간도, 주변에서 걱정을 하든 뭔 예상을 하든 흔들림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있다. 그러니 당연히 데쿠새끼도 어딘가에든 있다.
평생을 그러리라 생각했어.
나도 그래.
미도리야도 죽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다. 공교롭게도 미도리야 역시 바쿠고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
"자살이래."
어느새 밖으로 나와있던 바쿠고의 뒤에서 우라라카가 말했다.
"뭐라고 했냐, 지금?"
"데쿠군의 사인, 자살이래. 못들었던거 같아서."
"웃기지 마! 자살할 새끼였으면 이미 예전에 뒤졌겠지! 내가 씨발, 그새끼한테!"
"자살이래."
우라라카는 창백한 얼굴을 제 두 손으로 가렸다.
총으로, 몇번이나, 머리를 쐈대. 총으로 쐈는데, 안죽어서, 또 쏘고, 그래도 안죽어서, 죽을때까지, 죽을때까지,
죽을 때, 까지....
'다음 세상을 기대하며--...'
왜 이제와서 그때의 일이 떠오르는걸까.
비웃는 나와, 떠는 너와, 웃는 사람들과.
"도와줘, 바쿠고 군."
한참의 침묵 끝에 우라라카는 고개를 들었다. 그 말에 바쿠고는 겨우 정신이 들었다.
"데쿠군이 죽은 장소에 다시 갈거야. 뭐든 있을거야. 그 데쿠 군이니까, 이렇게 끝났을리가 없어."
찾아야 해. 바쿠고는 우라라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을 그녀는 알았다. 처음으로 조금 웃음을 띈 얼굴을 지었다. 바쿠고의 기억 속에 우라라카는 언제나 미도리야와 자주 같이 있었고 미도리야 만큼이나 많이 웃던. 그러나 이런 얼굴로 웃진 않았다. 오늘 밤에 사람들과 함께 갈거야. 와줘. 그렇게 말하고 우라라카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갔다. 죽을 때까지. 쉬어버린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렸다. 바쿠고는 한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그녀가 걸어갔고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내가 잘못했어.
미도리야는 바닥을 기었다. 죽지 않아도 머리를 뚫어버린 고통이 온 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죽어야 한다. 죽어야만 했다.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줘.
미도리야는 또 다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총을 잡았다. 아파. 미안해. 아파. 잘못했어요.
탕.
지금은 그저
"너를 놓는다"
이 말이라도
남을 통하지 않고
전할 수 있었으면
- 사쿄노다이부 미치마사
안녕, 캇짱.
미도리야 이즈쿠가 그곳에 있었다.
* * *
"최면?"
"그거랑은 약간 다르지만, 정신계 쪽 개성이겠지."
"리커버리 걸은?"
"일종의 과부하 상태라 그렇대. 조금 기다리면 깨어날 거라고 했어."
"괜찮을까?"
"괜찮아."
"데쿠 군인걸."
* * *
넌 뭐냐?
미도리야 이즈쿠, 의 의식. 정신계 쪽 개성은 특별하니까.
바쿠고는 어이가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어이가 없었다. 기절하기 전까지 가졌던 온갖 복잡한 감정은 제 눈 앞에-의식 안이지만 어쨌든-익숙한 얼굴로 어색하게 웃고있는 미도리야의 얼굴을 보며 날아가버렸다. 니 개성은 정신계쪽도 아니었고 애초에 무개성이었잖아. 그리고 미도리야 이즈쿠면 이즈쿠지 의식은 또 뭐란 말인가. 하지만 바쿠고는 그 모든 물음을 입안으로 씹어 넘겼다.
캇짱이 지금 이렇게 나와 대화할 수 있다는 건 내가 죽은걸 발견했거나 남긴 걸 발견한 거겠지. 대규모 빌런 공습은 잘 막아냈어? 다들 굉장한 히어로니까 잘 해냈을 거라고 믿어.
야, 데쿠.
미안. 방금 말에 어폐가 있었어. 이건 분명 내 의식이지만, 너무 어려운 대화는 성립이 되지 않아. 내 의식은 내 전부를 사고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지금 네게 말하는건, 음. 통보에 가까울지도.
데쿠!
미안해. 이런 억지스러운 방법만 써서. 하지만 어떻게든 캇짱에게 전달하고 싶었어. 이게 마지막이니까.
갑자기 시야가 밝아졌다. 밝아졌다고 인식을 한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뜨자 바쿠고는 모르는 곳에 서있었다. 삭막한 방에 침대가 하나, 책상과 의자가 하나, 노트가 하나, 총이 한자루. 총. 미도리야는 총으로 자살했다고 했다. 바쿠고가 모르는 장소이며 기절하기 직전 발견한 노트가 한권.
내가 죽은 장소야. 여기서 나를 발견했으려나. 정말 여러 사람에게 미안한 일 밖에 안했구나, 나는.
미도리야는 바쿠고의 뒤에서 나타났다. 방금전까지 보이지 않던 문을 열고 들어온 미도리야는 바쿠고가 아는 것보다 약간은 키가 컸고, 조금 말랐고, 본 적 없을 정도로 지쳐있는 얼굴이었다. 사라진 3년을 제외하면 미도리야는 언제나 바쿠고의 주변에 있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변화는 싫어도 알게 됐다. 그렇게나 무자비하게 괴롭혔던 중학교 시절에도 저런 얼굴은 아니었는데. 그 때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생각했어도-결국 히어로가 됐지만-그 빌어먹을 꿈인지 뭔지 때문이었을까.
그럼 그 때의 넌 아무런 희망도 없었던 거냐.
살겠노라는 그 의지조차. 바쿠고의말에 미도리야는 그저 난처하게 웃을 뿐이었다. 지독히 많이도 본 얼굴이었다. 미도리야 이즈쿠란 데쿠새끼는 언제나 저랬다.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바쿠고가 본 미도리야 이즈쿠는 잘 웃고 다정하다는 히어로 평가와 전혀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잘 웃었던 건 어디까지나 그게 위기상황이었을 때다. 아니면 위험한 상황에서 히어로가 뛰어들어오는 상황에서 구해지는 사람들을 위해 미도리야는 웃었다. 그 외에는 저렇게 난처하게 눈꼬리를 내리거나 시선을 돌리고 우물쭈물 하곤 했다. 그리고 다정? 웃기고 있네. 친절? 지랄을 한다. 그런 놈이 혼자 사라져 뒤지겠냐고. 이게 정신 안이라서 그런지 꿈이어서 그런지 폭발이란 개성을 쓸 수 없는게 통한이었다. 바쿠고의 성질을 읽어서일까 미도리야는 생전의 그처럼 좌우로 시선을 돌리며 당황했지만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잡아씹는 그의 모습에 다시 웃고야 말았다. 그리고 결심을 다진 듯 다시 바쿠고를 바라보았다.
캇짱. 이걸 남긴 이유는 너에게 부탁이 있어서야. 하고싶은 말도 있었고.
내가 왜 니 부탁을 들어야 하는데.
너는 히어로니까.
...
세상을 위해서 부탁할게.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네게 하지 못한 모든 사실을 전부 말할테니까.
일단 내 명예를 위해서 말해두자면 나, 캇짱에게는 한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알아, 씨발.
거짓말을 할 정도로 요령있는 놈이었다면 그렇게 반쯤 부서져서 3년만에 나오지도 않았을 거고 학창시절에도 그렇게나 부딪치고 싸우지도 않았을거고 이렇게 인간이라고도 못부르는 상태로 저에게 오지도 않았으리라. 적어도 살아는 있었겠지.
일단 니 개성.
음, 역시 그걸 물어볼 줄 알았어. 예전에 내가 말한 적 있었지? 누구에게 받은 개성이라고. 그때 넌 믿지 않았지만.
올마이트냐.
응.
누가 묻고 말해도 절대로 대답하지 않았던 것이 거짓말인 것처럼 시원한 대답이 나온다. 이제 더 감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겠지. 네가 죽어서? 그렇게나 고집스럽게 지키고 말하지 않았던 많은 것들이 네가 죽어서 이젠 더이상 쓸모가 없어졌냐? 그럼 나도 됐다. 네가 필요 없는게 나한테 필요할리가 없다. 그렇다면 남은건 하나 뿐이다.
데쿠.
응.
...왜 죽었냐.
도대체 왜. 그렇게나 뻔뻔하고 단단하게 살았으면서 왜 이제와서 죽는거냐. 빌어먹게도 나는 아직도 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현실로 와닿지가 않아. 서로간의 의지가 어쨌든 우리는 태어나기 전부터 함께 있었잖아. 좀 전까지 봤던 시체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건 너였지만, 나에게 그건 네가 아니라 그냥 시체였다. 데쿠. 대체 왜 죽었냐. 미도리야는 시선을 내렸다.
캇짱. 올마이트가 내려준 이 개성은 본래 어떤 '적'을 무너뜨리기 위해 존재하는 거야. 올마이트도 그랬고 받은 나도 그랬고. 내 개성의 이름은 '원포올' 이라고 해. 그리고 이 개성을 가진 사람이 넘어서야 했던 적은 '올포원'이라는 이름이었지. 자세한건 캇짱이 깨어나면 그 노트에도 적어놨으니까...
그래서, 그 개성을 받은 대신 그 놈을 죽여야 했다고?
그래 맞아. 그게 내가 히어로가 되는 대신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었어.
그래서.
하하...
진절머리나게 본 웃는 얼굴이었다.
일단 지진 않았어. 이기진 못했지만.
이겼으면 지금쯤 나는 네 옆에 있었을거야. 이 이상한 공간에서 가장 확신에 찬 목소리였다.
나는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올마이트와 함께 계속 쫓았어. 쉽진 않았지만 이 개성의 존재의의가 바로 그거 때문이었으니까 힘들진 않았어. 당연하다고 생각했거든. 원래라면 나는 계속 무개성으로, 히어로는 커녕 일반인이라고 불러주지도 않는 낙오자에 가까웠으니까. 알잖아, 캇짱. 무개성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
.....
어릴때 이야기를 하자는건 아니지만. 그렇게 계속 쫓아서 달리고 뻗어서, 겨우 찾아냈어. 우리에게 먼 1세대의 개성. 완전한 악의. 그걸 보는 순간 왜 올마이트가 자신의 목숨을 걸어서까지 그걸 쫓는지 알았어. 그건 세상에 퍼져선 안될...그런거였어.
미도리야는 내버려뒀던 제 양 손을 들어 맞잡았다. 학창시절 울퉁불퉁 제멋대로였던 오른손은 졸업을 시점으로 박차를 가해 이제 왼손도 그 모양이었다. 그래도 거듭된 슈트의 향상과 팔을 보안하는 싸움방법으로 히어로의 명성은 꺼질 줄 몰랐고 언제나 미도리야는 사람들에게 제대로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있잖아, 캇짱. 나는 그걸 보는 순간 정말로, 정말로 무서웠어. 저런게 나와서 이 세상을 모조리 뒤집으리란 생각을 하니까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어. 친애하는 동료들, 아끼는 가족, 사랑스러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은 정말 멋있어. 그러니까 저것만은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없애야 한다고 처음으로 생각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건 내 의지와 원포올의 의지가 함께 나타난 게 아닐까 생각해. 올마이트는 개성에 의지는 없다고 했지만, 그건 올마이트가 원포올의 의의에 충분히 부응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지만 그래, 하고 납득할 수 있을리가 없다. 원래 참는건 성미에 안맞는다. 바쿠고는 제옆에 있는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그럼 왜!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혼자 갔는데!
납득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을 지키는게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냐? 너 말고도 대단한 히어로가 얼마나 많은지, 그걸 제일 잘 알고 있는 니놈이 왜 그딴 짓을 했는데!!
미도리야는 평화의 상징이 '되어가는' 중이었다. 완전했던 올마이트가 아니다. 중학교 시절처럼 왕따도 아니었고 혼자도 아니었다. 히어로였다. 주변에 사람은 넘쳤다. 동기들은 두말할 것도 없었으며 여기저기 우수한 히어로들도 많았다. 자신도 있었다. 그런데도 미도리야는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제 스승일 올마이트에게조차 단 한마디의 말도 없이 혼자서 적에게 향했다. 그리고 혼자 죽었다. 그 누구와도 의지할 수 없었던 올마이트도 아니었으면서, 모든 히어로에게 히어로답게 이 세상을 구하자고 말만하면 모두가 일어나 함께 할 것이 눈에 보임에도 미도리야는 그러지 않았다.
그래, 맞아.
미도리야는 구불구불한 양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캇짱 말이 맞아. 내가 잘못했어.
그리울 정도로 익숙한 울음소리였다. 아, 나는 저걸
이 세상 누구라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어. 나도 여기까지 오기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으니까. 혼자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그 한계는 도움을 받아 다른 사람과 함께 하면서 부수는 거야. 그렇게 좀 더 위로, 보다 먼 곳으로 가는 건데. 나는 그걸 이미 학교에서 배웠을텐데도, 그러지 않았어. 무서웠어. 너무나 사랑스러운 모두가, 그 세상이 그것에 닿는 순간 어떻게 될 지 몰라서 무서웠어. 캇짱. 너는 강해. 모두는 굉장해. 이 세상은 그렇게 약하지 않아. 나는 그걸 알고 있었을텐데, 어째서 믿지 않았을까...
알고있어. 바쿠고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알았다. 너무나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 물에 젖은 자신을 위해 젖는 것에 거리낌없이 와줬던 사람은 미도리야 단 한사람 뿐이었다. 누군가를 위하여 내어주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가진 것이 없으니까. 뒤로 물러나지도 않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었으니까. 사이가 극악으로 치달았던 중학교 시절도 변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프로 히어로조차 다가오지 못했던 그 때,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너만이 나에게로 뛰어들어왔다. 무서움에 떠는 얼굴로, 웃으면서. 가질 수 없는 것에 흥미조차 없던 자신과 달리 그는 소유를 떠나 존재의 모두를 아꼈다. 사랑하는 그 과정에 타협이 없었기에 그렇게나 자신과 부딪쳤던 것이다.
바쿠고는 미도리야가 휘어지길 바랐다. 타협과 융통성이라는 단어를 알았으면 했다. 머리는 좋으면서 왜 그렇게나 서고 또 서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지 마. 제발 그러지 마라. 제발 휘어져다오. 제발
부러지지 마.
미안해.
언제라도 들었던 사과였다.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내가 기분이 나빠했기 때문에 너는 나에게 늘 그랬다.
용서해줘.
아니야.
내가 잘못했어.
내가
잘못했어.
...캇짱. 들어줘.
어느 새 바쿠고의 앞으로 다가온 미도리야는 주저앉은 그의 시선에 맞춰 무릎을 꿇었다. 구불구불한 오른손이 뻗어져 닿은 뺨은 이미 흠뻑 젖어있었다.
'그것'은 아직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어. 막으려고 했는데, 내 잘못으로, 내가 너무 부족해서, 무리였어. 물리적으로는 어떻게든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 이판사판으로 내 몸을 내줬어. 올포원은 개성을 빼앗아 강했지만 그걸 담고 있는 그릇이 한계에 가까워졌거든. 그래서 무개성이면서 원포올을 가지고 있던 내 몸을 노렸어. 싸움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서, 나는 내 몸을 줬어. 그리고 그 안에서...
그 뒤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바쿠고는 양 손을 뻗어 미도리야를 끌어안았다. 제쪽으로 기울어져 중심이 무너졌지만 무게감은 없었다. 당연했다. 현실의 미도리야는 죽었다. 자살을 했다. 올포원에게 몸을 내주고 하나의 몸을 차지하기 위해 두개의 정신이 격렬하게 싸웠을 것이다. 그 결과 미도리야는 지지 않았다. 온 몸을 내지르는 고통과 악의 속에서도 필사적으로 싸우고 싸워서, 총을 잡아, 제 머리에 쐈다.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죽을 때까지. 미도리야는 제 어깨에 머리를 묻은 바쿠고의 등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너무 많은 개성으로, 그보다 깊은 지식으로 올포원은 죽지 않았어. 자세하겐 시간이 없어서 말할 수 없지만 나의 몸을 일부 뜯고, 복사해서, 새로운 몸을 만들었어. 하지만 나는 이미 시체에 가까운 몸에다 많이 죽어버려서, 아마 지금 그건 4살 정도의 작은 아이의 모습일거야. 무슨 뜻인지 알겠지?
미도리야는 제 어깨에 묻고있던 바쿠고의 몸을 떼어내어 양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 살아 있을 땐 한번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긴 커녕 옆에 있는것도 서로 허락되지 않았던 사이였으니까.
거기에도, 내가 있어.
바쿠고는 자신의 머리좋음에 절망했다.
올포원의 개성을 마구 분해해서, 나의 몸이 뜯기는대로 나는 그것의 개성을 마구 헤집어놔서, 정말로 내 몸이 완전히 죽어버리기 직전에 나는 그것에게 갔어. 당분간 그건 자신이 그것인지도 모를 거야. 내가 막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임시 방편이야. 캇짱. 나는 죽었어. 이미 몸은 쓸 수 없어. 그런 상태에서 제 의지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는 건 무리야. 분하지만, 이 세상은 살아있는 존재의 것이니까.
그러니까, 캇짱. 부탁이야.
나를 찾아.
아직 어릴 나를 찾아.
나를 죽여.
무슨 말인지 이해도 하기 전에 무언가 입술에 닿았다 떨어진다. 눈 앞 가득 차는건 방울방울 떨어지는 물방울과, 쏟아내는 커다란 눈이, 너무나 당연했던 네가.
미안해, 사실 언제나 이러고 싶었어. 캇짱 말대로 나는 역시 데쿠라서, 고백 할 용기가 없었어. 정말 미안해.
너무나 어렸던 그때처럼 꼬질꼬질하고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웃는 너는 나의 미도리야, 나의 이즈쿠, 나의 데쿠.
캇짱.
나의 너를,
보고싶어.
깨어날 시간이었다.
바쿠고는 눈을 떴다. 미도리야도 눈을 떴다. 각자의 눈 앞에는 각자의 미래가 있었다. 바쿠고는 지금부터 미도리야의 말에 따라 노트에 적힌 것을 따라가며 세상을 뒤집을 악의를 막아야한다. 미도리야는 바쿠고에게 남길 마지막 말을 담은 노트를 개성으로 봉인했으니 지금부터는 끝없는 싸움이다. 희고 깨끗한 담요가 부드러웠다. 아마 노트를 발견한 직후 쓰러진 자신을 가까운 병원에라도 넣었겠지. 실제로 조용한 병실과 달리 병실의 복도에서는 익숙한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분이 좋다. 미도리야는 절그럭거리는 총을 집어들며 작은 창문을 바라보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는 언제나 좋았다. 그 안에 자신이 있었으면 더욱 행복했겠지만 지금은 그저 제 머리를 날릴 이 총의 소리가 작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생각한다. 조금 더 살았으면 우리는 달라졌을까. 우리가 조금 더 서로를 생각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보다 서로 가까이 있고자 하는 노력을 했다면 우리는 아직 함께 할 수 있었을까.